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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스트 Jun 10. 2024

버티기의 비결을 물으신다면

24년차 회사원 | 경영인


일이 몰아치자, 일의 흐름에 나를 맡겨뒀다. 한동안 정신없이 지냈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회사는 과도한 투자의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우리 사업부는 유럽 시장에 주력해 타격이 적지만, 그만큼 하반기 성장 부담이 커졌다. 전사적으로 비용 절감이 필요하니 몇몇 프로젝트와 채용을 중단하고, 해외 출장을 금지할 예정이다. 열심히 일한 직원들에게 포상을 하진 못할 망정 찬물을 끼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   동안 지인, 후배, 팀원들이 비슷하게 겹치는 질문을 해왔다. 단순하게는 '어떻게 회사에서 그렇게 오래 버티고 있느냐 (올해로 24 )'부터, 조금 복잡하게는 '인종/성별/문화적 마이너리티 minority로서 어떻게 꾸준히 외국 기업에서 성장할  있었느냐' 질문들이다.

 

 지난주에는 예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가 찾아왔다. 구직 2 . 자기 동료 5 중에 3명이 직장을 잃었다고 한다. 다들 대기업에서  나가던 디렉터급 이상의 시니어들인데 유럽 내에  곳이 없단다. 기존에 받던 연봉이나 지위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신생 기업, 스타트업의  경영진으로 가려고 해도 지원자가 넘쳐나서 쉽지 않다고 했다.

 

 나를 포함, 누구에게나 일어날  있는 일이다. 기업에 구조 조정이 일어나면  그대로 구조가 조정된다. 하나의 사업부나 팀이 통째로 사라지면 개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모두 직장을 잃는다. 내가 여전히 근무 중이라는  내가 조금  운이 좋았다는   정도인  같다. 남다른 능력 같은  없다.

 

 하지만 비슷하게 물어오는 지인, 동료, 후배들에게 '모든  운이에요'  수만은 없는 .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오랜 직장 생활 동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단련하려고 했던  가지가 떠올라서 얘기해 주었다.

  



 


 첫 번째. 돈의 흐름을 알기.

  수년 , 한국 켈로그 Kellogg's 마케팅팀에 입사한  얼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경력직 과장으로 입사를 했는데, 나의  업무에 덤으로 광고 제작비와 미디어 비용의 연간 예산 관리 업무가 나에게 넘어왔다. 대행사들이 보내는 각종 계산서와 연간 예산 지출의 변동 사항을 빡빡한 엑셀파일에 맞추어 넣는 일이었다. 보아하니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서 만만한 중고 신입인 나에서 던져버린 분위기였다.

 

 살짝 당황하던 나에게 회사 내에서 전설의 에이스로 불리던 선배가 조언해 줬다. " 과장님, 지금은 마케팅에서 광고 아이디어 내고 연예인들이랑 촬영 다니고 하는 일들이 반짝반짝해 보이지? 조금만  지나 봐요.    아는 사람이 위로 올라가는 거야. 업계 흐름을  봐요. 이제 CMO (Chief Marketing Officer 마케팅헤드)보다 CFO (Chief Financial Officer 재무헤드) 출신들이 CEO 자리로   올라갈걸?"

 

 주어진 일을 마다할 처지는 아니라서 일단 예산 관리를 떠안았는데, 생각보다  만했다. 미디어 예산 집행과 시장 점유율의 연관성을 놓고 일본인 지사장과 옥신각신 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숫자에 실수가 없다며 재무팀 상무님의 칭찬을 종종 들었다.

 

 마케팅 부서의 비용 집행을 손에 쥐고 나니, 지사장과 임원들의 실적 보고 회의에 자주 불려 갔다. 영업에서 얼마를 벌어 얼마의 이익을 내고, 마케팅에서 얼마를 쓰고, 본사에 어떻게 최종 이익이 보고되는지 조금씩 눈에 보였다. 그렇게 손익계산서 (P&L) 읽을  있게 되었고, 회사의 경영이  P&L 관리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사업부 P&L 책임자가  지금, 오랫동안 회사의 돈의 흐름을 읽어내는 훈련을 해온 덕을 보고 있다. 그중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돈의 흐름에 대한 아주 단순한 원칙 알게  점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익 = 성과.  (Profit is performance) 아무리 거창해도 돈이  되는 사업은 지속하기 어렵다.

 (2) 이익 = 매출 - 비용. (Profit = Revenue - Cost) 이익을 많이 내려면 매출을 올리고 비용을 줄여야 한다.

 (3) 매출 = 판매 수량 X  가격. (Revenue = Unit sales x Price) 매출을 올리려면  많이 팔든지 가격을 올리든지,  다를 하든지 해야 한다.

