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페리고르-
3장 무모한 키스

by 소심한 삘릴리

3. 무모한 키스

역사와 플랫폼 사이에 어정쩡하게 선 태주가 역으로 들어서는 테제베를 바라본다. 테제베가 멈추고 승객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한다. 은서를 맞이하러 플랫폼으로 들어갈지 망설이던 태주가 살짝 발을 떼는 순간, 어처구니없게도 아내를 마중하던 기억이 오버랩된다.


재작년이었던가. 딸아이와 파리 여행을 떠났던 아내가 잔뜩 풀 죽은 얼굴로 엑상프로방스 테제베 역을 걸어 나왔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딸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서울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해야 하는 딸아이와 헤어진 아내는 세렝게티 초원에서 새끼를 잃은 짐승처럼 가슴이 휑해 보였다. 그는 말없이 플랫폼을 나서는 아내를 안아주었다. 그때는 아내와 참 애틋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수정이랑 같이 있지 못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일도 못하고……”

“바보. 이럴 때는 그냥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야.”

그의 품을 파고드는 아내가 솜털처럼 가벼워 와락 안아주던 기억이 난다.

휴직하고 그를 따라 프랑스로 온 아내의 처음 몇 달은 순탄했다. 한 달 동안 머물던 호텔을 나와 집을 마련하고 이사를 한 뒤에는 주말마다 아비뇽이나 아를 같은 근교 도시로 소풍 같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가끔, 아내가 낯선 외국생활을 버거워하는 것을 느꼈으나 그러려니 했다. 그 역시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빠 아내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소심한 아내였으나 늘 그렇듯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잘 이겨내리라 믿었다. 맹세컨대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아내의 외로움을 헤아리지 못했고, 아내가 나날이 침울해지고 야위어 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딸아이가 개학을 맞아 서울로 돌아간 다음부터 아내의 증상은 더 심해졌다. 남편과 함께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프랑스로 왔으나 아내는 전업주부의 나른한 삶에 적응하지 못했다.

언어장벽도 그녀를 주눅이 들게 했다. 수학교사였던 아내는 프랑스어는 전혀 못 했고, 영어도 미숙했다. 궁여지책으로 어학원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작은 시작이 아내를 돌이킬 수 없는 좌절의 늪으로 몰아넣은 것 같다. 어학원을 오가느라 지친 아내의 안색은 나날이 창백해졌고, 입에서는 매일 한숨이 흘러나왔다.

“온몸에서 자신감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절망이 느껴져.”

어느 날인가, 그가 퇴근해서 돌아오니 식탁에 앉아 프랑스어 동사 변화를 외우던 아내가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가르치는 일에만 익숙했던 아내는 까막눈이처럼 남의 말을 배우며 통과의례처럼 받아야 하는 수모를 못 견뎌했다.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마.”

그는 건조하고 의례적인 말로 아내를 위로했다. 그 말에 힘입은 아내는 어학원을 그만두고 아예 그 길로 집안에 칩거해 버렸다. 아내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무섭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퇴근해 집에 들어가면 아내는 죽은 듯이 자고 있을 때가 많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아내가 겨우 차려주는 저녁밥은 프랑스 연구소 구내식당의 느끼한 음식들보다 더 맛이 없었다. 부부간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아내는 변했다. 서울에서 아내는 잘 웃었고 순종적인 여자였다. 태주가 힘들 때마다 엄마처럼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달래주기도 했었다. 평생 아내의 보살핌을 받는 일에 익숙했던 그는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아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힘들었다. 매사에 트집을 잡고 무엇이든 싫다고 투덜거리고 툭하면 눈물 바람을 하는 아내가 싫었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아내가 “서울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거였다. 태주는 그런 아내에게 서운했고 야반도주를 약속했던 첫사랑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괘씸했다. 옛날의 아내가 그리웠다. 아내가 미워서 집 안에 발을 들여놓기 싫을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뾰족하니 갈 곳도 없었다. 태주는 연구실에 남아 늦게까지 야근을 자처했다. 차라리 그게 편했다.

“연휴에 니스랑 모나코에 다녀올까?”

그렇게 냉랭한 몇 달을 보내고 태주가 화해의 몸짓을 보냈을 때,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몇 달째 외출은커녕 미장원도 가지 않아 산발이 된 머리를 질끈 동여맨 아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입가로 시니컬한 미소도 스쳤다. 호의를 무시당한 태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등을 돌렸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태주는 마시던 커피잔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내의 기분을 풀어준다며 산 명품 리모주 커피잔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산산 조각났다.

“그래. 가! 차라리 내 앞에서 사라져 버리라고!”

