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페리고르-
5장 엇갈리는 여정

by 소심한 삘릴리

5. 엇갈리는 여정

은서의 손을 꼭 잡은 태주의 발길이 생트 포와 교회로 향한다. 올해로 프랑스 생활 3년째. 태주는 이렇게 아름다운 프랑스 마을을 만날 때마다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대체 프랑스인들은 어떤 유전자를 가졌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까. 거리를 더럽히거나 집을 가꾸지 않으면 종신형에 처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태주는 11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지어졌다는 생트 포와 교회보다,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감탄하며 바라보는 아름다운 교회의 탕팡 보다, 버려진 휴지조각 하나 보이지 않는 정갈한 교회 광장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신기해. 광장이 어떻게 저렇게 깨끗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이집트 카이로로 출장을 갔었는데, 거긴 완전히 반대였어. 거리가 꼭 쓰레기장같이 더럽더라고.”

“맞아. 나도 예전에 이집트 갔을 때, 그렇게 느꼈어. 피라미드랑 스핑크스를 보고 난 감동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더라.”

“국민 수준의 차이일까? 아니면 프랑스 사람들이 특별히 깔끔한 걸까?”

“에이, 파리도 깨끗하지는 않아. 도시청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그나마 카이로처럼 쓰레기 천지는 아닌 거지. 거리에 개똥도 많잖아?”

“그런가? 근데 여긴 참 깨끗하다. 아름다운 마을이라서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지.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마을들은 정말 깨끗하더라. 근데, 프랑스 사람들은, 글쎄, 별로 청결한 것 같지 않던데?”

프랑스 사람 이야기를 하던 은서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전남편에 대한 기억을 건드린 것 같다. 그녀의 불행을 알고 있는 태주의 가슴이 시려 온다. 새삼, 파리에서 재회하던 순간 그를 향해 던진 그녀의 첫마디가 생각난다.

“그때 왜 그랬어?”

은서의 눈에 얼핏 물기가 서렸던 것 같다. 아직 그때의 일을, 뒤섞이고 헝클어진 마음을 제대로 다듬지 못했다. 실수와 오해로 범벅이 된 채,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린 그들의 과거를 이제 와 변명처럼 늘어놓는 것이 무슨 소용 있을까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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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고르 지방으로 여행 가고 싶은데, 같이 갈래?’

이메일 편지함 이름에서 ‘박은서’를 확인한 순간 태주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와 재회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었다. 동시에 은서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것이 떠올랐다.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메일은 황당할 정도로 간단했다. 은서가 새침한 얼굴로 “나랑 여행 갈래?”하고 묻는 것 같았다. 메일을 확인하기 무섭게 인터넷부터 뒤적거렸다. 그녀가 여행하고 싶다는 페리고르 지방이 어디 있는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다.

아내와 여행을 다닐 때도 자료 조사를 하고 여행 스케줄을 짜는 건 그의 몫이었다. 프랑스로 오기 전, 그는 아내와 함께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로 배낭여행을 다녔다. 아내는 패키지여행보다 스케줄이 더 빡빡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그를 잘 따라다녔다. 태주는 휴양지에서 여유를 즐기는 것보다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여행을 선호했다. 아내가 유적지나 찾아다니는 촌스러운 여행자라고 하도 놀리는 통에 큰마음먹고 발리로 휴가를 갔다가 심심해서 죽을 뻔했다. 체질상 쉬는 여행은 맞지 않았다. 대신 남들이 힘들어하는 여행의 모든 것을 즐겼다.

빡빡한 일정을 짜서 매일 강행군을 하고 차비와 밥값 그리고 호텔비를 아껴가며 알뜰살뜰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들며 부지런히 이곳저곳 둘러보는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샌드위치로 대충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태주는 남들이 2박 3일간 여행할 코스를 1박 2일에 다 둘러볼 정도로 치열하게 돌아다녔다. 특히 그는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지 정보를 수집할 때 희열을 느꼈고, 호텔과 비행기, 기차표를 예약하는 순간의 행복을 즐겼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인터넷으로 페리고르 지방을 검색해보니, 들려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학교 다닐 때 배운 라스코 동굴도 페리고르 지방에 있었다. 그는 꼼꼼하게 여행경로를 짜고, 호텔 예약을 하고, 볼거리에 대해 자료조사까지 했다. 여행 스케줄을 짜고 보니 또 번갯불 코스가 됐다. 하루에 여러 도시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그의 여행 스타일을 놀리며 아내가 붙여준 이름이다.

