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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Nee May 18. 2022

21년 5,6월 <아이>, <어디갔어, 버나뎃>

<클로이>, <미스 슬로운>

20210520 

<아이> (2021, 김현탁 감독)


가난하고 소외된, 강인한, 어떻게든 버티는. 그런데도 정의롭고, 도덕심이 있는 세 여자의 이야기.

이 영화는 보는 동안은 촬영이 별로인 거 같았는데.. 다 보고 나니 이상하게 촬영이 좋게 느껴진다. 

영화라면 기본적으로 중요한 건 배우.  감독은 주인공과 조연들 모두에게서 캐릭터를 잘 끌어냈다.  어떻게 저렇게 배우들 연기를 다 끌어낼 수 있었을까… 


내용이 내용인지라 숨 쉴 구멍이 보이지 않아 힘들었다.

독립영화로 보기엔 대중성이 있어 보이고, 상업영화로 보기엔 대중성이 부족해 보인다. 

예를 들면, 죽은 남자애.  갑자기 죽은 이유가 설명이 안된다. 장례식을 못 치르고 화장터로 간다는 것.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개연성이 부족해 보인다.  저렇게까지 아이들이 울고 불고 하는 모습이 다소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주인공을 고소한 영채. 그 일로 난감해진 주인공이 이 부분을 제대로 해소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설득이 좀 떨어지는 느낌. 

그럼에도 할 말 깔끔하게 다하고, 배우들에게서 캐릭터를 잘 이끌어낸 감독이 대단해 보인다.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어디갔어, 버나뎃> ( 2020,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이런 콘셉트의 가족영화를 찍는 감독이 우리나라에는 누가 있을까..? 없는 것 같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기본적으로 정상가족 안에 있다. 그러나 그 정상성 안에 비정상성을 배치한다. 


버나뎃이란 천재 여성 건축가와 딸의 관계가 아주 흥미롭다. 

사건의 시작은 25분 지점,  버나뎃 때문에 옆집 기둥이 무너지고 집이 엉망이 된 옆집 사람이 버나뎃을 찾아오면서부터다.  60분 중간점에 정신병자로 오인받은 버나뎃이 정신병동에 갇힐 뻔하다가 도망간다. 대개의 대중영화가 25분 지점 inciting incident에서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큰 사건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게 재밌다. 결국은 버나뎃이란 인물 중심의 영화가 된다. 구성점마다 특이한 사건들이 펼쳐져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구성점에 나타나는 사건들이 하나의 큰 사건으로 모인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정돈하면, '버나뎃이란 한 여성 건축가가 테크 기술 천재 남편과 사는 동안 육아만 하다 미쳐간다.'로 정리 가능하다.  우리나라 영화로 치면 <82년생 김지영>이 비슷한 것 같다. 

다만, 버나뎃은 북미 문화권의 쿨한(?) 감정이 느껴진다. 남극이란 공간적 특성이 주는 안구의 시원함도 중요하다. 이런 요소들이 주제의 어려움을 순화시켜주는 거 같다. 

한국에도 이런 느낌의 영화가 좀 있으면 좋겠는데...


20210613

<클로이> (2009, 아톰 에고이안 감독)

줄리언 무어가 남편의 바람을 의심하여 고용한 성매매 여성에게 낚여서 고생하는 이야기.

옛날에 <위험한 관계> 였던가. 마이클 더글라스가 하룻밤 잔 여성 때문에 집안이 파탄난 여자 버전인 듯. 줄리언 무어가 홧김에 아만다 사이프리드(라니...)와 잤는데, 아만다가 줄리언에게 집착하면서 집안에 침투하여 아들과 잔다. 

줄리언 무어는 배우로서 페미니즘적 캐릭터를 선택한 걸로 보인다. 관객이 설득되기 쉽지 않은 주인공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소시오패스로 그려놨는데 현대 관점에서  적합한지 잘 모르겠다. 2009년에 봤으면 좀 나았으려나..


<미스 슬로운> (2017, 존 매든 감독)

이 영화는 제시카 차스테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만 같다.

의회 법안 통과를 위한 사건 중심의 영화로 보이지만, 인물 중심 구성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냉혹하고 소시오패스 같지만, 기본 도덕과 정의감이 기저에 있다. 이유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의 공적- 사적- 내밀한 영역이 영화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 어쩌면, 총기로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정의로움일 수도. 평범한 가정을 꿈꾸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사기 쳐야 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일 수도 있다. 이 또한 감춰두고 있다.

승리를 위해 주변 사람을 감동시킨 후 실망시키기를 서슴지 않는다. 진정한 보살핌은 남과 자기 자신을 끝까지 이용했을 때 얻어내는 것이라 믿는다.


사건 중심 구성으로 보이는 이유는, 로비스트가 의원들 표를 얻어내는 미션의 연속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에피소드를 풀어가는 방식은 가까운 측근을 놀라게 하는 것, 더불어 관객도 놀라게 한다. 그녀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도 그녀를 믿을 수 없다. 

그녀를 유일하게 놀라게 한 사람은 자신의 내밀한 사생활을 고발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인간적 모습이 그녀가 대비할 수 없는 유일한 영역이다. 그래서 그녀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엔딩에서 그녀는 자신을 먹잇감으로 쓰면서도 법안을 승리하는 쪽으로 이끈다. 승리의 순간이 그녀를 외롭게 만드는 순간이다. 재판에서 그녀의 마지막 진심 어린 발언에 감동한 가까운 측근들은 이 또한 짜인 각본이라 느낀다. 그녀의 성공은 그녀를 외롭게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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