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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원 Feb 12. 2022

해묵은 경력기술서를 꺼냅니다.

<유미의 세포들>에서 발견한, 게으른 직장인을 움직인 이직의 트리거


ㅇㅇ 너도~

이 짧은 답장에 유미는 이별을 결심한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주인공 유미는 남자친구인 구웅이 여사친 새미와 미묘한 선을 넘을 때도 “그럴 수 있다”라며 넘어갔다. 냉장고에서 여사친이 만들어 준 것이 분명한 유자청을 마주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미 마음속의 박은 구웅의 모호한 감정을 알면서도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히스테리세포가 쏘는 콩주머니 대포에도 멀쩡했던 마음속 박이었다. 그러나 저 짧은 메시지에 유미는 끈을 놓았다. 어쩐지 삐걱거리는 데이트 후, 관계의 개선을 위해 보낸 장문의 문자에 건네 온 성의 없는 답장이 바로 트리거였다. 유미의 자존감세포는 마음속 박에 콩주머니 한 개를 던졌고, 힘없는 콩주머니 하나에 박은 터졌다. 트리거는 별게 아니다. 깨닫지 못하는 동안 쌓인 수많은 서운함에 아주 작은 충격이 필요했을 뿐이다.


회사도 사람들이 모인 곳답게 관계는 비슷하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모여 마음에 산을 이루고, 아주 작은 충격에 금이 간다.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한 해, 끝을 모를 정도로 일했다. ‘회색처럼’ 중간만 가자는 직업관을 완전히 버린 한 해였다. 오후 2시에 요청한 사업계획서를 퇴근 전까지 만들어냈다. 시간외근무 기록에 ‘익일 오전 3시까지’를 입력해 보기도 했다. 일과 삶을 전혀 분리하지 않았다. 간혹 마감 기한에 쫓겨 새벽 5시에 제 발로 출근했을 때에도,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회의자료를 만들었을 때에도 서운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직장인이 평균 49.5세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다고 하니, 내 직장 생활 약 30여 년 중 가장 열심히 일하는 시기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흘러넘치는 일은 퇴사의 트리거가 되지 못했다.


처우도 마찬가지였다. 캥거루족으로 살고 있는 덕에 고정적 생활비가 크게 들지 않았다. 물론 엥겔지수가 1인 가구만큼 높았기 때문에 통장 잔고는 넉넉하지 못했지만. 호봉제로 운영되는 회사가 천지개벽 정도의 혁신을 꾀하지 않는 한 처우가 급격하게 개선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간혹 호봉제의 당연한 딜레마, ‘프리라이더’를 볼 때마다 화가 치밀긴 했다. 그때마다 지르는 처우개선 요구에 상사는 “조금 기다려봐라”“체제 개편은 내 권한 밖이야”를 적절히 섞어가며 대응했다. 처우는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할 몫이었다. 몸담은 회사가 호봉제로 운영되며, 내 호봉이 피라미드의 어디쯤에 있는지는 이미 입사 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너무 게으른 탓에 그저 꼬박꼬박 입금되는 월급 통장을 바라보며 이직의 타이밍을 미루곤 했다.


퇴사의 박을 열어버린 건 다른 문제였다. 과분한 업무분장과 부족한 보상은 잔잔히 파동을 일으켰지만 주말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열게 만들지는 않았다. 결국 관계였다. 일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묵은 경력기술서를 재정비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좋은 회사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당연히 나도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게는 무기력한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존재였다. 작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팀원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퇴사의 박이 터졌다. “내년엔 좀 더 나아질 거야”라는 팀장의 말이 그렇게 공허할 수 없었다. 그저 연말을 맞아 ‘좋은 말’로 포장하는 일종의 세리머니로 보였다. 공허한 한마디 말에 “내년에 나아질까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반문했다. 튀어나온 진심에 팀장은 당황했고 기분이 상한 듯했다. 종무식을 앞둔 연말에 말꼬리를 붙잡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정말 더 나아질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내년에도 무기력한 사람들과 계속 일을 해야 할 테고, 그때마다 나는 허무함에 허덕일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내년에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 팀장은 날 가장 힘 빠지게 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업무의 발전과 조직원의 역량을 고민하지 않는, 그저 책상 앞에 앉아 8시간을 버티는 사람이었다. 그런 상사 덕에 일개 실무자로서는 할 수 없을 광활한 업무를 마음껏 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 무기력에 신물이 나려던 참이었다. 머릿속에서 징이 울렸다. 유미가 구웅과의 헤어짐을 결심하던 것처럼, 나도 회사와의 이별을 결심하게 되던 순간이었다. 회사에 퇴사를 고했을 때 몇몇 사람들은 “지금 인정받고 있는데 왜 옮겨?”라고 물음표를 던졌다. “일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요”라고 둘러댔지만 진심은 관계에서 비롯된 공허함이었다. 그저 책상 앞에서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야 진심으로 퇴사의 변을 밝힌다. 아니라고는 했지만 방대한 업무와 부족한 보상도 당연히 이직의 사유였다. 그러나 이직의 방아쇠는 일도 처우도 아닌 공허한 관계였다. 함께 일하는 관계 속에서 무성의와 공허함을 느꼈을 때, 비로소 노트북을 켜고 해묵은 경력기술서를 꺼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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