은서가 가보고 싶다던 콩크와 로카마두르 그리고 사를라 외에도 페리고르 지방에는 볼 곳이 많았다. 여행 일정을 짜고 호텔을 예약하며 태주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호텔도 평소보다 신경 써가며 골랐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은 첫사랑과의 여행이 아니던가. 어쩌면 무의식 속에서 이런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바랐는지 모른다. 더구나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프랑스 땅에서 그들만의 여행. 이보다 더 바랄 것 없는 완벽한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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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 포와 광장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던 태주가 생각난 듯 가방을 뒤적인다. 각이 지도록 정갈하게 접은 흰 종이를 꺼내 은서에게 내민다. 그녀를 바라보는 표정이 꼭 백 점 맞은 시험지를 자랑하는 아이 같다.

“내가 짠 여행 일정이야.”

“여행 일정? 그런 것도 있어?”

이건 또 뭐지? 하는 표정으로 종이를 들여다보던 그녀의 미간에 가늘게 주름이 잡힌다.

“뭐야? 오늘 피지악이랑 로카마두르도 간다고?”

“응. 지금 떠나면 한 시간 후에는 피지악에 도착할 거야.”

“피지악?”

“로제타스톤을 해독한 장 프랑수와 생포리옹의 고향이잖아.”

“그렇구나. 어, 르 빠제 호텔을 예약했네? 로카마두르에 있는 호텔이야?”

“아니. 깔레라는 작은 마을에 있어. 로카마두르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만 가면 돼.”

“……”

점점 굳어지는 은서의 얼굴을 보며 태주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칭찬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뺨을 맞은 기분이다. 맞물려 돌아가던 톱니바퀴 하나가 비틀어지며 균형이 깨진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왜? 일정이 마음에 안 들어?”

“저기, 나는, 콩크 언덕에서 석양을 보고 싶어.”

“난 또 뭐라고. 서두르면 석양은 로카마두르 언덕에서 볼 수 있을 거야.”

태주는 잠시 긴장했던 표정을 풀며 은서를 바라본다. 석양을 보려고 이 멀리까지 오자고 하다니, 역시 박은서다. 여전히 그녀는 스무 살 그 시절처럼 대책 없이 낭만적이다. 태주는 그리움처럼 떠오른 그녀의 기억이 심해로 침몰한 난파선에서 찾아낸 보물처럼 소중해진다.

“여행 일정이 좀 빡빡하지? 미안. 내가 좀 그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하루에 세 군데를……”

은서의 긴 한숨에 태주의 마음이 다시 무거워진다. 마시멜로처럼 달콤할 그녀와의 여행을 꿈꾸며 짠 계획들이 한순간에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이다.

“미안한데 그냥 오늘은 내 계획대로 하자. 응?”

“콩크 언덕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어떻게 하고?”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으나 은서의 목소리에 감추지 못한 짜증이 섞여 있다. 울컥 뜨거운 기운이 태주를 감싼다. 얼마나 기대했던 여행이었는데, 출발부터 삐걱대는 것이 그를 불안하게 한다.

“석양은, 로카마두르, 언덕에서도……볼 수, 있다고……했, 잖, 아.”

태주의 말이 달팽이처럼 느려진다. 그가 억지로 화를 억누르고 있다는 증거다. 아내였다면 이런 그를 알아채고 얼른 따라나섰을 것이다. 아니 아내였다면 처음부터 아무 불평 없이 그를 따라주었을 거다. 이런, 또 아내 생각을 하다니. 우울해진 태주는 아내의 기억을 쫓아내며 생트 포와 광장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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