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人間)의 한자 자체가 '사람 사이에서'라는 뜻이며, 서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규정해왔다. 그래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사는 삶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항공기와 인터넷을 통해 세계가 빠르게 연결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겨우 지난 세기에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수십만 년 동안 협동은 인류에게 생존의 필수조건이었고, 자연스럽게 작은 단위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인류가 최초 조상에서 1800년경에 이르러 약 10억 명에 도달하는 데 수십만 년이 걸렸지만, 지난 200년 사이에 인구는 무려 8.2배나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현재 82억 명에 이른다. 세계 전체가 거대한 가상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만, 전통 사회적 협동심이 발휘되는 실질 공동체는 오히려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핵가족화와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로 인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을 여전히 전통적 의미의 사회적 동물로 규정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다고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개념이 완성된 것도 아니다.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말한 군중 속의 고독은 이러한 시대적 징후를 정확하게 포착한다. 현대인은 물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나, 정작 마음은 더 외로워지고 있다. 에리히 프롬도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현대인은 자유의 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새로운 의존과 종속을 찾아간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종교적 권위나 독재자의 힘, 혹은 여론이라는 익명의 권위에 복종하는 이유 역시 고독과 불안에서 도피하기 위한 심리적 기제라고 보았다.
이처럼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익숙했던 소규모 공동체의 질서 속에서는 잘 기능했으나, 급격하게 변한 현대 사회에서는 그 전통적 구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인간관계를 더욱 간접적이고 얇은 관계로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군중 속의 고독과 정신적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원시시대나 농경시대의 인간과 달리 현대인은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자존감과 명예에 대한 자각도 훨씬 크며, 일방적 위계질서를 더 이상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공동체의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현대적 조건에 맞는 새로운 공동체가 필요해지고 있다.
여러 철학자들은 21세기의 공동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물론 이들의 관점에는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앞으로 인류가 나아갈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버마스는 현대 사회에 필요한 공동체를 ‘의사소통적 행위’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로 보았다. 전통적 권위나 혈연이 아니라, 서로가 자유롭고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하며 합의에 도달하는 방식이 현대 공동체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을 인정하면서도, 대화를 통해 공동선을 만들어 가는 구조가 21세기에 적합한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공동체의 핵심을 ‘타인의 얼굴’에서 찾았다. 그는 공동체란 거대한 조직이 아니라, 타인의 고유한 얼굴을 마주하고 그 책임을 감당하려는 윤리적 결단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현대의 공동체는 규모가 큰 사회적 시스템보다도, 서로의 고통과 취약함을 알아보고 책임을 나누는 소규모의 윤리적 공간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캐나다 철학자인 찰스 테일러는 현대 사회가 개인주의로 인해 고립되는 현상을 비판하면서도, 개인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인정의 공동체’를 제안한다. 사람들은 존중받고 이해받을 때 자기 정체성을 건강하게 구성할 수 있으며, 공동체는 바로 그 상호 인정의 관계망 위에서 재구성돼야 한다고 본다. 즉 미래의 공동체는 혈연이나 전통적 규율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관계망을 통해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철학적 관점들은 한 가지 공통된 메시지를 공유한다. 21세기의 공동체는 과거처럼 혈연, 지연, 위계질서로 묶인 공동체가 아니라, 동등한 개인들이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의미를 만들며, 서로의 존재 가치를 확인해 주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에 적합한 공동체는 취미나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소규모 모임, 동호회, 온라인 카페 등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전통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협동, 돌봄, 배려, 존중의 가치가 첨가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건강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고립된 개인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인간다움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