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플레이리스트 #08
언뜻 남녀 갈등이나 계층 간 갈등처럼 보이는 문제도 알고 보면 핵심은 ‘세대 간 갈등’인 경우가 많다. 윗세대의 지나친(?) 성공이 아랫세대의 활동 범위를 뜻하지 않게 좁혀버리는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다.
선배나 후배 모두 인간이니까 실수를 한다. 하지만 그 파급효과는 다르다. 똑같이 실수해도 후배들이 선배에게 줄 수 있는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은 반면, 선배가 후배에게 줄 수 있는 타격은 치명적이다.
두 세대의 게임은 체급이 다른 격투시합이다. 이것이 바로 젊은 세대들이 공정성에 예민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들은 바로 이런 '세대 간의 속사정'을 은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성세대들이 설계해 놓은 판 안에서 젊은 세대들이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묘사한 ‘헝거 게임’ ‘다이버전트’ ‘메이즈 러너’ 등은 그 자체로 현실에 대한 훌륭한 은유였다. 뭘 한 번 해보려 해도 가진 게 없어 쉽지가 않은 청년세대의 딜레마는 한국 뿐 아니라 바다 건너에서도 똑같이 존재했다.
2008년 ‘아이언맨’의 기록적인 성공으로 시작해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첫 번째 마침표를 찍은 마블 시리즈에도 청년 캐릭터가 있다. 어느 날 거미에 물려 특수한 능력을 얻게 된 10대 소년 피터 파커 - 스파이더맨이다.
만화 연재 시절부터 인기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이 마블 시리즈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2016년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부터였다. 거의 10년간 스파이더맨이 등장하지 못한 데에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었다.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소니픽처스가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계약관계 때문에 청년이 등장하지 못했다니 이마저도 은유적이지만, 어쨌든 판권 문제를 해결한 어른들은 청년 노동자 캐릭터 스파이더맨을 드디어 전면에 내세운다. 2017년 개봉한 ‘스파이더맨: 홈커밍’ 얘기다.
이 영화는 어른들이 구축한 풍요의 세계가 주는 짜릿함을 맛본 10대 소년의 흥분을 추적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운영하는 회사의 인턴십으로 참가하게 된 피터 파커는 어벤저스의 일원이 될 날만을 기다리며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한다. 마치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 데뷔할 날만을 기다리는 연습생 같다.
토니 스타크가 제공한 스파이더맨 슈트에 내장된 각종 최첨단 기능은 당장이라도 그를 슈퍼 히어로로 만들어 줄 것만 같았지만, 역시 벽은 높았다. 혈혈단신의 10대 소년이 기성세대의 시선을 얻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토니 스타크는 그의 연락을 ‘읽씹’하며 의견을 묵살한다. 그의 태도는 우리가 흔히 꼰대라고 부르는 인간의 특성을 고스란히 닮아있다.
그래도 스파이더맨은 굴하지 않는다. 슈퍼 히어로의 유전자(DNA)를 타고난 피터 파커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활동으로 악당 ‘벌처’의 계획에 근접해 나간다. 물론 혼자의 힘으로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는 없었고, 결국 그는 사고를 낸다.
혈기왕성한 한 청년이 넘치는 의욕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문제는 이 실패를 기성세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토니 스타크의 경우는 단호했다. 피터의 슈트를 압수하고 그를 인턴십에서 해고한다. 이로써 피터는 윗세대에게 부여받은 기회를 다시금 윗세대로부터 몰수당하는 처지가 된다.
“스파이더맨 슈트 없이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피터 파커)
“그렇다면 더더욱 슈트를 가져선 안 돼.” (토니 스타크)
결국 자체 제작한, 누추하기 짝이 없는 옷을 입고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는 피터 파커. 기성세대가 제공한 자본과 기술 없이 뭔가를 해내기란 참으로 힘들지만, 그래도 그 누추함을 이겨내고 인간승리를 이뤄낸다는 데에 이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가 결코 '옷발'로 성공한 게 아님을 밝혀두는 알리바이의 성격도 있다.
볼거리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이 영화가 긴 잔상을 남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을 이뤄낸 한 청년을 대하는 영화 속 어른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피터 파커와 부자관계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토니 스타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낸 피터 파커에게 “자네를 잘못 판단했었다”며 ‘사과’를 한다. 이 사과 장면이야말로 영화의 압권이다.
한국에서도 “어른들이 미안해”라는 구호가 유행하긴 했었지만,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가 보여준 사과라는 건 사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공허하게 내뱉는 ‘이미지 관리용 멘트’인 경우가 많았다. 누구라도 의미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말에는 별 힘이 없다.
토니 스타크의 사과 한 마디는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더욱 빛났다. 자신의 판단 착오를 말끔하게 인정하는 토니의 모습은 피터에게 ‘실패했지만 틀리지 않았다’는 용기를 줬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최첨단 슈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선물이 아니었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언뜻 남녀 갈등이나 계층 간 갈등처럼 보이는 문제도 다시 보면 세대 간 갈등인 경우가 많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고용조건 등의 딱딱한 이슈들을 풀어나가는 열쇠도 세대 간 소통에서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꼰대들은 사라질 수 없고, 사실 사라질 필요도 없다. 그저 대화할 수 있으면 된다. 실마리는 ‘사과 한 마디’처럼 작은 부분에서부터 풀려나갈지도 모른다.
*서부경남신문에 기고한 글을 현시점에 맞게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