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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Nee May 10. 2022

21년 11월, <세 번째 살인>, <휴머니티>

내가 히로카즈 감독과 동시대인라니…

20211126

<세 번째 살인> (2017,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왓챠)


히로카즈 감독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유튜브에서 2017년 BIFF 관객과의 대화를 봤다.


‘이런 류의 줄거리는 사건 때문에, 인물이 입체적으로 잘 안 보인다... 그 부분을 조심하려고 노렸했다.’라는 말이 상당히 와닿았다. 끔찍한 사건을 다루는 줄거리는 사건의 무게가 크기 때문에 관객들이 인물보다 사건에 집중하다 보니 '사람'을 말하기 어렵다는 의미였던 거 같다. 


고레에다 감독은 인물의 연혁을 자세하게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얼개는 잡는 것 같다. 그래야 의상이나 습관에 묻어나겠지.


시게모리는 차가움을 대변한다. 법을 대변한다.

어차피 법정은 진실을 다투는 곳이 아니라, 직업적으로 변호하는 곳이다. 형량을 낮추는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시게모리는 피고인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는다. 그렇게 작가는 인물을 상당히 입체적으로 만든다. 나쁜 놈, 좋은 놈이 아니라. 법을 대변하는 차가움. 그래서 딱히 인정이 없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충실하다. 


법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곳이다. 아무도 진실에 관심이 없는 곳.

사에카의 엄마는 진실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 그래서 자기만이라도 진실을 말하겠다는 사에카. 결국 그녀가 진실을 말하는 게 미즈미 피고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는 사에카도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아무도 진실에 관심이 없다.

진실을 말하지 않아야 모두가 살 수 있다. 진실을 말하지 않아야 모두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플롯의 구조를 보면,

- 변호사가 변호를 맡아서 형량을 깎기 위해 거짓말을 하려고 한다.

- 피고인이 여태까지와 다른 거짓말을 한다. 피해자의 아내가 살인을 교사했다고.

- 현장에 가는 변호인은 피해자의 딸을 발견한다. 피해자의 딸과 피의자가 친분이 있음을 알게 된다.

- 피해자의 딸과 피해자, 피고인 세 사람 사이의 어떤 관계가 존재하고,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변호인은 피해자 딸을 만난다.

- 피해자의 딸이 피고인을 구하고자 한다. 진실을 말하겠다고.

- (중간점) 피고인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 그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믿는 변호인. (정말 믿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다.) 진실을 파헤치는 변호인의 역할을 한번 해본다.

-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피해자 딸이 거짓을 말해야만 한다.

- 판사와 검사는 재판 논리의 정합성만을 따진 후 피고인의 사형을 결정한다. 피고인은 아무도 진실에 관심이 없음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실을 알고 있는 피해자 딸, 변호인은 법과 아무 상관없이 그의 마음만 안고 살아갈 수 있다. 



20211121

< 휴머니티> (1990, 브루노 뒤몽/ 시리즈온)


'인간에게 인간성을 제거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란 물음을 던지는 영화 같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들은 어딘가 나사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유아기 아이 같다가 섹스에 미쳐있는 듯이 보이고. 그들과 마주치는 사람들도 성욕만 남아 있는 듯이 행동하고.  무엇보다 주인공이 아동 강간살해 범을 찾아야 하는 메인 플롯이 이를 크게 뒷받침한다. 


열정 없는 파업을 하는 도미노(노동자). 파업하자마자 여행을 가고.  열정 없는 모습의 경찰 파라오는 '내 할 일이야'라며 파업을 막고. 파업을 하는 이도, 이를 막는 경찰도 열의가 없다. 


브루노 뒤몽 감독은 인간성을 제했을 때 남는 것은 성욕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 파라오가 수사를 위해 다시 방문한 현장이다. 

피해 아이가 탔을 그 버스를 타고, 피해 아이가 내렸을 그 장소에 도착한다. 바람이 솔솔 불고 버들잎이 살랑살랑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리고 눈앞에 소녀 둘이 걸어간다. 파라오가 앞에 걸어가는 소녀 둘을 보며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시점 샷으로 바뀌어 있다.

서정적인 풍광과 결합된 살인자의 흔적을 답사하는 파라오의 시점. 형사인 파라오는 살인 현장 답사를 통해 살인의 시선까지 답사하는 체험을 한 것이다. 바로 토한다. 토한 장면과 기차 장면을 통해 그렇게 해석해 본다. 

왜냐면 처음에 알 수 없는 불쾌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고 아름다운 풍광이 왜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까.. 감독이 노린 일종의 소격 효과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근데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블러 처리하는 방식이 아주 이상하다. 가리는 목적이라면 영화 앞부분의 피해자 음부도 가려야지, 소녀 피해자는 하지 않고, 뒷부분에 나오는 성인만 블러 처리를 왜 한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회화와 맥락을 이어가려면 피해자 장면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인물들의 섹스와 관련된 모든 것은 소녀 회화와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블러 처리는 작품의 의도를 결국 훼손한다. 의도를 훼손하려면 일관되게 훼손하던가. 가리지 않아야 작품의도가 제대로 전달 되겠지만,  가릴려면 제대로 다 가려라. 

이렇게 무식한 방식의 일처리는 정말 짜증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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