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내 남자의 여사친?!

by bookground

그날은 이상하게 연락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세네 시간 안에는 짧게라도 답장이 오던 사람이었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읽지 않은 메시지는 그대로였다.

시간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결국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오늘도 옥수린과 전태일이 함께 있었다.


옥수린.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전태일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같이 연기하던 상대 여배우였다.


나는 그 여배우를 처음 인사한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도 전태일의 공연을 보러 갔던 날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그는 나를 데리고 그녀에게 갔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 내 팬이야. 박정아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정확히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나를 잠깐 훑어보던 눈빛.

조금은 경계하는 느낌이었다.

아마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다.




그 이후로도 옥수린은 전태일의 인스타에 자주 등장했다.

어느 날은 전태일이 그녀와 영화를 보러 갔다고 했다.

그날은 연락이 조금 늦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있으니까 연락이 안 되는 거겠지.'

그런데 나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없었다.

약속만 하곤 당일이 되서는 일정이 갑자기 안 된다며 취소를 하곤 했다.


어떤 날은 둘이 같이 연극을 보러 갔다고 했다.

같은 배우니깐 같이 연극을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나랑 같이 공연을 보자고 하면 늘 시간이 없다고 하는 걸까?'


그때 나는 한 장면이 떠올렸다.

어느 날 전태일이 반지를 끼고 나타났던 날을.


“그거 뭐야?”


나는 그 반지가 어딘가 불편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반지를 한번 만지며 말했다.


“아, 이거? 무대 소품.”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반지는 늘 옥수린과 함께 무대에 설 때만 보였다.

그때도 나는 그게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같은 작품이라도 상대 배우마다 소품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렇게 넘겼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결국 그에게 말했다.


“나… 옥수린이 좀 신경 쓰여.”


그는 잠깐 나를 보더니 생각보다 담담하게 말했다.


“수린이?”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걔 유부녀야. 결혼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금 머쓱해졌다.

괜히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조금 신경 쓰여.”


그는 잠깐 웃더니 말했다.


“알겠어. 조심할게.”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전태일이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내가 수린이가 신경 쓰인다고 말한 이후 그는 옥수린을 만나러 갈 때마다 나에게 먼저 말했다.


“수린이 잠깐 만나고 올게요. 이번에 내가 하는 작품 같이 하기로 했는데 대본 봐주기로 했어요.”


그리고 정말로 오래 만나지도 않았다.

가끔은 한 시간쯤 지나서 이런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나 이제 집에 가요. 수린이가 밥 같이 먹자고 했는데 그냥 집으로 가려고.”


그 메시지를 볼 때마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도 알겠고 그래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완전히 편해지지는 않았다.

배려를 받고 있다는 사실과 불편한 감정이 같은 자리에서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꼭 수린이를 만날 때는 저렇게 높임말로 얘기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는 나에게 높임말이 싫다며 늘 반말로 말하던 사람이었다.

가끔 높임말로 나에게 메신저를 보내지만 그럴 때 그냥 귀엽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말하기 어려웠다.




나는 점점 더 자주 전태일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하루는 그에게 듣기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장면들 속에는 종종 옥수린과 함께 있었다.


어느 날은 나는 옥수린의 인스타그램까지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녀의 계정에는 공연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전태일과 함께 찍은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사진들을 넘기다가 어느 사진에서 손을 멈췄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의 손이 잠깐 스쳐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걸 보았다.

두 사람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나는 화면을 조금 더 확대했다.

하지만 사진은 조금 흔들려 있었고 빛도 어둡게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같은 반지인지 그냥 비슷한 반지인지.


나는 결국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냥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걸 거라고.


하지만

그 이름이 다시 나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이 관계가 두렵다고 느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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