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세계로의 여행

by 임풍

요즘은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1년에 천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20년 전, 나는 독일의 근로자들이 1년 동안 휴가를 모아 여름이면 한 달씩 해외로 떠난다는 사실을 듣고 깊은 부러움을 느꼈다. 이처럼 사람들은 왜 기꺼이 돈과 시간을 들여 낯선 곳으로 떠나는가.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환경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출발시키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여행은 잠시나마 현재의 자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살아온 삶의 문맥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전환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욕구는 우리가 현재 머무는 직장, 집, 인간관계, 주변 환경이 주는 부담과 불편함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해외여행이 하나의 탈출이라면, 우리의 삶은 늘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행은 단순한 도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여행은 새로움을 체험하고, 견문을 넓히며,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경험을 통해 마음의 지층을 흔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서양은 오랜 전통 속에서 외부 세계를 탐구하여 진리를 찾으려 했고, 동양은 그와 반대로 인간의 내면과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본질에 접근하려 했다. 그러나 어느 철학 전통에서는 외부의 거대한 우주와 내부의 미세한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쪽을 탐구하는 것이 곧 다른 한쪽으로 향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외부 세계로 떠나는 여행과 내면세계로 향하는 여행은 서로 다른 두 길이 아니라 서로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는 누구나 외부 세계로의 여행을 한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경험은 흔하지 않다. 내면으로의 여행을 시도하기 위해선 우선 그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면세계는 일상적 생각과 감정, 그리고 때로는 나 자신을 넘어서는 영혼적 차원까지 포함한 거대한 공간이다.

뇌신경 과학은 이 세계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인간에게는 50조 개에 이르는 세포들이 각각 작은 화학공장처럼 끊임없이 활동하고, 약 1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매 순간 시냅스를 만들고 지우며 1천 조 개가 넘는 연결망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모든 기억, 감정, 경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패턴, 교육과 문화가 이 연결망 속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이 거대한 신경망의 우주는 마치 외부의 은하계를 축소해 뇌 속에 옮겨놓은 듯한 정교한 구조를 이룬다.

내면세계로의 여행은 바로 이 신경의 우주를 관조하는 행위이다. 끝없는 외부의 우주로 떠나는 여행이 광대한 공간 속에서 나의 위치를 새롭게 느끼게 하듯, 내면의 여행은 자기 내부에 펼쳐진 또 하나의 우주를 마주하게 한다. 이 세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의 내면으로도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가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이나 환경은 점차 그 중요성을 잃고, 그 사람 안에서 움직이는 생각과 감정, 의식의 파동이 더 또렷해진다.

때때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외부 세계는 사실 나의 뇌 속에서 재구성된 또 하나의 세계가 아닌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 걷는 길, 흐르는 풍경은 실재라기보다 뇌 속의 시냅스들이 즉각 조합하여 만든 입체적 영상일지 모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외부 세계는 뇌가 투사해낸 거대한 스크린과 같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내면세계의 이미지들은 실제 감정을 일으키기보다 관찰자의 시선에 머무르는 반면, 외부 세계의 장면들은 희로애락을 동반하며 우리의 생을 구체적으로 흔든다.

신경과학은 우리가 경험하는 색, 소리, 맛, 촉감이 실재 그 자체가 아니라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파동과 진동을 뇌가 해석해 만든 결과라고 말한다. 감각기관이 정보를 제공하면, 뇌는 그것을 기반으로 3차원의 홀로그램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눈을 감으면 색이 사라지고, 귀를 막으면 소리가 사라지는 어두운 침묵이 존재한다. 어쩌면 그것이 외부 세계의 원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무형의 파동을 받아 3차원 영상으로 변환하며 세계를 보는 존재는 누구인가.

우리는 눈이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영상은 뇌 속에서 형성된다. 뇌 속의 관찰자가 그것을 바라본다. 눈을 감고 과거의 장면을 떠올릴 때, 혹은 미래를 상상할 때 나타나는 선명한 이미지 역시 감각기관이 아니라 이 관찰자가 보고 있다. 마치 카메라 렌즈는 빛을 모을 뿐, 뒤에 있는 필름의 이미지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 관찰자는 단지 뇌 속에 자리한 존재인가, 아니면 더 근원적인 차원에 연결된 의식의 한 조각인가. 외부 세계의 여행과 내면세계의 여행은 결국 이 질문으로 수렴된다.

외부 세계는 뇌가 해석한 하나의 투사이며, 내면세계는 그 투사를 바라보는 주체가 거주하는 또 하나의 차원이다. 우리는 이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간다. 외부의 풍경 속에서 움직이면서도, 내면의 스크린에 떠오른 장면을 끊임없이 해석한다. 여행이 외부 세계에 대한 시선을 바꾼다면, 내면으로의 여행은 보는 존재 자체를 바꾼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내면 여행은 외부 여행보다 더 깊고 지속적인 변화를 남긴다. 외부 여행이 삶의 풍경을 바꾸는 것이라면, 내면 여행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부의 바다나 산을 바라보며 감동을 느끼지만, 내면 여행을 통해서는 그 감동을 만들어내는 존재, 즉 나라는 의식의 신비를 체험하게 된다.

결국 여행은 두 종류가 있다. 외부 세계로 떠나는 여행과, 내 몸과 마음속 또 하나의 우주를 탐험하는 여행. 두 여행은 서로를 비추며 완성된다. 외부 세계를 떠나면서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내면으로 들어가면서 외부 세계가 다시 낯설고 깊게 다가온다. 이 두 방향의 여행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보다 온전한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