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로 떠나는 유럽여행

네 번째 여행-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2

by 소심한 삘릴리

아이 엠스테르담 (I amsterdam) 2


비 때문에 헤어졌다고? 송아지 눈처럼 커다래지는 한스의 눈이 묻고 있었다.

그래, 우린 순전히 망할 놈의 비 때문에 헤어진 거야. 재근의 가슴에 새삼 비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차올랐다. 비만 오면 완전 딴사람으로 변하는 그녀 때문에 지치고 너덜너덜해졌던 그의 삶이 새삼 떠올랐다.

이상했다. 평소에는 멀쩡한 아니 세상 누구보다 낙천적이며 명랑한 그녀가 비만 오면 완전 딴 사람으로 변했다. 우울한 얼굴로 창밖만 바라보거나 툭하면 신경질을 부렸다. 어떤 날은 비가 온다는 이유로 약속을 펑크 내기도 했다. 처음엔 몰랐다. 비가 오면 그녀가 이상해진다는 것을. 몇 번 바람을 맞고, 만났다가도 크게 싸우던 날들을 되짚어보니 모두 비가 오는 날들이었다.

왜, 유독 비 오는 날마다 이상해지냐고 물어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답답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녀와 사랑했던 2년의 시간 동안 두 번의 장마를 겪었고, 그때마다 크게 싸우고 잠시 헤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재근은 그녀와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연인 사이의 사랑싸움은 늘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흘러가던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을 무렵,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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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는 이유로 그녀가 상견례 자리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재근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미리 나와 있던 서경의 부모님들도 그녀의 무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화가 난 재근은 서경이 왜 그렇게 비 오는 날 이상하게 변하는지, 이유를 대라고 그녀를 다그치며 험한 싸움을 일으켰고, 그 싸움을 끝으로 그들은 헤어졌다.


밤사이 겨울비가 내렸다. 빗소리에 눈을 뜬 재근의 머리가 지끈지끈 무거웠다. 서경과의 추억이 악령처럼 그를 점령한 탓에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솔직히 서경이 왜, 어떻게 암스테르담에 와 있는지도 궁금했다. 겨울비를 맞으며 P사로 가는 동안, 재근은 귀국하기 전에 서경을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찜찜한 마음을 안고 귀국하기 싫었다. 재근은 P사에 들러 암스테르담 출장을 마무리하기 무섭게 서경이 일하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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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오늘 일 안 하세요.”

착하게 생긴 웨이터가 창가 자리에 앉은 서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 서경이가 이 레스토랑 사장이라고? 살짝 당황한 재근은 서둘러 서경을 찾았다. 그녀는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를 바라보며 우울한 얼굴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비에 젖어 흐트러진 그녀를 보는 순간 그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재근은 애절한 눈빛으로 그녀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녀가 촉촉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국분이시군요.”

그녀가 능숙한 영어로 말했다. 어제 그랬던 것처럼, 그를 전혀 몰라보는 얼굴이다.

바보같이…… 이러고 있는데, 내가 널 모를 줄 알아? 재근의 표정이 안타까움으로 일그러졌다.

“사실, 제 뿌리도 한국인이죠. 어릴 때 입양돼서 기억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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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입에서 입양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서경과 헤어지던 날, 그녀가 털어놓은 비 오는 날의 아픔이 또렷이 떠올랐다.

다섯 살 무렵, 쌍둥이 동생이랑 동해 바닷가에 사는 이모네로 놀러 갔었고, 둘이서 이모 몰래 바닷가에 나가 놀다가 소나기를 만났고, 동생 손을 꼭 잡고 이모네 집으로 뛰어갔는데, 집에 도착해 보니 혼자였다고. 그렇게 헤어진 동생을 영영 찾을 수 없어서 비 오는 날마다 가슴이 무너진다며 통곡하던 그녀의 울음소리가 이명처럼 재근의 귓전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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