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이와 소풍 갈 때처럼 손수 샌드위치 도시락을 준비했다.
전태일 배우의 사진과 함께 "맛있게 드세요"라는 스티커도 만들었다.
요즘 아이들이 연예인에게 하는 '조공'이 어떤 건지 몇 날 며칠을 인터넷을 뒤졌다.
이 정도면 과한 건 아닌지, 괜히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계속 고민하면서도
손은 이미 다음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아이 엄마가 주책인가 싶어 몇 번이나 그만둘까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해 주고 싶었다.
포장을 하나씩 마칠 때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도시락을 몇 개 더 챙겼다.
그 공연에 출연하는 배우는 네 명이지만 배우들만 주기엔 어딘가 마음이 걸렸다.
무대 위 배우뿐 아니라 뒤에서 고생하는 스텝들도 생각났다.
그래서 샌드위치는 조금 넉넉하게 만들었다.
포장된 도시락들을 가방에 넣고 나니 문득 웃음이 났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팬이라고 하기에 좀 과한 거 아닌가?'
혼자 괜히 앞서 나가는 것 같아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전태일은 막 리허설을 마친 듯 보였다.
나는 준비해 온 선물 봉투를 건넸다.
그 순간, 마음 어딘가 숨겨두었던 수줍음이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오는 것 같았다.
괜히 손끝이 어색해지고 목소리도 조금 작아졌다.
“이거….
배우분들이랑 스텝분들이랑 같이 먹으라고 가자고 왔어”
그는 봉투를 받아 들고 안을 들여다봤다.
잠깐 정적이 흐른 뒤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 뭐야?
어… 이제 반말이 자연스럽다!”
마치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봉투를 다시 열어 보고 또 들여다봤다.
“샌드위치야. 공연 전에 간단히 먹으라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 이런 거 처음 받아봐”
그 말이 괜히 마음에 오래 남았다.
“배우들과 스텝들이랑 같이 먹을게. 완전 감동! 정말 고마워!!”
'사실 <완전 감동>이라는 말은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표현인데....
<완전>의 품사가 명사이니 감동이라는 명사를 꾸밀 수 없을 텐데.....'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런 걸 따지고 있는 내가 우스웠다.
그는 선물 봉투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스티커를 한참 바라보더니 손끝으로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더 민망해졌다.
그래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샌드위치를 몇 개 만들었을 뿐인데
그 사람은 대단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웃고 있었다.
객석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위로 배우들이 등장했다.
나는 계속 그에게만 시선이 갔다.
무대 위의 그는 방금 전까지 봉투를 들고 좋아하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목소리는 단단했고 눈빛은 집중되어 있었다.
그 사람을 보고 있자니 나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선물을 받곤 아이처럼 웃던 사람인데.
무대 위에 서 있는 그는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 상반된 모습이 이상하게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어느 순간 공연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저 좋아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조금씩 그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날 공연은 유난히 좋았다.
배우들의 호흡도 객석의 집중도 모두 이상할 만큼 따뜻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하나둘씩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공연장 밖으로 나오자 전태일이 먼저 나를 발견했다.
“오늘 공연 어땠어?”
“좋았어. 생각보다 훨씬.”
그는 잠깐 웃더니 조금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시간 괜찮으면… 차 한 잔 마실래?”
나는 순간 왜인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마 그날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게 먼저 무언가를 제안한 건.
우리는 공연장 근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공연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어느새 책 이야기로 이어졌다.
최근에 읽은 책, 좋아하는 작가, 기억에 남는 문장들.
분명 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서로 다른 감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음에도
이상하게 그와는 말이 잘 통했다.
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채 그와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그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배우 전태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자 전태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도 팬 박정아가 아닌 여자 박정아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우린 그날, 그렇게 서로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야기는 그날부터 시작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