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이상하게 연락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세네 시간 안에는 짧게라도 답장이 오던 사람이었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읽지 않은 메시지는 그대로였다.
시간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결국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오늘도 옥수린과 전태일이 함께 있었다.
옥수린.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전태일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같이 연기하던 상대 여배우였다.
나는 그 여배우를 처음 인사한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도 전태일의 공연을 보러 갔던 날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그는 나를 데리고 그녀에게 갔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 내 팬이야. 박정아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정확히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나를 잠깐 훑어보던 눈빛.
조금은 경계하는 느낌이었다.
아마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다.
그 이후로도 옥수린은 전태일의 인스타에 자주 등장했다.
어느 날은 전태일이 그녀와 영화를 보러 갔다고 했다.
그날은 연락이 조금 늦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있으니까 연락이 안 되는 거겠지.'
그런데 나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없었다.
약속만 하곤 당일이 되서는 일정이 갑자기 안 된다며 취소를 하곤 했다.
어떤 날은 둘이 같이 연극을 보러 갔다고 했다.
같은 배우니깐 같이 연극을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나랑 같이 공연을 보자고 하면 늘 시간이 없다고 하는 걸까?'
그때 나는 한 장면이 떠올렸다.
어느 날 전태일이 반지를 끼고 나타났던 날을.
“그거 뭐야?”
나는 그 반지가 어딘가 불편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반지를 한번 만지며 말했다.
“아, 이거? 무대 소품.”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반지는 늘 옥수린과 함께 무대에 설 때만 보였다.
그때도 나는 그게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같은 작품이라도 상대 배우마다 소품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렇게 넘겼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결국 그에게 말했다.
“나… 옥수린이 좀 신경 쓰여.”
그는 잠깐 나를 보더니 생각보다 담담하게 말했다.
“수린이?”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걔 유부녀야. 결혼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금 머쓱해졌다.
괜히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조금 신경 쓰여.”
그는 잠깐 웃더니 말했다.
“알겠어. 조심할게.”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전태일이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내가 수린이가 신경 쓰인다고 말한 이후 그는 옥수린을 만나러 갈 때마다 나에게 먼저 말했다.
“수린이 잠깐 만나고 올게요. 이번에 내가 하는 작품 같이 하기로 했는데 대본 봐주기로 했어요.”
그리고 정말로 오래 만나지도 않았다.
가끔은 한 시간쯤 지나서 이런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나 이제 집에 가요. 수린이가 밥 같이 먹자고 했는데 그냥 집으로 가려고.”
그 메시지를 볼 때마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도 알겠고 그래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완전히 편해지지는 않았다.
배려를 받고 있다는 사실과 불편한 감정이 같은 자리에서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꼭 수린이를 만날 때는 저렇게 높임말로 얘기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는 나에게 높임말이 싫다며 늘 반말로 말하던 사람이었다.
가끔 높임말로 나에게 메신저를 보내지만 그럴 때 그냥 귀엽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말하기 어려웠다.
나는 점점 더 자주 전태일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하루는 그에게 듣기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장면들 속에는 종종 옥수린과 함께 있었다.
어느 날은 나는 옥수린의 인스타그램까지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녀의 계정에는 공연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전태일과 함께 찍은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사진들을 넘기다가 어느 사진에서 손을 멈췄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의 손이 잠깐 스쳐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걸 보았다.
두 사람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나는 화면을 조금 더 확대했다.
하지만 사진은 조금 흔들려 있었고 빛도 어둡게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같은 반지인지 그냥 비슷한 반지인지.
나는 결국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냥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걸 거라고.
하지만
그 이름이 다시 나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이 관계가 두렵다고 느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