냅다 소리를 지르며 태주는 아내의 눈가가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후련했다.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했다. 체기가 뚫린 것 같은 시원함에 뿌듯해하며 그는 만족한 미소를 머금고 집을 나왔다. 그날 이후, 아내는 말문을 닫았다. 희미하게 오가던 대화도 뚝 끊겼다. 이제부터 자존심 싸움이었다. 태주도 질세라 굳게 입을 다물었다.

“나, 오늘 서울 갈 거야.”

냉전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아내가 공포영화 속 가해자보다 더 섬뜩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출근길의 태주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아내의 비장한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비웃기까지 했다. 잠시 방심했던 것 같다.

“흥! 잘됐네. 서울 가서 이혼 서류 보내. 도장 찍어줄 테니까.”

아내는 정말 떠났다. 아차, 싶었다. 그제야 태주는 10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방학이 시작되던 날, 부부싸움 끝에 아내의 뺨을 때렸다. 울컥해서 저지른 부끄러운 잘못이었다. 곧바로 사과하려는데 그를 쳐다보는 아내의 눈에 서슬이 퍼렜다. 그 눈길을 피하려는 몸부림으로 또 벌컥 화를 냈고, 밥상까지 엎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재앙 같은 실수였다. 아내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일단 싸움은 그의 승리로 끝난 것 같았다. 그는 호기롭고 당당한 표정으로 출근했다. 그날 밤, 퇴근해보니 아내와 아이가 없었다. 휴대폰도 받지 않았다. 처가에도 친구 집에도 아내는 없었다. 실종신고라도 내고 싶었으나 꾹 참고 일단 개학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아내가 사라진 한 달 동안 그는 지옥을 헤맸다. 짐작대로 아내는 개학 전날, 딸아이와 함께 돌아왔다. 제주도에 있는 국제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들과 영어공부를 했다, 고 딸아이가 말했다. 지칠 대로 지치고 전의마저 상실한 그는 어색한 웃음으로 아내를 맞이했다.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날 이후, 태주 부부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일을 함구했다. 은근히 아내를 무시하던 그의 버릇이 사라진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쨌든 아내는 떠났고 지금까지 소식 한 장 없다. 이혼 서류를 보내오지도 않았다. 물론 이혼 서류를 보내라고 한 것은 홧김에 한 말이었으니 그렇다고 치자, 그의 모든 전화를 거부하고, 휴대폰마저 꺼둔 아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 그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외면하는 아내의 속내는 또 무엇일까. 태주는 일 년째 계속되고 있는 아내와의 힘겨운 갈등에 지쳐 탈진하기 일보 직전이다. 영혼까지 탈탈 털린 기분이랄까. 어서 아내와 지겨운 전쟁을 끝내고 은서와 달콤한 미래를 꿈꾸고 싶기도 하다.


070922_061 막세이 시가지가 다 보이는 성당.JPG


은서가 활짝 웃는 얼굴로 플랫폼을 빠져나온다. 작년에 보았을 때보다 더 싱그럽고 환한 얼굴이다. 덩달아 태주의 마음도 들뜬다. 그녀의 고운 이마와 반듯한 눈매에서 스무 살 시절이 보인다. 가슴이 뛴다. 아, 은서의 눈가에 잡힌 미소 주름도 참 곱다. 서툰 첫 키스를 나누다 부딪쳤던 날카로운 콧날도 옛날 그대로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태주를 발견한 은서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민다. 가늘고 긴 손가락에 살빛마저 창백한 그녀의 손이 보드랍고 따뜻하다. 마주 잡은 그의 손이 살짝 떨린다. 처음, 이 손을 잡기까지 석 달 걸렸다. 이 손을 잡고 세상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절대로 놓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손을 다시 잡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들떴던 마음과 달리, 테제베 역을 출발해서 몽펠리에로 접어들 때까지 거의 2시간가량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말들이 오가다 끊어지기를 반복한다. 재회하던 순간의 화기애애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태주는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서먹함의 정체를 짐작하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고 싶다. 여행 중에 들으려고 프낙에서 산 올드 샹송 CD를 틀까 망설이다 그것마저 그만둔다.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 마실까?”

어색한 침묵을 깬 건 은서였다.

몽펠리에를 벗어나자마자 만난 첫 번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들은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를 한 잔씩 주문한다. 스탠드 테이블에 마주 서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달게 마신 은서가 어렵게 입을 연다.

“아무래도 그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피곤하다 싶을 정도로 분명하고 똑 부러지던 그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옛날에도 그랬다.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태주와 달리 은서는 대범하고 활달하고 명확했다. 태주는 운명 같았던 재회가 허무하게 끝난 그날의 일들을, 실타래처럼 엉킨 그들의 감정을, 차근차근 풀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고 싶었다.

“다, 지나간 일이야. 우리도 그냥 지나가자.”

