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는 인간

by 임풍

인간은 우주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유한하고, 감각과 언어, 그리고 뇌라는 도구로 세상을 느끼고 해석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늘 의미를 찾고, 자유를 원하며, 무엇이 옳은지, 최고인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욕망은 사실 뇌가 스스로 움직이는 운동, 즉 정신의 운동일 뿐이다.

카뮈가 말한 부조리도 여기서 나온다. 인간은 세상에게 답을 기대하지만, 세상은 인간의 언어로 직접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과 경험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고, 의미를 부여한다. 문화나 철학, 삶의 규칙, 심지어 신앙까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상징적 체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고, 자신을 확인한다.

무위나 존재(be-ing) 같은 철학적 개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비움과 존재를 생각해도, 인간은 밥을 먹고 숨 쉬며 움직이는 몸을 가진 존재다. 정신적 개념과 실제 삶 사이에는 항상 간극이 있고, 우리는 그 간극 속에서 의미와 자유, 만족을 느낀다. 결국 모든 철학적 사유는 정신과 몸이 함께 움직이는 결과다.

인간은 또한 혼자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성향, 즉 반고독적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식을 혼자만 가지고 있으면 불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 가르치고 나누는 순간, 뇌는 보상을 받고 패턴이 강화된다. 철학, 예술, 학문, 삶의 지혜까지, 모두 인간 뇌가 만들어낸 반복 운동의 결과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인간의 노력은 외부에서 보면 조금 기묘한 운동처럼 보일 수 있다. 자유를 추구하고, 최고를 원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사실 신경회로가 스스로를 움직이는 정신 놀이다. 지구 위의 82억 명 모두 최적의 삶은 다르고, 어느 것도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고, 반복하며, 그 패턴을 옳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를 지적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다. 하지만 인간은 침묵조차도 정신의 움직임 속에서 경험한다. 뇌는 침묵 속에서도 진동하고, 스스로를 확인하며 존재한다.

결국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 부조리하고 기묘한 자기운동 속에서 살아 있음에 있다. 우리는 우주를 그대로 읽을 수 없지만, 뇌와 마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번역하고, 그 번역 속에서 자유와 의미, 신비를 느낀다. 무위, 존재, 자유, 부조리, 모든 철학적 개념은 우리의 정신과 몸이 함께 만드는 운동 속에서만 살아난다.

인간은 스스로 프로그램을 바꿀 수 있는 존재지만, 한 번 만들어진 패턴도 다시 우리를 지배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아니라, 어떤 운동과 패턴이 우리를 자유롭고 살아있게 만드는가다. 인간은 평생 번역가이며, 우주를 직접 읽을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번역을 새롭게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그리고 바로 그 번역 과정 자체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이고 아름다운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