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의식과 행복

by 임풍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한 가지 기술에 능숙해진다. 그것은 바로 자기 신념을 꺾지 않는 능력, 곧 내면적 확신의 지속이다. 이 확신이 바른 가치 위에 서 있다면 그것은 인격의 뿌리가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단단한 껍질 속에 갇힌 아집이 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든, 이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고집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 통제력은 외부를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육체가 어떤 고통을 겪든, 나의 정신세계만큼은 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자각, 이것이 철학적 인간의 출발점이다. 행복이란 외부의 선물이 아니라, 의식이 스스로 선택한 태도이다. "나는 언제나 행복하기로 결심한다.” 이 결심은 단순한 긍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선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외부 사건의 결과로 여긴다. 병이 나은 후에야, 경제적 여건이 개선된 후에야, 혹은 타인의 인정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행복해질 자격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의 구조를 뜯어보면, 행복을 조건부로 설정한 오류가 드러난다. 그들은 외부가 변하기를 기다리며 생을 허비한다. 그러나 인생의 시간은 기다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원하는 것이 오지 않는다. 삶은 결코 외적 준비가 끝난 뒤에 시작되지 않는다. 나의 삶은 지금, 결정된 나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행복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 철학적 전환의 핵심이다. 외부가 변해야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기로 결심할 때 외부가 변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먼저 리듬을 잡고 세상이 그에 따라 조율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의식이 가진 근원적인 창조성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이 원인이고 세상은 그 결과이다는 관점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돈, 명예, 안정된 관계)은 물론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의 기쁨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미 수많은 부자와 권력자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 불안했고, 소유가 늘어날수록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소유는 자유를 확장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집착의 감옥을 만든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조금 더>의 욕망에 지배된다. 그들은 눈앞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채, 끝없는 결핍의 환영을 쫓아다닌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유한하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도, 결국 우리는 모두 미래의 해골이며, 죽어서 누울 자리는 한 평 남짓의 공간이다. 어린 시절 땅따먹기에서의 승리와, 어른이 되어 벌이는 권력과 자본의 싸움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심리적 놀이다. 다만, 어린아이는 놀이가 끝나면 웃지만, 어른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결국 인간에게 진정한 의미를 주는 것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일이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단순하다. 부와 권력으로 세상을 조종하지 않고, 인간성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시점이 대부분 사람에게는 너무 늦게 찾아온다. 죽음이 가까워져야만, 사람들은 자신이 쥐고 있던 것이 본질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이미 자유롭다. 그의 행복은 외부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이미 항상 기쁨이 되기로 결정되어 있다. 그는 세상과 타인을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그의 의식은 스스로의 법을 따른다.

인간의 모든 영적 지혜는 사실 이 한 가지를 가르친다: 행복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내면의 결단이다. 세상이 흔들릴 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찾는 것이 곧 영성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영적 가르침을 기다림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들은 기도하지만, 스스로 행복하기로 결심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은 늘 흔들리고, 믿음은 조건부로 머문다. 인간의 깊은 의식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아무 이유 없이 행복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세상의 피해자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세계를 새로이 짓는 건설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