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로 떠나는 유럽여행

두 번째 여행- 프랑스/파리 1

by 소심한 삘릴리


에펠탑 그녀 1


파리 여행 3일째. 찬란한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찍 샤워를 마친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러나 세련되고 멋지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꽃단장하고 거울을 본다. 흠, 내일모레 마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파릇하다.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했다. 나날이 중후해지는 외모는 이제 신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봉쥬르 형부”

부엌으로 들어서자 처제가 오븐에서 갓 구운 바게트를 꺼내며 활짝 웃는다. 10년의 프랑스 유학생활을 끝내고 처제는 파리에 정착했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고, 취직까지 하더니 프랑스 여자가 다 됐다. 에스프레소 주전자에서 보글보글 커피 향이 끓어오른다. 완벽한 아침이다. 아, 그녀를 만나기 딱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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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애들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산통을 깨듯 꽥꽥거리는 아내 목소리가 들렸다. 3일째 감지 않은 머리가 부스스하다. 내 인생 최대 강적들, 쌍둥이가 아직 한밤중이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어마어마한 거금을 투자해서 녀석들을 파리 디즈니랜드까지 데려간 보람이 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드넓은 파리 디즈니랜드를 휘젓고 다녔으니 정신 못 차리고 자는 게 당연하다.

“내버려둬. 녀석들 아마 점심때까지 잘 테니까.”

“잘됐다, 오늘 내가 쌍둥이 봐줄 테니까, 두 사람 데이트나 하지?”

이런, 바게트에 무화과 잼을 바르던 처제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잘못하다가 10년을 기다린 오늘을 망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 홀로 외출을 할 수 있을까. 주변머리 없는 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쇳소리 같은 아내의 투정이 들려왔다.

“됐어~. 맨 날 보는 남자랑 데이트는 무슨… 여보야. 혼자 나가도 섭섭하지 않지?”

기특하게 아내가 모처럼 예쁜 말을 했다. 섭섭하긴? 당연히 좋지. 나는 저절로 삐져나오는 미소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늘도 자매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라는 덕담까지 한바탕 늘어놓고 밖으로 나왔다. 아, 처제를 핑계로 아내를 꼬드겨서 파리로 휴가 오기를 정말 잘했다. 신의 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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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카페에서 하이네켄 생맥주를 주문하고 파리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야외 테라스로 나갔다. 우리가 앉았던 자리가 어디였더라, 기억이 가물거린다.

10년 전, 유럽여행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에펠탑에 올랐던 나는 나머지 일정을 포기하고 에펠탑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렇게 멋진 곳을 잠깐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모파상은 에펠탑이 싫어서 에펠탑이 안 보이는 에펠탑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지만, 나는 에펠탑을 즐기고 그곳에 존재하고 싶어서 카페에 앉아 탑 아래 경치를 흘끔거리며 책을 읽었다. 인천 국제공항 서점에서 산 책,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를 읽으며 회사에 사표를 내고 도망치듯 여행을 떠나온 나의 암담한 미래를 반추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내게로 왔다.

“합석해도 될까요?”

그녀는 대답도 듣기 전에 맞은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카푸치노를 홀짝였다. 어,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에펠탑 테라스 카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아, 책을 봤군.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나는 그녀를 일별 했다. 프랑스 사람인가, 착각할 정도로 이국적인 미모에 우수의 젖은 눈빛.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가슴이 시큰해지는 그녀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커피를 다 마신 그녀는 내 존재는 아랑곳없다는 듯 프랑스 책을 꺼내 들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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