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오랫동안 불안과 두려움을 매우 심각한 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불안이 찾아오면 그것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두려움이 생기면 그것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조용히 관찰해 보면, 이상한 사실 하나가 보인다. 불안이나 두려움은 실제로는 우리를 강제로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이라기보다, 마음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하나의 패턴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는 어린 시절에 배웠던 놀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때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다. 아이들은 경찰놀이를 하고, 전쟁놀이를 하고, 괴물 놀이를 한다. 어떤 아이는 괴물이 되고 어떤 아이는 도망가는 사람이 된다. 놀이 속에서는 모든 것이 진지하다. 도망치는 아이는 정말로 잡히지 않으려고 뛰고, 괴물 역할을 하는 아이는 정말로 잡으려고 달려든다. 그러나 사실 그 모든 것은 놀이일 뿐이다. 누군가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그 놀이에서 빠져나온다.
어른이 된 사람들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비슷한 장면이 보인다. 사람들은 여전히 다양한 놀이를 하고 있다. 강자 놀이, 약자 놀이, 피해자 놀이, 환자 놀이,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불안 놀이가 있다. 불안 놀이가 시작되면 마음속에는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나타난다. 걱정, 의심, 분노, 두려움, 오해가 서로 머리를 들어 올리며 사람을 쫓아다닌다. 하나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것이 나타난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히드라처럼, 한 머리를 자르면 또 다른 머리가 생겨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생 그 괴물과 싸우며 살아간다. 불안을 이기려고 하고, 두려움을 없애려고 하고, 걱정을 해결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괴물과 싸우는 행위 자체가 이미 놀이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괴물을 이기려는 행동이 바로 괴물 놀이를 계속 유지시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상한 변화가 일어난다. 불안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불안을 없애야 한다는 강박도 사라진다. 단지 한 가지 선택만 남는다. 그 놀이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둘 것인가.
마치 어른이 놀이터에 서서 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한때는 그 놀이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밖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 이상 그 놀이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때 불안은 싸워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힘을 잃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원리가 불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도 모르게 환자놀이를 하기도 하고 약자 놀이를 하기도 한다. 몸에 작은 이상이 생기면 마음은 즉시 “나는 약하다, 큰일 났어 ”라는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조금 피곤해도 병의 이야기를 만들고, 작은 통증도 큰 의미를 부여하며, 점점 더 자신을 환자의 역할 속에 몰아넣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몸보다 먼저 마음이 환자가 된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패턴이며, 하나의 역할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다른 선택이 가능해진다. 환자라는 역할을 붙잡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 역할에서 조용히 내려올 것인가. 약자라는 이야기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그 이야기를 끝낼 것인가.
사람이 이 자각에 도달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동안 불안과 두려움, 걱정과 자기 연민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던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가 갑자기 풀려나기 시작한다. 마치 오래 묶여 있던 물이 댐에서 풀려나듯이, 막혀 있던 생명의 흐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몸도 그 영향을 받는다. 긴장이 줄어들고, 호흡이 깊어지고, 회복의 힘이 조금씩 살아난다. 마음이 환자 역할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면, 몸은 더 이상 계속해서 병의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가 없어진다. 약자라는 정체성이 약해지면, 몸속의 생명력은 다시 자신의 리듬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은 점점 더 단순한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이 반드시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놀이에는 시작이 있지만 끝도 있다. 아이들은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인간의 성숙이란 바로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안을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 놀이를 그만두는 것, 약자라는 이야기를 증명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에서 내려오는 것, 환자라는 정체성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흐름을 다시 허용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순간 사람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유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마음은 조용해지고, 몸은 자연스럽게 회복을 향해 움직이며, 삶은 더 이상 끝없는 싸움이 아니라 하나의 넓은 공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사람은 알게 된다.
우리는 평생 어떤 놀이 속에서 살아왔지만, 언제든지 그 놀이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