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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우씨 Jul 14. 2020

헬조선의 알리바이 - 벌새

영화플레이리스트 #07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94년 무렵의 일이다. 나도 영화 속 은희처럼 이런저런 학원을 다녔다. 건물이 꽤 커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곳이었다. 가야 할 층을 누른 뒤 무심코 다른 층 버튼에 시선이 갔다. 그런데 9층 버튼만 좀 달랐다. 다른 층 버튼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가 숫자 아래에 있었는데 9층만 위에 있었다. 뭐지?


의문은 금방 풀렸다. 9층 버튼이 없었는지 6층 버튼의 여분을 거꾸로 갖다 붙인 거였다. 당연히 점자도 뒤집혀 있었다. 실제로 9층으로 가는 시각장애인이 탔다면 어떻게 됐을까? 왠지 그 시절의 시각장애인에겐 6의 대칭을 9로 읽는 지혜가 기본 장착돼 있었을 것도 같다. 그러면서도 눈이 안 보이는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을 것도 같다.




그런 시대였다. 시각장애인을 위한답시고 점자판을 마련했지만 진짜로 그들이 탈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조금이라도 추가적인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호의는 덜컥 끝나버렸다. 영국 출신이지만 한국에서 더 오래 산 외신기자 마이클 브린은 한국인에 대해 “위계의식에 정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 약자에게 잔혹할 때가 있다”고 평했다.


이 맥락에서의 약자는 소수자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벌새’에는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날라리’를 색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특이한 건 날라리를 찾아내는 방식인데, 도편추방법처럼 서로가 서로를 지목한다. 사실상 또래끼리 왕따(이 단어는 1994년엔 없었다)를 골라내는 작업이다. 날라리는 그 자체로 소수자이며, 같은 날라리끼리 집단(일진)을 구성하지 못하면 핍박을 당할 운명에 놓인다. 


날라리는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배척당했다. 당시 날라리에 대한 대접이 어땠는지를 알려주는 사례가 하나 더 있다. 1990년대 중반, 과천에 있는 서울랜드(?)는 입구에 ‘수입 오렌지족의 입장을 사양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내걸었다. 할로윈 이벤트나 뭐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정문에 붙어있던 정식 공지사항이다.



당시 서울랜드가 정의한 오렌지족의 특징은 이렇다. 

①말꼬랑지 머리를 한 남자 

②외귀걸이 한 남자(쌍귀걸이는 됐던 모양이다. 잃어버린 거면 어떡하지?) 

③일부러 우리말을 서툴게 하는 남자

④뒷주머니에 미국여권을 찔러 넣고 다니는 사람 

⑤영어와 우리말을 섞어 쓰는 사람 

⑥20대면서 외제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


최근 ‘슈가맨’으로 지목받으며 무려 30년 만에 화려하게 컴백한 양준일의 경우가 바로 시대와 불화한 날라리의 전형적인 케이스다. 분명히 기억하건대 그 시절의 누구도 양준일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노래 ‘가나다라마바사’에는 “밥맛 떨어져 치 뭐 이렇게 머리가 기냐 / 여잔지 남잔지 모르겠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나도 내가 이상한 거 안다고 자조라도 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외계인이 되는 그런 시절이었다.


양준일이 넘어가버린 ‘선’을 아슬아슬하게 지킨 사람은 바로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인 박진영이다. 1994년 ‘날 떠나지 마’를 내놓은 그는 데뷔 당시부터 ‘딴따라’를 자처했다. 날라리만큼이나 멸칭이었던 딴따라를 스스로 표방했음에도 박진영은 큰 인기를 누렸다. (2집 앨범은 아예 제목이 ‘딴따라’다.)


이걸 단순히 양준일과 박진영의 실력 차이로만 해석하면 곤란하다. 일단 박진영은 한국어가 유창했고 무엇보다 ‘연세대학교’ 출신이었다는 점이 주효했다. 양준일이나 박진영이나 특이한 건 마찬가지지만 박진영은 ‘명문대를 다니는 우리 편’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었다. 



‘벌새’의 영지 선생님도 비슷한 경우다. 그녀는 수업 중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데 가사를 들어보면 노동가요다. 이런 ‘불온한’ 행동을 해도 “그 선생님 좀 이상하잖아”라는 정도로 귀엽게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 - 그녀가 서울대학교를 다니기 때문이다. 돈이든 학벌이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동아줄이 반드시 하나는 있어야 하는, 그런 시대였다.


그리고 10월 21일 아침. 

문제의 성수대교가 붕괴한다.


여러 개의 한강다리 중에 하필 성수대교가 무너진 데에는 설계학적인 이유가 있다. 성수대교는 북한군 남하를 막기 위해 교각 밑에 폭탄을 설치한 뒤 터트리면 깔끔하게 주저앉는 게르버 트러스(Gerber truss)교로 지어졌다. 섬뜩하게도 원래부터 ‘잘 무너지도록’ 만들어진 다리였던 셈이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총격을 당하기 열흘 전에 준공된 이 다리는 그의 사망 15주기를 5일 앞두고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정작 목숨을 잃은 건 북한군이 아니라 어린 여학생들을 비롯한 민간인들이었고, 은희의 마음에도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런 시대였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그 이후로 이어질 기나긴 참사의 불길한 시작점이었다. 바로 이듬해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또 몇 년 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덮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생겨났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서로를 구분 짓는 선분들을 끊임없이 얻어갔다. 


학교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권여선의 단편 ‘너머’는 현시점의 우리가 얼마나 많은 구분선들을 갖게 됐는지를 새삼 상기시킨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성실하게 ‘갑질’할 구실을 찾아내는지 잔혹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다. 



한 학교 안에서도 기간제 교사와 정교사, 무기계약직과 비정규직은 업무 태도는 물론 성격과 생활방식, 인생관까지 전부 다르다. 1994년 하나의 교실에서 날라리를 색출하며 피아를 구분 짓던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사회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고 다양해진 필터를 가지고 편 가르기를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말이 왜 나왔는지는 알 것 같다. ‘벌새’라는 한 편의 영화를 보면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영화 안에는 지금 우리가 ‘헬’의 요소로 지목하는 것들의 원형이 빼곡하게 들어차있다.


그 안에서 다양한 질곡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80년생 김은희’는 아직 너무 작고 그래서 가엾다. 하지만 그녀를 불쌍해만 할 일일까? 사실은 그녀의 표정 안에, 두 눈동자 안에 우리가 있다. 벌새는 1초에 50번 넘게 날갯짓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혼자서 분주한 그 몸부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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