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I love my job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원 May 29. 2020

초보딱지 언제 떼죠?

상상 속 어른의 삶을 닮아가고 싶다

출근길 나만의 포토존, 여기서 좌회전이면.... 진짜 회사다.. ㅠㅠ 


집이 있을 줄 알았다. 결혼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알람이 없어도 스르륵 눈을 뜨고, 에스프레소로 하루를 시작한다. 세탁물을 챙겨 출근길 세탁소에 맡긴 후 차에 올라탄다. 아침 시사 라디오를 들으며 회사로 출근하겠지. 일에는 늘 적극적이며 거침이 없고, 퇴근 후엔 간단한 운동을 통해 체력을 다진다. 주말에는 엄마를 모시고 교외로 나가 드라이브를 즐긴다. 15년 전쯤 상상한 서른두 살의 내 모습이다.


역시 고등학생은 철이 없었다. 저 상상 속에서 현실이 된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도 겨우 1년 전에 이루었으나, 상상 속 어른의 성취도 아니다. 한 시간 반씩 지하철을 타고 시달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자꾸 일을 미루고 수동적으로 하며 생기는 야근 때문에, 해를 거듭할수록 고꾸라지는 저질 체력 탓에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자동차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면허도 급히 땄다. 동네에서 제일 쉽다는 코스로 소문난 학원에 가서 아저씨 운전 강사의 반말 강습을 들어가며 속성으로 면허를 땄.. 아니 샀다. 그리고 상상 속의 독일차는 아니었지만, 작은 국산 자동차를 계약했다.


면허 취득과 자동차 구입이 현실이 된 뒤, 어른이 된 기분을 자주 느낀다. 출근길 스타벅스 드라이브 쓰루로 미끄러져 들어가 커피를 주문한다. 사실 어젯밤부터 프라푸치노가 먹고 싶었지만 난 어른이니까 아메리카노를 산다. 입천장이 다 까지더라도 상상 속 내 모습과 갭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랄까. 그래도 자유로운 발이 생긴 이후 야근도 더 오래 할 수 있다. 밤 12시가 넘어 창문을 열고 뻥 뚫린 내부순환로를 달리며 어른 같은 내 모습을 즐긴다. 예전에는 남친 차로만 갈 수 있었던 스타필드와 이케아를, 이제는 내가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다. 초보딱지를 붙였을지언정 고작 이동의 옵션이 추가됐을 뿐인데, 상상 속 어른의 모습과 닮아가는 환상 속에 산다.


물론 상상은 설탕유리같아 잘 깨진다. 접촉사고 후 허둥지둥대는 도로 위에서, 기름값이 추가된 카드 명세서에서, 운동량이 줄어들어 헉헉 거리고 올라야 하는 계단 위에서 어른이 된 상상은 무참히 깨지고 만다. 그럼에도 운전과 자동차는 삶의 주도권을 갖게 되는 아주 중요한 매개가 되었고, 덕분에 또 다른 상상도 불러온다. 운전이 가능한 서른둘의 내가 상상하는 어른은 접촉사고 같은 돌발상황에도 무던히 대처하는 사람이다. 싫은 사람과 같은 차를 타더라도 둥글둥글하게 견딜 줄 아는 사람이고, 프라푸치노가 먹고 싶으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프라푸치노를 주문하는 사람이다. 상상 속 어른을 향해 운전하는 나는 언제쯤 초보딱지를 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기억한다. 그의 위로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