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드디어 시작된 관계

by bookground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 더 자주 연락을 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짧은 인사를 보내고 점심시간에는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퇴근 후에는 공연 이야기나 책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밤이 깊어졌다.

그건 선언으로 시작된 관계가 아니라 어느 날 문득 시작되어 있던 관계였다.


어느 날 그는 또 말했다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와?”

"나랑 같이 여행 가자."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었다.
그는 장난처럼 말했고, 나는 장난처럼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내 책이 나와 그에게 책을 전해 줄 겸, 그의 공연도 볼 겸 나는 그에게 갔다.

공연 시작 전보다 훨씬 일찍 만나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가 또 나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놀러 와"


나는 그 말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나 좋아해?

그리고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아님… 나랑 자고 싶은 거야?”

말을 하고 나서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어."

그리고 조금 뒤에 덧붙였다.

"나 너 좋아해.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너랑 자고 싶어."


그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는 공연 준비를 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떠난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진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우리가 이미 같은 계절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정말로 시작된 것은.




우리는 둘만의 작은 독서 모임도 만들었다.

화상으로 만나는, 둘 뿐인 독서 모임이었다.


첫 번째로 같이 읽은 책은 전태일이 고른 책이었다.

『마담 보바리』


“왜 이 책이야?”


내가 묻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 책 왠지 야할 것 같잖아.”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야… 하다고?”


"왜 이렇게 당황해? 우린 성인인데"


그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했고 나는 당황해서 책 표지만 괜히 몇 번 더 바라봤다.


나는 늘 책을 조금 진지하게 읽는 편이었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인물이 어떤 의미인지 같은 것들.

그런데 그는 종종 너무 솔직했다.


“이 장면 좋지 않아? 감정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다가도

“근데 이 장면은 진짜 좀 야하다.”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나는 그런 그의 태도가 조금 낯설기도 했고 조금 웃기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책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생각보다 자주 연락을 했다.

나는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전태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연락이 아주 느린 사람은 아니었지만 연락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이유로 우리가 처음으로 살짝 다투게 되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없어?”


“나? 핸드폰을 잘 안 봐”


“그게 난 좀 서운할 때가 있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아요?”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래도… 세네 시간 안에는 답장을 주면 좋겠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렇게 할게”


그 말은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정말로 그걸 지켰다.

바쁘더라도 짧게라도 답장을 남겼다.

그 작은 약속을 그는 꽤 성실하게 지켜 나갔다.

그래서 나는 이 관계가 조금씩 안정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었고 가끔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게 되었다.


어떤 날은 같은 책의 한 문장을 보내며 대화를 시작했고

어떤 날은 잠깐의 화상 통화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날도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태일이는 서울에 나는 세림에 살고 있으니

그래서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가끔 시간이 맞는 날에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그때의 만남도 대부분은 그의 집에서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멀리 나가 데이트를 하거나 어디를 함께 돌아다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여행 이야기를 자주 했다.


“우리 나중에 여행 한 번 가자. 난 일본에 가고 싶은데.”


나는 그 말을 꽤 오래 기억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먼저 물어봤다.


“우리 여행 언제 갈까?”


그는 잠깐 웃으며 말했다.


“요즘 좀 바빠서… 다음에 가자.”


그 말은 그 뒤로도 몇 번 더 반복됐다.


그렇게 우리의 데이트는 대부분 메신저와 화상 통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어떤 날은 그가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연락이 되지 않는 날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유가 누군가 때문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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