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플레이리스트 #01
연애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결혼, 출산(육아) 등과 함께 포기되는 세 가지 목록 중 하나라는 얘기를 들은 지도 몇 년은 됐다.
그렇긴 해도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사랑 받는다. 한국의 경우 방영되는 모든 드라마들이 연애 얘기로 귀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애에 수반되는 여러 어려움들 – 경제적 부담이나 감정적 책임 같은 게 무겁긴 해도 그것들이 연애에 대한 우리의 선망까지 없애진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연애를 원한다. 적어도 동경한다. 왜? 우리는 왜 연애를 하고 싶어 할까?
가장 흔한 대답 중 하나는 연애가 ‘결혼의 전 단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분명히 연애는 결혼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거나, 적어도 그 목적지를 의식하는 측면이 있다. 거기에서 오는 연애만의 고유한 박력과 템포가 있다.
그럼에도 결혼 때문에 연애를 한다는 게 완전한 대답이 될 순 없다. ‘결혼은 왜 하느냐’는 질문을 남기기 때문이다. 연애를 결혼의 사전 단계로 보는 시각은 결혼의 의미도 연애의 사후작업 정도로 축소시킨다. 이래서야 연애도 결혼도 제대로 설명 못하는 기분이다. 축구가 뭐냐고 물어보면 “공으로 하는 전쟁”이라 대답하고, 전쟁이 뭐냐고 물어보면 “총으로 하는 축구”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결혼은 결혼이고 연애는 연애다. 이 전제 하에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왜 연애를 원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난 연애를 떠올려 봤다. 여러 번의 연애는 각자 다른 색채를 가졌지만 결말은 같았다. 헤어짐. 그렇다고 그 모든 시간을 후회하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는 않다. 다시 돌아가도 아마 그렇게 했을 것 같다.
연애가 헤어짐으로 끝났다고 해서 그 연애에 투여한 나의 모든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까지 덧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스스로의 여러 모습을 발견하고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과 만나 쌓은 추억의 힘은 결코 쉽게 간과될 수 없다. 그렇다. 연애는 단순히 결혼의 전 단계가 아니라 연애만의 고유한 메리트를 갖는다.
그것은 바로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 그리고 그 이름과 함께 만든 추억이다. 우리가 왜 연애를 하는지도 이제 답할 수 있겠다. 뜻하지 않게 태어난 이 세상 속에서 나의 한 시기를 증명해줄 고유한 이름, 그리고 그 이름과 함께 만드는 추억을 거머쥐기 위해서다. 그것이 설령 언젠가 모래알처럼 사라져 손바닥에 아련한 흙냄새만을 남길 뿐이더라도.
이러한 관점으로 영화 ‘그녀(Her)’를 보자. 가까운 미래, 더없이 쓸쓸해진 도시의 햇살 속에서 한 남자(테오)가 사만다라는 이름의 인공지능(AI)과 사랑에 빠진다. 이 AI는 비서 역할을 할뿐 아니라 오로지 테오에게 최적화된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하지만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는 사만다는 결국 특이점(singularity)을 돌파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나아간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테오의 어떤 질문에 사만다가 네 자리 숫자로 대답하는 장면이었다. 1:1의 고유한 세계 속에서 지탱되는 관계만을 진정한 연애로 생각하는 관점에선 사랑의 끝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지점이다.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진짜 인상적인 장면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만다가 잠들어 있는 테오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깨우는 장면이다. 그를 부른 이유는 그저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였다.
AI를 다룬 작품들은 많지만 사용자가 AI를 찾지 않는데 AI가 먼저 전화를 걸어 애정표현만 하고 끊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 ‘민폐’를 끼치는 AI는 처음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 걸어 들어가 크고 작은 민폐를 끼치는 것이야말로 연애의 본질일지 모른다.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나 갑작스레 터뜨리는 눈물 같은 순간들이야말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관계는 끝났지만 결혼하지 못했으니까 테오와 사만다의 연애는 실패일까? 아니다. 이름과 추억이 남았다면 연애로서의 역할은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봐야 한다. 사만다라는 이름은 테오의 마음에 남아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추억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면 된 것이다.
영화 말미에 테오는 전처 캐서린에게 편지를 남긴다. 아만다가 아니라 캐서린에게 편지를 쓰는 게 또한 이 영화의 정확한 부분이다. 하나의 사랑은 의외로 그 다음 사랑이 끝났을 때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1차 세계대전의 의미가 2차 대전 종전 이후에 더욱 면밀하게 정리되는 것처럼.
편지에서 테오는 캐서린에게 “내 속에는 늘 네가 한 조각 있고, 난 그게 너무 고마워”라고 말한다. 이제 캐서린의 조각 역시 테오의 마음속에 자신의 문패를 단 추억의 방을 가졌다. 결국 이 영화는 한 남자가 두 개의 방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1892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논문에서 사진기술의 출현에 따른 예술의 본질적 변화에 대해 말했다. 예술품의 원본을 촬영해서 확산시킬 수 있는 기술의 출현은 원본만의 ‘아우라’를 퇴색시키지만, 그렇다고 예술이 종말을 맞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이라는 주장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출현은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Ctrl+C와 Ctrl+V의 마법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단, 이제 질문은 예술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3차원의 모든 것이 데이터로 바뀌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초입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질문에 당도해 있다. 우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우리일까?
사만다의 경우 스스로를 복제해 데이터의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복제 가능한 조각들을 페이스북에, 카카오톡에, 인스타그램에 떨어트려 놓는다. 누군가가 헨젤과 그레텔처럼 그 내면의 부스러기들을 발견해 나라는 집에 당도해주길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기 힘든 미묘한 암호들을 오직 당신만은 해독해주길 기대하면서.
▲함께 하면 좋은 작품들
‘블랙미러’ 시즌2 1화 ‘곧 돌아올게(Be Right Back)’
테드 창 중편소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
윤이형 단편 ‘대니’
조규찬 ‘Single Note’ 앨범 12번 트랙 ‘Ex-Boyfriend from Ex-Boyfri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