 

 이런 단순한 원칙을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원칙에 부합하는 행동이나 결정은 장려하고,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이나 결정을 제한하게 된다. 그러면  사고 없이 사업을 운영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승인해주지 않는 대표적인 활동이  가지 있다.

 첫째, 매출 올리겠다고 가격을 함부로 내리지 않는다. 내려간 가격만큼 판매 수량이 올라가도 매출은 제자리이고, 그런 효과도 실제론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 물류비용과 재고 관리에 항상 신경 쓴다. 납기가 염려된다고 해서 쉬이 항공사를 이용하거나 무리한 재고 쌓기를 하지 않는다. 물류비와 재고는 이익을 직접적으로 차감시키는 비용이고, 특히 재고는 회사의 현금 흐름을 정체시키는 주범이다. 줄여야 한다.

 

 

 두 번째. 의사결정 잘하기.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소위 말하는 '결정권자'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결정권자가 되고 나면 결정을 미루거나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모습을 보인다. 위험 회피 성향 또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마음인  같다.

 

 나는 결정에 신중하되, 내가 내려야  결정은 적절한 시기에 내가 내리는 편이다. 스스로 세운  가지 경영 원칙이 있으면 일관적인 결정을 내릴  있고, 그게 조직의 문화를 안정적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된다.

 

 사업부 대표가 되기 전에는 내 상사 의사결정을 도왔다. 내가 어떤 직무를 수행하든지,  상사가 중요한 의사 결정을  때 내리도록 준비시켜주는 것이 부하 직원인 나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이때, 의사 결정권자에게  결정  방향  (one-way door)인지, 회전문 (two-way door) 인지 명확히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에 따라 의사결정을 위한 준비가 달라진다.

 

1. One-way door 결정. 한번 통과하면 되돌리기 매우 힘든 결정 - 예상되는 결과의 시나리오를 준비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새로운 지역에 연구소나 공장을 설립하는 계획이 전형적인 one-way door 결정이다.   투자하면 되돌리기 어렵고, 실패하면  손실을 입을  있다. 이럴 때에는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한다. 최악의 경우 (worse case scenario) 항상 준비하고, 성공할 경우 기대할  있는 이익을 면밀히 따져낸다. 이렇게 해서 두세 가지의 옵션을 한눈에 정리해 놓으면 결정권자가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2. Two-way door 결정. 갔다가 돌아올  있는 결정 - 성공의 기준을 사전에 정의하고 KPI (key performance index)의 목표치를 정한 다음, 일의 성과가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 재빨리 되돌아와서 결정을 수정한다. 대부분의 영업과 마케팅 활동이 이에 해당된다. 간혹 경쟁사나 시장 상황의 변화에 신속한 대응이 필요할 ,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각종 아이디어 옵션과 비용과 시나리오 분석에 매달리느라 며칠 또는  주를 보내는 경우를 본다.  이럴  나는 가장 빨리 임팩(impact)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일단 현장으로 가서 실행하라고 조언한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되돌아와서 다른 방법을 취하면 된다.




 중국발 위기 상황이 경영진에게 알려진 것이 지난 금요일 정오였다. 이후 오후 5 퇴근 전까지  가지 사항을 챙기고 나서 주말을 맞았다. 하반기 매출을 올리고 비용 지출을 줄일  있는 결정을 위한 준비이다.

 첫째, 중국 공장장에게 연락해서 주요 제품의 긴급한 부품 확보를 요청하고, 하반기에 가능한 최대치의 추가 생산량을 알려달라고 했다. 유럽 공장은 이미 최대치로 가동 중이니 단기에 판매를 늘리려면 중국 공장의 생산량을 올려야 한다.

 둘째, 월요일 오전 팀장회의의 참석 명단을 확대했다. 평소에는 마케팅/재무/연구소/브랜드 팀장들만 모이지만, 이번에는 물류, 디자인, 광고팀과  곳의 연구소 선임들까지 참석하도록 했다. 일사불란하게 회사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서  버는 자와  쓰는  모두가 정확한 현실을 파악하고 동일한 지시를 받도록 해야 한다. 1주일 내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항들을 미리 정리해서  팀장들이 신속하게 준비할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는 것은 내가 이번 주말에 해야할 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생존할  있도록 해준 원칙들이 앞으로도 나의 방패막이 되어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일상은  도전과 기회의 공존이고, 나는 여전히 위기를 맞이하고 힘든 결정을 내려야  것이다. 다만  순간마다 가장 좋은 선택을   있도록  자신을 믿고 훈련시키는 중이다.

  

 사회생활을   해내고 싶은 누군가에게 작게 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항상, 여러분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대문 사진: 지난  어느 날의 출근길. 요즘 네덜란드의 날씨는 연일 환상적이다.  트인 파노라마 뷰의 파란 하늘을 보며 출근할  있는  평지의 나라, 네덜란드에 사는 모든 이들이 가진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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