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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스트 Feb 18. 2024

회사 생활이 약간 좋아질 때

소소한 기쁨

 

 같은 회사를 15년째 다니고 있다. 서른 남짓한 나이에 입사했는데 악. 마흔 중반을 훌쩍 넘었다. 네 번째 이직 후에 들어간 다섯 번째 회사에서 예상과 달리 장기 체류 중이다.

 

 처음 시작은 한국 지사였다. 남산 중턱 고즈넉한 사옥에서 삼 년 하고 두 달, 아시아 퍼시식 본부인 싱가포르에서 삼 년 반 정도 다니다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본사로 온 것이 팔 년 전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생 때에는 회사를 이리저리 옮겼고, 현재 회사에서는 근무지를 한국-싱가포르-암스테르담으로 옮겨 다녔으니, 그동안은 이직과 주변 환경의 변화가 곧 내 커리어의 성장과 같았다.

 

 그러다가 지금 이곳에서 같은 회사, 같은 도시, 같은 건물에 팔 년 넘게 출근하다 보니, 아침 출근길에 문득, 회사 안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그땐 그랬지" 하면서 피식 웃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노인네 같고 속물 같은 소리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에겐 소소한 기쁨이다.






  내가 (조금은) 성공했나라고 느끼는 소소한 순간 베스트 3. 


 1. 회사 주차장을 아무 때나 드나들 수 있다.


  한국에서 좋은 회사에 다니는 분들은 아니 이게 뭐? 하실 수 있겠지만, 이곳 암스테르담에서는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굉장히 불편하다. 환경오염 관련, 도시 안전 관련,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의 정책 자체가 안티 자동차다. 괜히 자전거의 도시가 아니다.

 암스테르담 도심에 으리으리한 집을 소유하고 있어도, 백여 년 된 구축 건물인 경우 주차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엔 시청에 따로 주차 공간을 신청해야 하는데 대기자가 많아서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우리 회사의 지하 4층 지상 22층짜리 사옥에는 상주 직원이 천명이 넘는다. 이 중에 지하 2/3/4층이 주차장인데 회사 직원을 위한 주차 공간은 지하 3층과 4층에 채 100대도 되지 않는다. 지하 2층의 주차장은 이사회 멤버들의 전용 주차 몇 칸, 그리고 외부 방문객 전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원이 되어 회사에서 차량을 지급하더라도 사옥 내의 주차장 자리는 덥석 주지 않는다. 회사에서 300미터쯤 떨어진 기차역 근처 다른 건물의 지하 주차장을 지정받았을 때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사옥 주차장에 맘대로 드나들기 시작한 건 2022년부터다. 이제 입구 단말기에 사원증만 태그 하면 입구가 스르르 하고 열린다. 아침 회의 시간에 간당간당하게 도착한 날 주변을 배회할 필요 없이 곧바로 회사 지하로 쭉 들어갈 때, 네덜란드의 엄청 험하고 궂은 날씨 - 특히 비바람이 부는 날에 가볍고 우아한 옷차림으로 출근할 수 있을 때 문득문득 아.. 나 좀 성공했니 하는 기분이 든다.



2. 회장님이 계시는 최고경영진 전용 층에 출입할 수 있다.


 암스테르담 본사에 처음 온 2016년, 나의 직급은 디렉터였다 (한국의 이사급). 낮은 직급은 아니었지만, 회사 내에는 내가 출입할 수 없는 곳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고봉은 회장님을 포함한 최고 경영진과 그들의 비서들이 포진해 있는 20층이었다. 어쩌다 20층의 부름을 받더라도 엘리베이터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비서분이 안쪽에서 문을 열어줄 때에만 공손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20층에 처음 가 본 것은 네덜란드 생활 초반 어느 날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사업부의 신제품 출시를 기념하는 행사일이었다. 시연 제품으로 만든 감자튀김을 직원들과 나눠먹고 있는데 보스였던 셀리나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지금 20층 비서들에게 감자튀김을 나눠주러 갈 건데 같이 구경가지 않겠냐고. 그게 처음이었다.

 셀리나의 사원증 배지를 태그 하자 해당 층의 입구가 탈칵! 열리는데 마음속에 오오- 하는 존경심이 올라왔다. 층의 입구 쪽 중앙에는 비서들이 앉아있고, 건물의 창문 쪽으로 쭉 둘러서 최고경영진의 오피스와 회의실이 보였다.

