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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14. 2015

글로 짓는 건축

첫 글, 도서관에서 쓰다

이 매거진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한 번쯤 쓸 수 있을 지 몰라도, 꾸준히 써낼 수 있을까.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력 하나를 추가하게 될까봐 망설였다. 하지만 '작가'라는 말에 끌려 지원서를 냈다. 이틀만에 답이 왔다. '작가'로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작가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작가'라는 단어를 내게 붙여도 되나 싶었다. 난 그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다. 되도록 잘 쓰고 싶고, 내 글이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이로움을 주기를 바랄뿐이다.


나만 보고 쓸 수 있는 원고지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이곳에서 난 우물안 개구리처럼 쓰고 싶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세계를 글로 옮기고 싶을 뿐이다.  내 글이 한 편씩 쌓여가는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내가 바라는 소통의 대상은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에게 말 걸기 위해 이 공간을 이용하는 건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 먹으니 짐 하나를 덜은 듯 손가락이 춤을 춘다. 10편, 100편도 써낼 수 있을 것 같


건축을 전공하면서 건물사진을 많이 찍었다. 사람없는 사진은 지루하다. 하물며 이제는 사진 찍는게 귀찮다. 멋진 사진을 보는 것만 즐긴다. 찍지 않으니 감각도 무뎌진 것 같다. 사진 찍는 것도 습관이다. 매거진에 사진을 얼마나 충실히 올릴지 장담할 수 없다.


동네 도서관에 와있다. 내부순환도로가 공중을 가로지르는 사거리 북쪽 코너에 세워진, 주상복합 건물 2층에 있는 구립도서관이다. 큰 도로에 접한 유리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 2대가 정면에 보이고,  왼쪽에 경비아저씨가 자리에 앉아있다. 유리문 바로 왼쪽에 2층으로 직접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외벽면 굴곡의 곡률에 맞춘 계단을 따라 오르면 도서관 출입구가 나온다.


도서관 평면은 길다랗다. 출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바닥면적이 넓어진다. 잡지와 신간도서가 출입구쪽에 배치되어 있고, 소설과 인문사회학 책이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나무로 만든 2, 4인용 테이블이 여러개 놓여있어서 책을 보거나 혹은 앉아서 (지금 나 처럼) 간단한 문서작업하기에 편리한다. (쓰기 시작할 때는 분명 '간단'했지만, 쓰다보니 '대역사'가 되고 말았다. 흑역사가 되기 전에 어서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반달모양의 공간은 벽 자체가 책장이다. 다행히 책이 여유있게 꽂혀있다. 보고 있어도 눈이 피곤하지 않다. 책으로 빈틈없이 들어찬 서가를 보면 숨이 막힐 것 같은데 말이다(그래서 이사하면서 집 책장도 많이 비웠다).이곳은 심지어 맨 위 두줄은 아예 비어있다.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공간 사이를 열어두는 지혜는 서가에 책을 꽂을 때도 해당된다. 채울수록 공간은 좁아들고 몸의 움직임은 옹색해진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 때와 마당에서 너는 건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듯, 꽉 채워진 서가에서 책을 한 권 겨우 빼내는 것과 널널한 책장에서 슬그머니 한 권 집어드는 건 이미 다른 독서를 지향한다.


오늘은 450쪽 분량의 책 한권을 읽고 요약할 예정이다.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뒷 창문이 열려 있다. 사거리에서 정지신호를 받고 대기중이던 차량이 바뀐 신호에 맞춰 일제히 가속페달을 밟으며 뿜어대는 소음이 귀에 거슬리긴 하지만 그것 빼고는 집중하기 좋은 자리다. 책이 있고, 집중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는 곳. 이제 어서 책을 펴고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도서관에서 할 일이란 책 읽고 글쓰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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