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집으로 돌아와서 호텔과 항공권을 검색했다.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가야 하니 날짜는 겨울이어야 했다. 9월에도 그곳의 기온은 섭씨 40도를 넘어선다. 12월의 기온은 25도 전후로 베스트.
그다음은 휴가 일정 정하기인데, 직장인 분들은 다 아실 거다. 휴가를 내기에 적당한 시기 따위란 없다는 걸. 그래서 그냥 정했다.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 떠나기. 다녀오면 엄마도 나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남은 가족들과 보낼 수 있다.
항상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벌써 12월. 회사 사람들이 서로에게 안부로 연말 휴가 계획을 묻기 시작했다.
나의 다정한 비서, 루카 Luca (가명): "어디로 갈 거야?"
나: "가족들과 네덜란드에 있을 거야. 영국에 있는 아들이 집으로 오거든. 아,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 주에 엄마랑 아부다비에서 만나기로 했어."
70대에 접어든 엄마와 40대 중반의 딸, 단 둘의 여행.
정말 근사한 계획이라고,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는 루카에게 나는 농담과 진담을 섞어서 대답했다.
나: "응 고마워. 근데 서로 안 싸우고 돌아오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나 할까 ㅎ"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온 우주가 나에게 한 목소리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D-DAY 7일 전.
루카가 같이 점심을 먹자면서, 회사에서 역시 비서로 일하고 있는 자기 언니 파올라(Paula)를 데려왔다. 둘 다 오십 대 후반, 미혼으로 두 자매가 함께 산다고 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식사를 시작하면서 루카가 나와 엄마의 여행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물었다.
나: "바빠서 신경도 못쓰고 있지. 출발하기 직전에야 짐을 쌀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말하지만 엄마랑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니까."
루카와 파올라가 잠시 눈빛을 교환하더니 자기들의 엄마 이야기를 꺼냈다.
루카: "우린 평생 엄마를 미워하면서 살았어. 엄마는 우리들을 억압하는 사람이었거든. 우린 남들과 다르게 자랐고, 집에서 탈출한 큰언니를 빼고 나랑 파올라는 이렇게 평생 미혼이야."
갑자기 시작된 두 자매와 엄마의 이야기. 인도네시아 출신의 간호사였던 둘의 어머니는 세 딸을 모두 과보호하며 수녀처럼 키웠다고 한다. 평생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게 만든 엄마에 대한 미움을 거두게 된 계기는 엄마의 사망 후 의료기록을 정리하면서였다고 한다. 세계 2차 대전에 간호사로 참전했던 엄마는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한 기록이 있었다고.
"지금은 엄마를 이해하지. 하지만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더 이상 곁에 안 계시는걸."
그 뒤로 휴가를 시작할 때까지 적어도 세 번은 더 루카의 당부를 들어야 했다.
"엄마랑 좋은 시간 보내. 엄마의 이야기를 잘 들어드려. 난 엄마랑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는 게 아직도 마음이 아파."
DAY 1. 여행 첫째 날.
아부다비에 도착한 후 엄마와 나는 바로 호텔의 스파로 향했다. 긴 비행의 피로를 씻어주는 데는 사우나와 정성 어린 마사지만 한 게 없으니까.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직원이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 유 맘 앤 도터? 엄마와 딸인가 봐요?" "예스, 위 아. 위 아 트래블링 투게더. 네, 맞아요. 같이 여행 왔죠."
그때부터 그녀의 밀착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엄마가 샤워실 쪽으로 가면 고무로 된 슬리퍼를 신겨주고, 마사지실 쪽으로 갈 때는 보송보송한 면 슬리퍼로 갈아 신겨주었다. 샤워실을 가기 전에는 따뜻한 차와 말린 무화과와 살구를 가져오고, 샤워를 해야겠다는 말에 자기가 미리 더운물을 맞춰놓겠다며 종종걸음으로 샤워실로 향했다. 그리고 엄마가 샤워를 마칠 때까지 앞에 서 있다가 엄청 보드라운 타월과 실크 가운을 내어주었다.
좋은 호텔의 스파이니 좋은 서비스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려고 해도 평균대비 좀 더 신경 쓰는 게 느껴졌다.
마사지는 한 층을 바꿔가야 하는데 엄마 무릎이 편치 않은 걸 눈치채고는 스파용 작은 엘리베이터로 안내하면서 나에게 속삭였다.
"엄마와의 여행이라니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난 우리 엄마가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지 못한 게 늘 마음이 아프답니다.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가세요."
스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자 그녀가 다시 나타나서 우리 모녀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주고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당부를 재차 전했다.
DAY 2. 여행 둘째 날.
현지 시간에 조금 적응한 우리는 아부다비 시내로 나갔다. 호화롭고 아름다운 대통령 궁을 방문한 후 조금 멀리 떨어진 야스 아일랜드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여러 층의 대형 쇼핑몰을 천천히 걸어서 구경하다가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가서 현지식을 배가 터지게 먹었다. 상어 안심 다짐과 해산물 바비큐. 꿀맛!
식사 계산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우버를 불렀더니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차가 도착했다. 문제는 식당이 쇼핑몰 우버 승차장의 정 반대쪽에 있었다는 것!
서둘러 정문을 향해 걷기 시작하는데 엄마의 무릎이 아파왔다. 게다가 곳곳에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자꾸 눈길을 잡아 끄니, 이래 저래 택시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자를 보냈다.
"우리가 쇼핑몰 정 반대쪽에 있는 걸 몰랐어요. 엄마가 천천히 걸어야 하는데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취소합니다."
그러자 곧바로 날아온 답장.
"걱정 마세요. 얼마가 걸리든 기다리겠습니다. 엄마는 인생이니까요. Mom is life."
?? 난데없이 웬 엄마가 인생? 이게 맞는 영어이긴 한 거야?
우린 정말로 천천히 걸어서 우버 기사를 만나 차에 올랐다. 그가 기다린 시간이 20분이 넘었다.
몇 번이나 고맙다고 얘기하는 나에게 아프가니스탄에서 왔다는 그가 짧은 영어로 얘기했다.
"엄마는 인생이에요.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죠. 지금 내 아내도 존경해요. 그녀도 엄마이니까요."
뚝뚝 끊어지는 영어라 그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다 알 수 없었지만, 그에게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감상이 꽤나 묵직하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쯤 되니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엄마, 온 우주가 나에게 엄마에게 더 잘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어." ㅎㅎㅎ
살아계신 엄마를 대하는 감정은 좋음, 싫음, 고마움, 원망, 미움, 사랑, 그때마다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엄마를 잃은 사람들의 감정은 하나로 모아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