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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Nee May 26. 2022

22년 4-5월, <앵커>, <니 부모 얼굴이..>

한국에서 부모 되기란

20220430

<앵커> (2022, 정지연 감독)

한국판 <블랙스완>

젊은 여성 앵커가 9시 뉴스 메인이 되기 위한 고군분투기 호러버전. 

스릴러와 호러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다. <블랙스완>의 업데이트된 버전 같다.

구조와 캐릭터가 선명하고 이야기의 흐름과 완결성도 문제없이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재밌었다. 

이혜영 배우의 카리스마는 역시 대단하다. 


시작부터 주인공 캐릭터인 정세라의 얼굴에 상처가 보인다. 마치 <블랙스완>의 엄마처럼 주인공을 간섭하는 모습이 불길하게 느껴진다. 엄마가 실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단서를 주는 듯.

극이 진행하면서 의심쩍은 단서는 계속된다. 그것이 스릴러/호러 장르의 묘미이지.

정세라가 썩은 사과를 계속 깎는 것도 이상해 보이고.


오프닝 시퀀스의 싱글맘 살인사건은 이야기의 진행이 살인사건이 될지, 정신분열 사건이 될지 헷갈리게 만든다. 이 부분부터 관객과 작가의 두뇌싸움이 시작된다.  이어 신하균 캐릭터가 괜찮은 사람일까 이상한 사람일까 고민하게 만드는 것도 좋다. 

중반 이후 정세라가 왜 팔에 상처를 내는지, 변기를 붙잡고 왜 토하는지 궁금했다. 


정세라가 메인 앵커 자리에서 밀려나고, 그녀의 엄마가 분노하여 신입 앵커를 찾아가는 모습은 딸의 자리를 되찾아주려는 헬리콥터 극성맘의 모습이다. 하지만 실체는 극성맘의 살인이 아니라, 정세라가 신입 앵커를 죽였다는 사실이다. 정세라를 둘러싼 사건들은 제3의 인물이 벌인 살인사건이 아니라, 해리성 인격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벌인 살인이다. 이로서 장막 하나가 벗겨졌다. 

‘엄마는 자살했고, 정세라는 엄마의 극성 때문에 정신병이 생긴다.’라고.

그러나 뉴스를 진행하던 정세라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그녀의 다른 자아는 엄마이다. 엄마의 욕망은  딸의 자리를 되찾아주려는 게 아니라, 자신이 뉴스 앵커가 되는 것이다. 엄마의 극복대상은 정세라 자신이라는 점. 두 번째 반전이다. 이제 해리성 장애를 가진 세라는 자기 안의 엄마와 싸워야 한다.


그녀의 엄마는 잘 나가던 아나운서였지만 정세라를 임신하고 미혼모가 되면서 직업을 잃는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딸을 죽이고 동반자살을 하려 했다. 극 중 현실 속 정세라는 최근 벌어진 사건과 어릴 때 겪은 트라우마적 사건을 건드리며 엄마와 싸우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내 인생에서 사라져 달라고 말한 후 엄마는 자살하였고, 그녀는 엄마의 시체를 보고 자신의 인격을 양분한다.

내용이 새롭지 않지만 구성을 잘 짰다.


그럼에도 매번 느끼는 불만인데.. 엄마와 딸이 나오면 임신 때문에 포기해야만 하는 여자가 딸에게 원망감을 갖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하는가.  그로 인한 딸이 엄마를 향한 압박감. 

왜 매번 적대자가 그렇게 설정되는 걸까?

여성과 임신 공포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믿음?

이런 설정은 호러적 장르 특성에서 관객에게 쉽게 공감되는 부분이겠지만, 이제 그 설정 때문에 뻔한 인상이 들어서 덜 무섭다. 이제 넘어서야 할 시대가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말대로 여자 주인공 원탑, 투탑은 다 스릴러 아니면 호러라고?!

이제 아닌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20220510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2022, 김지훈 감독)

일본 작품 각색이라서일까..? 묘하게 정서가 어긋난다.

가해학생들의 부모들이 단합하여 피해 학생의 죽음의 진실을 은폐하는 데 주요 서사가 맞춰진다.  

주인공 변호사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려 가해 부모들과 동조한다. 처음에는 거의 선두에서 서서 이끈다. 중간점에서 피해학생이 죽고 자신의 아들이 희생량으로 몰리자, 다른 부모들과 대치상황에 놓인다.


대개의 상업영화는 이때부터  주인공의 마음이 흔들리면서 피해자에게 공감과 동일시를 한다. 반면 이 작품의 주인공도 그럴만한 정황에 놓여있지만 절대 피해자 편에 서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아들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입장에서 법정공방을 펼친다.

어째 어정쩡한 느낌이 있다. 주인공은 끝까지 진실을 은폐하며 아들을 보호하는 걸로 끝이 난다.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대중영화라기도 보기에는 대중적 엔딩은 아니다. 그렇다고 작가주의적으로 보기에는 서사를 끌어나가는 방식이 대중영화의 틀에 갇혀있다. 


문소리 배우는 이제 ‘문소리’라는 캐릭터가 너무 커서 피해자의 엄마로 바라보기 어렵다.

설경구 배우와 오달수 배우는 아주 살아있는 사람들 같았다. 

강한결을 연기한 성우빈 배우 앞으로 주목해야겠다. 


문소리와 천우희가 연기한 피해학생 엄마와 담임 선생님은 구조안에서 제대로 역할을 자리 잡지 못한 듯 배경처럼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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