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으로 공간 만들기
숭례문학당 북라운지 오픈했다. 기획과 설계, 공사를 맡아서 진행했다. 학당 강사이자 건축가로 일했다. 내 집을 내 손으로 직접 설계하고 만들어서 더 뜻깊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공간이 지향하는 프로그램적 목표와 디자인이 잘 맞아떨어졌다. '북라운지'라는 이름을 붙인건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북까페보다는 프리미엄 공간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갑과 을의 관계다. 건축주는 돈을 쓰고, 건축가는 그 돈으로 설계비를 충당하고 건물을 짓는다. 서비스를 구매하고 판매하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집을 지을 때,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갑을 관계를 넘는다. 전략적 동반자에 가깝다. 둘은 협력했을 때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계약보다 신뢰가 앞서고, 문서보다 대화가 주요한 소통의 도구가 되는 관계다.
우리는 타인에 지나치게 무관심하거나, 때론 지나치게 개입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사람을 과도하게 의식하며 자기 생각과 행동을 제한하지만, 앞 집에 누가 사는지 모를 만큼 타인을 경계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타인과 어떻게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지, 그 고민과 행동요령이 희박하다. 우리는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정도와 범위를 잘 모른다. 그래서 무관심하거나 과도하게 의식한다. 대화의 수준을 정하지 못할 때가 많아서 개그콘서트 얘기만 하거나, 어색하게 침묵만 지킬 때가 많다. '건전한 개입'을 하지 못한다.
숭례문학당은 독서공동체를 표방하며 다양한 독서활동을 전개해온 조직이다. 이곳 대표님과 강사들은 독서의 달인이요, 대화의 고수들이다. 대화의 매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으며, 장소와 사람에 따라 어떻게 대화를 전개할 지 다양한 경험을 반복하고 있는 분들이다. 그들에게 심각한 사회적 현안은 대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좋은 소재가 되며, 정치,경제,문화,종교적 담론은 수다꺼리로 딱 알맞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생각에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는지, 내 생각은 어느 정도 표현할 수 있는지, 그들은 일정한 수준의 합의에 도달해 있다. 내가 아는 어느 조직원보다 토론이 잘 되는 그룹이다. 독서토론리더가 괜히 되는 건 아니다.
얘기가 많이 돌아왔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점은 이렇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건축주와 건축가의 갈등과 대립이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다. 거액의 일을 맡길 만큼 좋은관계였던 두 사람이 그 정도로 틀어지는 이유는 현상적인 문제 때문이기보다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발생할 때가 많다. 두 사람 모두 선의에 의해 움직였지만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곪다가 하나 둘 씩 터지면서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자재나 공법, 공사 기간이 아닌 소통에 있다.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뜻하지 않은 문제에 봉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린 원활히 소통했다. 다른 생각을 가진 각자의 입장에 건전히 개입하며 자신의 의견을 녹여냈고, 융합된 생각은 더 좋은 아이디어로 발전했다. 생각을 주고 받으며 하나씩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환각제만큼이나 강렬하다. 합이 맞는 느낌.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일을 꾸려나가는 기쁨이 일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 에너지원이었다. 사람은 혼자서는 못산다. 함께해야 즐겁다. 함께했는데 싸우기만 하고 즐겁지 않다면, 그건 토론능력 즉 소통능력의 부재때문이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해야 나아질 수 있는 질환인지도 모른다.
내가 설계사무실을 나오고 숭례문학당을 다시 찾은 큰 이유중 하나가 '토론'에 있다. 건축조직은 피라미드형이다. 건축가가 정점에서 모든 정보와 인원, 재원을 통제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그럼에도 건축은 수평적인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서로 호흡을 주고 받으며 밀고 당기지 않으면 좋은 화음이 나올 수 없는것과 같다. 문제는 건축조직이 풀뿌리까지 피라미드라는 점이다. 난 그게 못마땅했다. 회사를 다닐 수록 답답했다.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면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너무 컸다. 이는 단순히 건축의 문제가 아닌 세상을 보는 시야 자체가 다른 차원이었다. 관점이 너무 차이나면 생산적인 대화가 어렵다. 서로 어떻게 다른지, 평소에 얘기를 나눈적이 없으니 회의자리에서 불쑥 자기 생각을 꺼내면 입장 차이만 드러날 뿐 생각들이 중지로 모이지 않는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회적 담론을 끌어넣지 못하는 문제가 업무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결국 토론경험의 부재였다.
북라운지에 앞서 인테리어를 두 곳 했다. 아파트와 한의원이었다. 아파트 주인은 지나치게 개입을 했고, 한의원 원장님은 과도하게 믿고 맡겼다. 결은 다르지만 두 곳 모두 힘들었다. 아니, 외로웠다. 계약서를 들고 압박하는 건축주와, 믿는다며 아예 맡겨버리는 건축주 모두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숭례문학당 당주님은 적당히 개입하고 적당히 맡겨줬다. 나 또한 적당히 주장하고 적당히 물러났다. '적당히' 서로의 입장에 개입할 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프로젝트였다. '적당히'하려면 독서와 토론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도.
숭례문학당 북라운지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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