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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PM Nov 17. 2024

글레디에이터2, 거장이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

스포최소화


"나의 분노가 아닌 타인의 자유를 위해"



관객은 자신을 가르키려는 영화와 감독을 싫어한다. 이는 리들리스콧 감독의 글레디에이터2에도 상당부분 적용되는 것 같다. 그러기에 관객들이 1편만 못하다 하는 걸까?



예를 들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개인적인 분노와 복수의 짜릿함은 누구나 공감하기 쉽다. 그러나 감독은 이러한 분노조차 새시대를 위해선 삼가해야 된다 말한다. 1편 역시 설교하는 듯한 묘사가 있었으나 2편에 비해 오락적인 측면에 충실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 듯 1편에선 주인공 막시무스는 '전쟁의 신'으로 나온다. 영화 시작 장면에서 게르만족과의 막시무스가 이끄는 로마군과의 전투는 임용한 전쟁사 박사님도 인상 깊다고 표현했다.


 검투사들을 장군처럼 지휘한다.


https://youtube.com/shorts/K4CLzSezPuI?si=mWxslvOxnE1VjM4g


위 쇼츠의 막시무스 연설과 웅장한 bgm 'the battle' 을 듣고 있자면 나도 용맹해진다. 동생에게 당장 말과 검을 구해오라고 명령하고 동네라도 질주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운동하기 싫을 때 듣는다.



이처럼 막시무스는 영화 밖에 있는 사람을 움직일 정도로 힘있고 또한 명예롭다. 불필요한 살생을 싫어한다. 예를 들어 검투경기에서 사람들을 썰어버린 뒤 그의 속마음이 나타난다.



이제 다들 속이 시원하냐!
이만하면 실컷 즐겼지?!
더 이상 뭘 보고 싶은가!!



과거에 위 대사를 들었을 때 뜨끔했다.

영화 밖 관객인 내가 영화 속 검투경기를 보는 관객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영웅과 같은 주인공이 대놓고 나에게 쓴소리 하기 때문이었다.



리들리 스콧은 나에게 이러한 긴장과 재미를 번갈아가며 선사하며 나의 감정을 조종했다. 특히 막시무스의 복수가 성공하고 이 복수가 로마의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장면에서 짜릿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처럼 글레디에이터 1편에서는 복수라는 감동 자체에 집중했으며 복수가 긍정적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글레디에이터 2편에서는 복수가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분노가 너의 재능이야"



2편의 주인공인 루시우스를 검투사로 다루는 덴젤 워싱턴의 대사다.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전략적이나 반사회성 인격장애 그러니까 소시오패스적인 성격을 가졌다. 분노와 공포로 사람을 조종하려 든다.



이에 비해 루시우스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검투장 안에서의 복수가 아닌 검투장 밖에 있는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싸운다. 특히 영화의 엔딩에서 잘 표현되었다.



누군가는 이런 엔딩을 1편에 비해 졸작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는 목적은 일반적으로 감동이 1순위다. 문제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복수라는 감정의 의미가 누가봐도 공감될 정도로 매끄럽게 변화되지 않는다. 복수는 빠른 템포로 새 나라를 만들기 위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묘사된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2편의 엔딩은 멋졌다. 변화한 시대에 걸맞은 메세지를 주기 때문이다.



글레디에이터 1편의 막강한 로마처럼 군림했던 미국의 국력은 1편 개봉 후 약 25년간 꾸준히 기울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미국은 위태위태하여 근 미래에 2편의 로마처럼  시민들의 공포와 분노가 통제불능이 될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미중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절반 내외라고 하기도 한다. 세계는 자유무역 경제 체계에서 블록화 된 경제 체계로 급변하고 있다.



혼란스럽고 경제도 어려운 시대인 만큼 사람들은 부당함을 경험하고 분노에 지배당하기 쉽다.



이 때 분노하면 할수록 판단력은 흐려진다. 그리고 영화 글레디에이터 1편과 같은 복수의 성공과 희망적인 미래와는 점점 멀어진다. 심지어 분노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억력이 떨어지고, 치매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고 한다. 분노의 불길은 없애고자 하는 대상이 아닌 분노하는 사람의 삶부터 태워버린다.



그러므로 위기일수록 그리고 분노할수록 복수심을 키우기보단 나를 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의 감사함에 집중해야 한다. 나의 분노가 아닌 타인의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물론 말은 쉽다. 막상 억울한 상황에선 지키기 힘들다.



나는 얼마 전에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 직장에서 윗분에게 복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부당하다 심하게 느끼면 '어찌저찌 생각해야 한다' 보다 분노와 먼저 마주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정중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글레디에이터 2를 보고나니 나의 과거를 반성하게 된다. 분노가 아닌 감사함에 집중했어야 다..



이처럼 글레디에이터2는 나에게 풍부한 감정과 영감을 주었다. 볼지 말지 고민되는 분들은 꼭 보셨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엔 마냥 허술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도 스크린은 글쓰기 처럼 나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접하는 사람마다 느낀 점이 다를 수 있다.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직접 영화관에 가서 보고, 느끼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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