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하루의 방향 선택

by 임풍

인간은 끊임없이 선택하는 존재이다.
어느 대학을 갈지, 어떤 직장을 택할지, 누구와 함께 살지, 어디에 머물지를 결정하며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선택이라는 단어를 인생의 커다란 갈림길에서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생업에 따른 일을 하고,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누구를 만날지 등 그저 사소한 선택만을 하고 살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하루하루 내가 나의 삶을 소유해서, 나의 분명한 선택에 따라 나만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모든 순간이 운명과의 대화다.” 우리가 깨어 있는 매 순간,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태도로 하루를 맞이할지를 결정하는 것 또한 위대한 선택이다는 뜻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스스로에게 말하라. 오늘 나는 인간다운 일을 하리라”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하루의 첫 선택은 세상의 소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을 향한 결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눈을 뜨자마자 뉴스를 확인하고, 일정표를 점검하는 것은 우리가 다시 세상의 시끄러운 기계적 리듬 속으로 흡수되는 행위다. 그 대신, 잠에서 깨어난 순간, “오늘 다시 생명을 허락하신 신에게 감사한다”라는 고요한 인식으로 하루를 연다면, 그날은 이미 의미 있는 선택으로 시작된 것이다.

모든 철학에서 '인간은 외부 사건을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판단과 태도는 통제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는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주권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오늘을 “멋진 사람으로 사는 하루”로 선택할 수 있다. 그 멋짐이란 화려함이 아니라, 마음의 품격과 품위이다. 책 속이나 영화에서 본 고결한 인물처럼, 자신의 이미지를 그려보면 좋다. 그리고 하루 종일 “나는 멋진 사람으로 살겠노라”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면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세상의 조건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가 된다.

다음 날에는 “건강한 사람으로 사는 하루”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 건강은 단지 신체의 균형이 아니라, 정신의 평정을 포함한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라는 마음속 이미지를 그리면, 행동은 그 이미지를 따라간다. 자세가 바로 서고, 걷는 리듬이 안정되며, 음식 선택도 달라진다.
마음이 먼저 선택하고, 몸은 그 선택을 따른다. 이것이 자기통제의 본질이다. 감정이나 충동이 아닌, 이성의 명령에 따라 하루를 설계하는 것이다.

인생은 장기적 목표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진정한 인생은 하루하루의 질로 결정된다. 오늘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소유하는 사람만이, 인생 전체를 소유한다. 뉴스나 세상의 사건이 우리의 기분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오늘의 나를 나는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네 마음이 말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너를 해치지 못한다”라고 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내면에서 정한 하루의 방향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삶이다. 자기 통제의 훈련은 거창하고 장기적인 철학적 사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늘 하루, 하나의 선택을 정하고 그것을 끝까지 실천하는 것, 그 단순함 속에서 우리는 영혼의 질서를 되찾고 충만한 하루를 보낸다.

오늘날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일을 요구한다. 그러나 세상이 요구하는 일만 하다 보면, 결국 자기 삶은 남의 스케줄 속에 흘러가 버린다. 빈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작게라도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사는 시간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누구도 우리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언젠가라는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오늘 지금,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삶의 지혜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나는 외부 세계의 종속자가 아니라, 하루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내가 직접 결정해야 한다. 그 하루가 쌓여 인생이 되고, 그 인생이 결국 한 송이의 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