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써보는 팬레터
루틴은 깨지는 게 정상이라고 어떤 훌륭한 분이 (Youtube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좌절금지.
하지만 나에게는 지난 십수 년간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은 루틴이 있다. 지구 반대편에 날아가 낮과 밤이 바뀐 채 일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신기할 만큼 놓친 적이 없다.
1. 하루 일과를 마치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침대에 기어들어간다.
2. 핸드폰을 연다.
3. 로빈순 표류기를 읽는다.
4.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끼며 잠에 든다.
로빈순 표류기.
캐나다 교민인 빈순언니가 한국에서 워킹맘의 삶을 살다가 밤톨 같은 쌍둥이 아들들과 곰돌이 남편분과 함께 캐나다로 돌아가 살고 있는 일상을 담은 그림일기 블로그다. https://blog.naver.com/marylee1434
나는 작가님을 빈순언니라 부르고, 곰돌이 남편분을 마음속으로는 형부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언니를 실제로 만나본 적이 있기 때문. 싱가포르에서, 서울 언니의 회사 근처에서, 그리고 잠실의 우리 집에서! 와 대단하다.
십수 년 전에 내가 꼬물이 애 셋을 데리고 홀로 싱가포르로 건너갔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참 막막했었다.
회사의 부름을 받고 건너갔으니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의식주 걱정이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영어를 1도 못한다는 공포, 그리고 곁에 엄마도 친구도 없이 혼자 어린아이들 셋을 키워내야 한다는 두려움이 컸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싱가포르의 공기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어지는 바람에 거의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그런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싱가포르 오피스 동료들의 가족 같은 보살핌, 그리고 밤에 애들을 재운 후 조그만 서재방에서 혼자 읽던 빈순언니의 블로그 덕분이었다. 조곤조곤하지만 엉뚱한 데서 유머가 폭발하는 언니의 말투에 완전히 중독되어 혼자 웃고 울고 그랬다. 언니가 소개해 주는 책들은 어떻게든 2주에 한번 오는 남편 택배를 통해 챙겨봤다.
그날도 언니의 블로그를 보다가 '저는 지금 싱가포르에 있어요.'라는 문구를 보고 왓! what! 하는 마음에 용감하게 메시지를 보냈고, 그렇게 언니를 만났다. 이후에 언니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까지 서울에서 두 번 더 소중한 만남을 가졌었다. 이제는 캐나다 온타리오라는 머나먼 곳으로 가버리셔서 언니의 블로그에 가끔 안부를 전하는 정도지만 마음은 늘 뜨겁다.
회사 생활은 언니가 선배, 쌍둥이 육아는 내가 선배다.
언니의 용감하고 씩씩하고 꾸준한 일상을 응원하고, 그러는 동안 내 일상에 위로를 받으니 그저 감사하다.
빈순언니, 파이팅.
그냥 마무리하기가 섭섭하여 나를 로빈순 중독에 빠지게 한 바로 그 첫 글을 캡처해 보려고 했으나.. 실패. 너무 오래전이어서 찾아지지 않는다. 분명 브릿짓존스의 일기였던 것 같은데, 언니의 '다아시 예찬'에 같이 빠져들었던 게 선명한데.. 엉엉.
좀 더 최신(?)의 2016년 포스팅을 찾았다.
예쁜 그림체, 언니만의 캘리그래피가 일단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고.
영화평은 사심 가득해 보이는 첫 느낌과 달리 의외로 (?) 날카롭다.
그리고 무심한 듯 툭 던지는 언니의 일상 한 조각.
아.. 정말이지 중독을 부르는 소중함이다. 다시 읽어도 너무 좋아요 언니.
https://blog.naver.com/marylee1434/220854614929
대문 그림의 저작권은 로빈순 작가님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