가만히 은서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깊다. 담담하고 겸허하게 무슨 일이든 받아들이겠다는 결연한 의지마저 보인다.

“이 상태로는 여행을 못 할 것 같아서 그래.”

은서가 고집스레 그를 바라본다. 애써 담담하려던 태주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너한테 부끄럽고, 네 아내한테 미안해서 도망쳤어.”

솔직히 태주도 혼란스러웠다. 무작정 벗어버린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자리를 피해 준 그녀가 고맙기도 했다. 거기까지였다. 그날 이후, 잠시 그녀에 대한 기억을 접어두었던 것 같다.

“민석이가 파리로 출장 왔었어. 그래서……”

“나는, 나는 말이야 그냥, 그냥 지나가면 좋겠어.”

굳어지는 태주의 표정을 눈치챈 은서가 얼른 말문을 닫는다.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두 사람 사이를 흐른 뒤, 그녀가 가만히 그의 손을 잡는다. 가슴이 훈훈해지도록 뭉클하고 따뜻한 손이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를 위로하고 받아줄 것 같은 마음이 담긴 손이다.

“그래. 우리가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만족하자.”

그녀가 햇살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신기하게 그들을 억누르던 진하고 갑갑한 우울 모드가 사라진 느낌이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수줍은 연인처럼 눈인사를 나눈다. 이제 모든 것을 털어내고 여행을 즐기라는 마지막 사인을 받은 사람들 같다.


110602_019.JPG


휴게소를 나선 태주는 고속도로를 따라 프랑스의 명물 현수교 비아 둑 밀로를 향해 달린다. 어느새 하늘이 온통 회색빛이다. 6월 초순 날씨가 서늘하다. 감정을 풀어낸 은서는 기분이 좋아져서 재잘재잘 그녀 특유의 수다를 풀어놓는다. 조곤조곤 만연체로 이어지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녀의 수다 소리에 그의 마음이 편안해진다. 현수교를 지나 얼마쯤 달렸을까. 내비게이터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드는 길을 안내한다.

“바람이 좋다.”

국도로 접어들자 그녀가 차창을 열고 손을 내민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의 속삭임을 듣는 표정이 아련한 행복으로 가득하다. 차창으로 뾰족한 지붕을 이고 선 돌집들이 이어진다. 무심한 듯 피어있는 들꽃들이 태주에게 수줍게 인사를 보낸다. 그가 살던 프로방스를 벗어나 처음으로 찾아가는 페리고르 지방 풍경이 낯선 듯 익숙하다. 마음이 한껏 풀어진다. 기분 좋은 드라이브다. 도로와 인접한 레스토랑 앞을 지나는데, 바람결에 고소한 냄새가 실려 온다.

“맛있는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알아?”

은서가 환하게 웃으며 태주를 바라본다. 태주의 눈빛이 잠시 흔들린다. 서로의 생각을 알아맞히기에 그들은 너무 많은 시간을 지나왔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태주의 머릿속이 멍해진다.

“……”

“보글보글 끓던 이모집 김치찌개!”

끼익. 태주의 푸조가 영혼을 빼앗긴 가엾은 나그네처럼 갓길에 멈추어 선다.

“파블로프의 침 흘리는 개처럼 말이야.”

라고 웅얼거리던 은서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벌써, 이십 년도 넘게 지난 일이야.”

“그런데?”

은서는 여전히 놀란 얼굴이다.

“바보야.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으면 어떡하니?”

태주의 가슴이 먹먹해진다. 김치찌개 하나에 밥 두 공기를 시켜먹던 그들의 가난한 연애가 애틋하게 다가온다. 가난한 연인을 위해 맛있는 김치찌개를 넉넉하게 담아주던 식당 이모의 푸근한 미소도 생각난다. 하루가 다르게 희미해져 가는 은서와의 안타까운 사랑을 꺼내 볼 때마다 그의 가슴을 저리게 했던 추억이다. 자존심 하나로 가난을 버텨내느라, 부잣집 딸 은서의 경제력에 기대지 않으려고 죽어라 애쓰느라, 그녀에게 맛있는 거 한 번 못 사주던 시절이었다.

“뭐야! 그 표정은. 감동한 거야?”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의식한 은서가 태주를 보며 배시시 웃는다. 아이스크림처럼 환한 미소가 그를 도발한다. 태주는 와락 그녀를 끌어당겨 입술을 찾는다. 안전벨트를 풀 사이도 없이 허겁지겁 그녀를 더듬어 동백꽃보다 붉은 입술을 부드럽게 깨문다. 그녀의 열기가 뜨겁다.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간 연인의 무모한 키스가 콩크로 향하는 여정을 들뜨게 한다.

이전 02화6월의 페리고르- 2장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