 세월이 흘러 흘러, COVID가 물러나고 회사 출근이 정상화된 후 2022년의 어느 평범함 날. 내가 속한 소비자부문 CEO의 부름을 받고 20층에 도착했다.

 모든 층의 입구가 사원증 태그로 열리기 때문에 내가 20층에 온 것을 망각하고 습관처럼 입구 단말기에 사원증을 가져다 댔다. 에고 이게 무슨 짓이야 하고 생각하는 순간 오옷!! 단말기의 신호가 빨강이 아닌 초록색으로 변하더니 탈칵하고 문이 열렸다. 마이 갓. 이게 머선 일이람.

 솔직히 지금도 회사의 방침이 바뀌어서 20층에 아무나 출입할 수 있게 한 건지, 나에게 출입 권한이 주어진 건지 정확히는 모른다. 굳이 어디에 물어보기에도 좀 애매한 질문이라서 그냥 혼자만의 소소한 재미로 간직하고 있다.



3. 휴가와 출장을 승인받지 않는다.


 휴가 시스템을 졸업한 지는 이미 오륙 년이 넘어서 이제 그러려니 한다.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하지 말이다. 하지만 처음 인사부로부터 승진 패키지와 함께 '이제부터 근무 일수와 휴가 일정은 100% 본인 재량으로 결정하시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짜릿함은 기억에 남아 있다. 유럽이라는 환경이 더해져서 아이들 여름 방학과 겨울 연말연시에 2주에서 3주 정도 자유롭게 휴가를 내고 쉴 수 있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여기에 더해서 한 사업부문의 대표가 되고 나니 출장의 자유가 주어졌다. 언제 어느 나라에 가서 누구를 만날지, 누구를 대동할지 내가 알아서 정한다. 물론 회사의 전반적인 해외 출장 방침 (고객사 만남이 최우선, 내부 미팅은 가급적 온라인으로)과 연간 예산 범위 안에서 주어진 자유이다.

 오랫동안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서 '가야 하는 출장'만 다니다가 내가 '가고 싶은 출장'을 정할 수 있게 된 건 여전히 좀 신선하고 흥미롭다. 이렇게 주도권을 가졌을 때의 장점은 일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적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점인 듯하다. 이제는 1년의 캘린더를 두고, 비즈니스 우선순위에 따라서 어느 국가에서 누구를 만나서 어떤 논의를 하기 위해서 언제쯤 방문해야 하는지 미리 계획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참 감사한 것은 이제 내 가족의 일정을 우선순위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전히 내 위에 보스들이 있고, 국제 규모의 행사 일정을 내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만, 최종 일정이 정해지기 전에 나의 일정이 허락되는지를 사전에 확인하곤 하니, 거참, 새롭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가장 많이 의지할 때 가장 노예처럼 살다가 이제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니,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에게는 일상의 작은 기쁨인데 막상 적어놓고 보니 젠체하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다. 현실 밸런스를 위해 사회생활의 쫄보가 되는 순간도 하나 더해본다.


내가 사회생활에서 쫄보가 될 때

 

 회사 20층에 상주하는 높은 분들 중에 애매하게 얼굴만 아는 분과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정말 그냥 뛰쳐나가고 싶다.

 20층 밖에 거주하는 애매한 "방계" 경영진의 한 명으로서 반갑게 인사를 하자니 무서운 질문이라도 받을까 봐 두렵다.  인사를 안 하자니 '혹시라도 나를 알고 있다면 엄청 결례일 텐데'하는 마음에 불편하다.

 그리하여 나의 서바이벌 스킬은 다음과 같다.

 1. 무조건 헬로! 인사한다.

 2. 자기소개는 안 한다.  

 3. 재빨리 눈을 돌려 엘리베이터가 이동 중인 층수를 센다.




 

 여러분들도 지루하고 거친 회사 생활 중에 소소한 성장의 기쁨을 찾아내보시기 바랍니다.

 

 

(대문 사진: 암스테르담 암스텔 강변에 위치한 회사 21층 회의실에서 찍은 지난주 해 질 무렵의 풍경. 제 사무실은 5층이지만 마음이 답답한 날에 가끔 올라갑니다.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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