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단순한 진실은 이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바로 ‘나’다. 내가 내 눈으로 세상을 본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 하나가 있다. 눈이 보는 장면은 마치 CCTV 화면처럼 객관적일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현실을 그대로 기록한다면, 우리의 눈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눈이 받은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에, 각자 고유한 필터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뇌과학에서 이 필터를 망상활성계(Reticular Activating System, RAS)라고 부른다. RAS는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균등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관심을 가진 것만 골라서 보여주고, 관심이 없는 것은 애초에 시야에서 지워버린다. 그래서 식도락가에게 세상은 언제나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차 있고, 새로운 안경을 산 사람에게 그 모델은 갑자기 온 세상에 널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필터가 바뀐 것이다.
이 사실은 인간 심리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만약 지금 세상이 혼란스러워 보인다면, 실제 세상이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필터가 혼란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행인이 무례하게 느껴진다면, 내 안에 무례함을 확대해 보여주는 필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내적 필터가 구성한 사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개인의 관심사, 오랜 경험, 교육, 상처, 유전적 기질까지(all of these)가 모여 거대한 RAS의 성을 구축한다.
긍정적인 사람에게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세상이 특별히 밝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긍정 필터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류 대부분에게 부정적 필터가 강하게 자리 잡은 이유는 우리 조상들의 생존 전략이 불안, 경계, 공포를 기억하도록 뇌를 특별히 단련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스는 늘 분노, 갈등, 위기, 불안으로 넘쳐나고, 우리는 마치 심리적 유전자의 지배 아래 반복되는 역사 안에서 살아가는 듯 보인다.
흥분한 사람에게 “세상 탓이 아니라 당신의 필터가 문제”라고 말해도, 대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필터가 바뀌기 전에는 그 말을 해석할 능력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순간 자신의 필터가 하는 일을 문득 자각하게 된다. 마치 도둑이 물건을 훔치다가 주인에게 들킨 순간 물건을 놓고 뒤로 물러나듯, 마음속 어둠의 필터 역시 순수한 의식의 눈에 포착되는 순간 힘을 잃는다. 그 빈자리에 자연스럽게 사랑, 배려, 용서 같은 본래적 신과 빛의 자녀의 성정이 들어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신의 자녀의 속성들이 특별한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그런 존재였지만, 부정적 필터가 그 성질을 가려왔을 뿐이다. 어둠의 필터가 걷히면 그동안 가려졌던 빛이 스스로 드러난다.
사람은 결국 자기 안의 필터를 알아차리는 순간, 자신이 살아온 세계의 성질이 바뀐다. 어둠의 자식이란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 단지 어둠을 선택하던 필터가 조용히 작동하고 있었던 결과에 불과하다. 필터를 인식하지 못하면, 필터가 살아가는 것이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을 각성할 필요가 크다. 필터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언제나 내부에서 먼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