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여행-스페인/ 바르셀로나 1
그를 처음 만난 건 바르셀로나 람브라 거리 레이알 광장에서였다.
나는 분수대 근처 카페에 앉아 따사로운 지중해 햇살을 즐기며 카푸치노를 홀짝이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맛보는 달콤한 휴식이었다. 의대 6년에 인턴 1년까지, 정신없는 세월을 지나오며 이렇게 여유로운 삶이 존재하는 걸 모르고 살았다니… 새삼 억울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행복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만 있어도 이렇게 좋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있을 때, 불쑥 볼멘소리가 들렸다.
“어, 거기 내 자린데……”
나는 누군가의 행복을 도둑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자리에 앉을 때 아무것도 못 본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 남의 자리에 잘 못 앉는 실수를 범한 건가? 괜히 허둥거리며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짙은 갈색 머리에 수줍게 안경을 낀 남자가 더듬더듬 바람 빠진 영어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
“에잇 모르겠다. 같이 앉고 싶은데, 괜찮죠?”
뭐야, 작업을 건 거였어? 순간 맥이 탁 풀렸지만, 어느새 두 뺨이 발그레해진 그가 싫지 않았다. 수법은 유치했지만, 타이밍이 기막히게 좋았다. 슬슬 혼자만의 여행이 지루해지려던 순간이었다. 순진해 보이는 그의 외모도 경계를 풀게 했다. 그의 이름은 피에르. 프랑스 리옹 출신인 그는 지금 교환학생으로 바르셀로나에서 공부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상하게 피에르와 말이 잘 통했다. 둘 다 외국어인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일이 버겁지 않았다.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말이 그냥 술술 통했다. 동네 산책을 하다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떨 듯 우리는 K-POP을 이야기했고, 프랑스와 오종 감독의 특이하고 날카로운 영화 시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수다 끝에 그가 흥미로운 제안을 해왔다.
“대성당에 같이 갈래? 거기 가면 볼거리가 아주 많아.”
피에르를 따라 고딕 지구에 위치한 대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벼웠다. 골목길 어귀를 지날 때 바람도 살랑살랑 불었다. 상쾌했다. 가슴이 뻥 뚫렸다. 나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가 일시에 사라진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나를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병원에 갇혀 환자들과 고군분투하고 있을 의대 동기들이여 안녕! 나를 제치고 성형외과 레지던트가 된 친구들, 나를 떨어트린 교수님들도 모두 모두 굿바이! 당신들은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지? 하면서 혀를 빼물고 메롱, 약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의대 본과 3학년 때였다. 병원 실습을 하는데, 환자들이 무서워졌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병마의 횡포에 만신창이가 된 환자들과 마주 서는 내내 식은땀이 흘렀다. 증상은 인턴을 할 때도 계속됐다. 열과 성을 다해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질끈 눈을 감고 의대에서 배운 매뉴얼대로, 로봇처럼 환자를 진료하는 내 모습이 끔찍하게 싫었다.
“아, 환자를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의사는 없을까?”
“있지. 성형외과 의사!”
환자 공포증에 시달리는 내게 의대 선배였던 남자 친구가 성형외과를 권했다. 재건성형이 아닌 미용성형을 하면 아픈 환자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그렇게 나는 성형외과 레지던트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태어나 처음 맛본 실패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자 친구가 뒤통수를 쳤다. 3년을 사귄 남자 친구가 3개월간 바람을 피운 여자와 결혼한다며, 문자로 이별을 통보해왔다. 실패와 시련으로 속절없이 무너져 한 달을 앓았다. 죽고만 싶었다. 바르셀로나에 사는 친구만 아니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내 소식을 들은 그녀는 무조건 바르셀로나로 오라며, 밤낮으로 전화를 해댔다. 그녀의 성화에 못 이겨 서울을 떠나온 것이 일주일째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