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사소한 감정의 상처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고, 생일이나 졸업식처럼 기쁜 순간들은 금세 희미해지는 걸까. 인류학자나 심리학자들은 그 이유를 뇌의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에서 찾는다. 수십만 년 전, 인간은 포식자와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험 신호에 민감하도록 발달해왔다. 그 결과, 인간의 뇌는 기쁨보다는 고통과 두려움을 우선적으로 기억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그 설명만으로는 왜 우리가 이토록 공허하고, 지속적인 만족감을 유지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부처의 핵심 가르침은 좀 더 깊은 곳을 비춰준다. 그는 인간이 왜 행복하기 어려운지, 왜 늘 고통 속에 머무는지를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의 가르침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이라는 모드 위에 놓여 있다는 통찰이다. 고통과 분리된 독립적인 행복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에서 벗어날 때, 행복은 부산물처럼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도 마음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공허가 있다. 그것은 밑 빠진 그릇처럼 아무리 채워도 가득 차지 않는다. 우리가 성공이라 부르는 것들은 잠시의 만족을 줄 뿐, 오래가지 않는다. 곧 새로운 욕망이 찾아오고, 또 다른 집착이 시작된다.
세상에는 분명히 피할 수 없는 고통, 즉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현실적 pain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 고통을 피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또 다른 고통, 즉 심리적인 suffering이다. 인간은 세상에 구조적으로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한 채, 단기적인 쾌락과 만족을 좇다가 오히려 더 깊은 심리적 고통에 빠진다. 따라서 진정한 평온은 우리가 집착하는 행복, 만족, 쾌락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세상이 본래 고해(苦海)라는 원리를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고통과 분리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에 내재된 고통의 상수를 받아들이고, 집착을 내려놓을 때, 행복은 뜻밖의 선물처럼 다가온다.
이를테면, 자식이 아플 때 어머니는 행복을 얻기 위해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노고를 잊은 채 전심으로 아이의 병을 낫게 하려 애쓴다. 그런데 아이가 나아가면서, 어머니는 의도치 않게 따뜻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 행복은 고통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고통을 껴안는 과정에서 스스로 피어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기여하려는 사람이 뜻하지 않게 출세라는 부산물을 얻듯이, 행복이나 성취 또한 직접 추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산골짜기 어딘가에 출세라는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어려운 과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것은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로 주어진다.
결국 행복, 성공, 사랑, 인생의 의미는 모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부산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들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묵묵히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면 삶은 언젠가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답을 선물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