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은 매일같이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미생물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 식물 모두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과 미생물 연구 과학자인 류충민 박사는 <좋은 균, 나쁜 균, 이상한 균, 2019년 출간>에서 식물과 미생물에 대한 기초 지식, 이들의 상호작용, 그리고 지난 20억 년 동안 사람과 곤충까지 더해져 서로 싸우고 협력하며 지구 생태계를 만들어온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류 박사는 “식물도 인간처럼 감각기관과 면역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외부 환경의 변화를 감지해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배운 내용을 세포 속에 저장해 다음 세대에까지 전달한다”라며, 이러한 이유로 식물을 지적 생물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최근 식물학계에서는 식물의 다양한 지적 능력이 점점 더 밝혀지고 있다고 한다. 식물은 세포 속 DNA에 기억을 남겨두는데, 이는 세대교체가 보통 1년 주기로 이루어지는 식물에게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반면, 세균은 불과 몇 분 만에 세대가 바뀌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기억이 필요하지 않다.
인간과 식물은 모두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최근에는 유기체와 미생물이 서로 하나처럼 공생하는 슈퍼 유기체 혹은 홀로바이옴(holobiome)이라는 개념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장내 유산균을 포함해 사람 몸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은 약 1,000조 개에 이르며, 이는 인간의 전체 세포보다 10배 이상이나 많은 수이다.
미생물은 크게 세균(박테리아), 곰팡이(진균), 바이러스로 나뉘며, 이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유기물을 분해하고 썩게 만드는 일이다. 생명이 끝나면 그 몸체는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야, 비로소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 만약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몸속에서 분해되지 않을 것이며, 세상은 썩지 않고 쌓이기만 하는 쓰레기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또한 장내 미생물은 세로토닌과 같은 감정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 생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국 미생물이 없다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단지 그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에 곰팡이균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존재이다.
19세기, 루이 파스퇴르는 미생물이 유기체를 썩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했고, 이어 로베르트 코흐는 병이 신의 저주가 아니라 미생물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밝혔다. 감자 역병균의 발견으로, 미생물이 동물뿐 아니라 식물에도 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식물병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탄생하게 되었다. 한 예로, 미국 전역의 가로수로 심어진 느릅나무가 50여 년 전 네덜란드에서 수입된 나무에 묻어온 곰팡이균 때문에 모두 사라진 일도 있었다.
최근 연구에서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 예를 들어 클로스트리디움균과 황색포도상구균이 인간의 대변 속 미생물을 통해 치료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생물을 병을 유발하는 나쁜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 이들이 없이는 지구 생태계가 유지될 수 없다. 실제로 미국의 제약회사인 바이엘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 전역의 농업지대 토양 속에 있는 미생물 분포 지도를 만들고 있다. 이 미생물들은 자연 비료처럼 작용하여 토양을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2006년에 발표된 식물 면역 시스템의 지그재그 이론에 따르면, 식물은 시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공격하는 세균을 분자의 일정한 패턴을 통해 인식하고, 이에 대응해 방어벽을 두껍게 만드는 방식으로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러나 세균은 이 방어벽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가느다란 관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단백질 폭탄을 식물 세포 속으로 주입하여 면역 체계를 무너뜨린다. 이에 식물은 다시 이 단백질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반격하고, 세균은 또다시 새로운 전략으로 침투를 시도한다. 때로는 감염된 식물 세포가 자살을 택함으로써 세균과 함께 죽고, 나머지 세포들을 보호하기도 한다. 이처럼 식물과 세균은 지능적인 전투를 지속해나가며,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만이 지적 생명체라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얻게 된다.
세균은 일정 수 이상 모일 때까지 식물을 공격하지 않고 기다리며, 공격에 필요한 수가 되면 세균 사이에서 신호물질이 분비된다. 이 신호에 따라 세포벽을 녹이는 효소들이 생성되어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어떤 식물은 이 신호물질 자체를 분해하여 세균의 공격을 차단하기도 한다. 한편 바이러스는 곤충을 마치 버스처럼 이용해 식물로 이동한다. 곤충이 식물에 상처를 내면, 바이러스는 그 틈을 타서 식물 속으로 침입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식물을 곤충이 피하고 건강한 식물을 찾아가는데, 이는 바이러스가 곤충의 뇌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수 있다는 추측도 있다.
또한 곤충이 식물을 공격하기 위해 미생물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식물 역시 뿌리에 공생하는 미생물을 통해 이웃 식물에게 질병 감염에 대한 경고를 보낸다. 이처럼 식물은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더 큰 생태계의 일부로 여기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부 미생물은 환경이 좋지 않을 때 스스로 세포 속에서 휴면 상태로 전환해 ‘휴면포자’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 상태로 무려 1,000년 동안 살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재는 식물에 유익한 세균을 인공비료 대신 사용하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마치 사람이 장 건강을 위해 유산균을 섭취하는 것과도 비슷한 원리이다. 세균과 식물은 긴장된 상태에서 공생하기도 하는데, 콩과 뿌리혹 세균의 관계가 대표적인 예이다. 뿌리혹 세균은 콩이 분비하는 단백질 공격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지니고 있어, 콩과의 공생이 가능해진다. 클로렐라는 사람의 건강에 유익할 뿐만 아니라 식물의 면역력을 높이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
이처럼 식물과 미생물의 관계 속에는 ‘좋은 균, 나쁜 균, 이상한 균’이 존재하며, 이 같은 현상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와 미생물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흥미롭게도 사람의 장에 있는 바이러스 중 80% 이상은 식물에서 유래된 바이러스들이다. 이 바이러스들은 식물에게는 병을 일으킬 수 있지만, 사람에게는 오히려 선천면역을 활성화시켜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결국 저자는 인간과 동식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미생물을 발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식물과 미생물이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며, 인간이 이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바이러스와 세균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게 되는 날, 이들과의 공생 기술 또한 자연스럽게 발견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