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과학이 막 꽃 피던 19세기, 인간의 질병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두고 파스퇴르와 베르나르 두 학자의 생각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파스퇴르는 질병의 원인을 인간 외부에서 침입하는 세균과 미생물에게서 찾았고, 병을 일으키는 특정 존재만 제거하면 건강이 회복된다고 보았다. 그의 이론은 현대 의학의 기초가 되었고, 인류는 세균을 표적으로 삼은 수많은 약과 치료법을 만들어냈다. 인간은 병든 세포 하나, 특정 균 하나를 마치 전장에서 제거해야 할 적군처럼 바라보며 질병을 대응해 왔다.
그러나 클로드 베르나르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의 몸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방어해야만 하는 전쟁터가 아니라, 수많은 생명들이 하나의 질서를 이루고 있는 내부 환경설로 바라보았다. 어떤 세균이 존재하더라도 인체 내부의 균형과 면역의 조화가 유지된다면 병은 일어나지 않으며, 균형이 깨질 때 병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관점이다. 말년에 파스퇴르조차 “미생물은 아무것도 아니다. 환경이 전부다”라고 고백하며 베르나르의 통찰을 인정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인체의 일상적인 작동을 들여다보면, 베르나르의 관점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현대 의학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의 몸에서도 매일 수백 개, 때로는 수천 개의 비정상 세포, 즉 잠재적 암세포가 생겨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이런 암은 병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 몸이 스스로 지닌 면역 감시 시스템 때문이다. NK 세포와 T 세포는 몸을 순환하며 비정상적인 변화를 감시하고, 암세포가 자라기도 전에 제거한다.
결국 암조차도 단일 세포의 반란이 아니라, 몸 내부의 균형이 흔들렸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만성 스트레스, 과로, 불면, 장내 미생물의 붕괴, 염증을 부르는 식습관 등은 면역의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고, 그 틈에 비정상 세포들이 자라기 시작한다. 몸은 늘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려 하지만, 우리 삶의 방식이 몸이 갖춘 능력이 작동할 공간을 주지 않을 때 병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체온이 36.5도라는 균형점을 유지하려는 인체의 항상성 역시 이런 조화의 작동을 보여준다. 이 균형이 깨지면 체온은 흔들리고 면역은 약해진다. 그래서 평소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단순한 습관조차 질병 예방의 중요한 기초가 된다.
그렇다면 왜 현대 의학은 여전히 세균설 중심 사고에 머물러 특정 균을 제거하는 전략에 의존할까 의문이 든다. 피부병이 생기면 연고로 잠시 완화할 수 있지만, 몸속 깊은 곳에서 일어난 균형 붕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병은 다시 고개를 든다. 이런 증상 중심의 의료는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제약 산업과 전문 의료의 분업화가 정교하게 얽히며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또 다른 흐름이 등장했다. 이른바 기능의학이다. 기능의학은 질병을 고립된 사건으로 보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 생활습관, 스트레스, 식습관, 수면의 질, 호르몬, 장내 생태계의 변화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본다. 이는 베르나르가 말한 내부 환경설이 현대적 형태로 되살아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능의학은 몸을 전쟁터가 아니라 생태계로 보고, 병의 원인을 깊은 뿌리에서 찾으려고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기능의학을 이해하는 일부 의사들이 5분 진료와 약 처방에서 벗어나, 환자의 전체적인 균형과 면역, 삶의 패턴을 함께 바라보며 치료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의료현장은 병명을 세분화해 설명하고 다량의 약을 처방하는 구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몸의 균형을 회복하고 지키려는 의지다. 소식, 규칙적인 걷기, 푸시업 같은 근육 운동, 충분한 휴식 같은 단순한 원리가 오히려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건강의 기반임을 알아야 한다.
오래된 중고차를 정성껏 수리해놓고 정작 길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는 이동하기 위해 존재한다. 수리는 이동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다. 몸은 우리가 삶의 길을 걷기 위해 주어진 이동 수단이다. 몸을 고치는 데만 전념하고 세상과의 접촉을 피한다면, 살아 있다는 의미는 흐려진다. 몸은 완성품이 아니라 흐름이며, 병은 적군이 아니라 균형이 흔들렸다는 작은 신호이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세균이나 세포의 제거가 아니라, 우리 안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질서와 조화의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