생각과 감정의 자녀와의 비유

by 임풍

의식과 생각과 감정의 관계는 흔히 한 덩어리로 경험되지만, 실제 구조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가까운 거리를 가진다. 부모가 자녀를 낳았다고 해도 자녀는 부모의 분신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질과 욕구를 지닌 독립된 인격체이다. 마찬가지로 생각과 감정도 의식의 일부가 아니라 오감과 경험에서 비롯된 하나의 독자적 현상들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이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마치 부모가 자식을 자기 마음속 분신으로 착각하듯, 떠오르는 생각을 나라고 동일시하고, 솟아오르는 감정을 자신의 본질적 감각이라고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부모가 자녀를 지나치게 동일시하면, 아이가 성장하여 독립적인 의견을 드러내거나 반말을 하기만 해도 부모는 깊은 당혹감에 빠진다. 의식이 생각과 감정에 대해 저지르는 오류도 같다. 우리는 생각이 언제나 내 편일 것이라고 믿지만, 때로 생각은 나를 공격하고, 내 마음을 흔들어 놓고, 때로는 나를 지치게 한다. 감정 역시 내가 원치 않는 순간 분노, 불안, 두려움이라는 형태로 고개를 든다. 그것을 나의 정체성으로 착각할수록, 의식은 점점 자녀와의 갈등에 끌려다니는 부모처럼 혼란과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생각과 감정을 건강하게 대하려면, 자녀를 대할 때 필요한 적정 거리를 두는 마음 자세가 모델이 된다. 거리는 외면이 아니라 배려의 조건이다. 부모가 자녀를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볼 때 아이가 고유한 인간으로 성장하듯, 의식도 생각과 감정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거리를 유지할 때 비로소 마음속 내면이 균형을 되찾는다. 생각을 나를 대신하는 목소리로 듣지 않고, 하나의 생리학적인 의견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감정을 마음의 날씨처럼 생생히 체험하되 휩쓸리지 않을 때, 의식은 스스로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때 생각은 지혜의 재료가 되고, 감정은 교훈의 신호가 된다.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는 생각에 대한 중독성이다.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의 흐름에 오래 노출된 끝에, 그것을 일종의 정서적 당분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저혈당일 때 몸이 초콜릿을 찾는 것처럼, 중독된 마음이 불안과 분노와 갈등거리를 무의식적으로 찾아 헤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먹이를 따라 움직이는 하이에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공격하거나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대상을 찾지 않으면, 마음의 균형을 잃어버릴 것처럼 느끼는 상태가 된다. 이때 사람은 외부 사건에 이성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트리거를 생산하며 그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고는 자신이 빚어낸 어두운 감정에 대해 외부 탓을 한다.

의식의 성숙은 바로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다룬다. 첫째는 생각과 감정을 자녀처럼 독립된 경험체로 인정하는 일이며, 둘째는 부정적 정서의 자동적 탐색을 끊어내는 일이다. 의식이 주도권을 되찾으려면, 떠오르는 생각을 신경질적으로 억누를 필요도 없지만, 그것을 나의 정체성과 동일시할 필요도 없다.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의식의 일부가 아니라, 의식이 잠시 느끼는 육체의 울림 현상일 뿐이다. 이렇게 나의 의식이 생각과 감정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확보할 때, 의식은 잠잠해지고, 삶은 더 넓어진다.

따라서 의식이 할 일은 단순하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가 독자성을 부여해 주는 것처럼, 의식도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객체로 바라보고, 지나치게 가까이 붙들지도 말고, 차갑게 밀어내지도 않는 것이다. 이 절묘한 거리감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내면과 화해하고, 생각과 감정이라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중심을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