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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May 24. 2016

공간기획,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쏘다

라이프스타일을 읽으면 새로운 공간이 보인다

내가 서점을 가는 이유는 책보다 공간이 좋아서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지시하는 사회적 기호에 내가 포함된다는 느낌이 좋다. 지적인 내가 된 것 같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 같으며, 10%할인 받지 않아도 될만큼 여유있는 사람이라는 어필을 하는 것 같아 좋다. 즉, "나 서점가는 사람이야"라는 신호를 발산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도 책 구매는 인터넷서점에서 하면서 말이다. 

 나는 중학교 다닐 때쯤 일요일이나 방학때 가끔 읍내에 있는 도서관에 갔다. 버스타고 20분을 나가야하는 곳이어서 특별한 일 아니면 나갈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갔다. 눈둑길을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서 들어간 도서관에서, 난 새로운 경험했다. 아, 그 세련의 맛이란. 그 중에서 난 도서관 서가가 신기했다. 천장까지 닿은 책장에 빼곡히 책이 꽂혀 있고, 창문을 투과해 쏟아지는 빛이 서가 바닥을 쓰다듬는 광경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괜히 이 책 저책 기웃거리면서 책장 사이를 오갔다. 그때 책을 많이 봤으면 좋았으련만, 난 책보다 그 공간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취해있었다. 지적인 학생이 된 듯한 느낌. 예쁜 여자아이가 책장을 넘기는 나를 보고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설레임. 그건 도서관 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감각적 쾌락이었다. 

 서점은 '책' 파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음반이나 문구를 파는 곳도 아니다. 유형의 어떤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서점이 될 수 없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책 제목 <라이프스타일을 팔단>처럼, 서점은 분위기를 팔고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이다. 책은 도구이지, 그것 자체가 본질은 아니다. 책을 읽고 사람이 바뀌었다면, 바뀐 사람의 생활이 본질이다. 서점은 책을 매개로 다른 삶을 구성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하는 게 그 공간의 본질이다. 책을 잔뜩 쌓아놓고 유통마진을 붙이거나 염가로 판매해 돈을 버는 곳이 서점은 아니다. 그런 곳이 서점이라면 난 애초 서점도 도서관도 안 갔을 것이다. (난 지금도 마트에 가면 심장이 벌렁거린다)

난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내편일 것 같다. 그 곳에는 묻지마살인이나 빈부격차, 니편 내편도 없을 것 같다. 안전하다는 느낌. 안락한 느낌. 그러면서 지적인 쾌감을 자극하는 곳. 내가 살아갈 길을 탐색해 볼 정보가 가득한 곳. 내가 정의하는 서점은 그런 곳이다. 그리고 내가 느낌이 더욱 강화된 서점이 출현하길 바랄뿐이다. 그런 곳이라면,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고, 그곳에서 업무상 미팅을 하고, 그곳에서 차를 마실 것 같다. 서점에서 일하고 놀고 밥먹는 상상. 서점이 바뀐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손에 잡히는 상품이 아닌, 분위기가 디자인 된 곳. 

 숭례문학당 북라운지는 새로운 유형의 책-공간을 지향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북라운지는 '서점'이라고 말할 수도, '도서관'이나 '북까페'라고 말할 수도 없는 곳이다. 나는 북라운지를 이렇게 생각한다. 예쁜 여자아이를 만나고 싶어 도서관에 가는 소년의 마음을 담은 곳이다. 이별한 연인이 그리울 때 찾는 곳이다.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애기 엄마를 초대하는 곳이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쳇 다람쥐 직장인이 자기만의 잉여를 산출하는 곳이다. 실업청년으로 퉁쳐지는 젊은이가 그 나름의 미래를 설계하는 곳이다. 감정을 담은 곳이고, 감정이 발산하는 곳이다. 분류체계가 엄밀하게 작동하며 효율과 경제성에 기반에 도서가 분류되어 있는 곳이 아닌, 음반과 책의 영역이 섹터별로 나뉜 곳이 아닌,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모든 요소들이 정교하게 재배치된 곳이다. 우리는 '분위기'를 제안한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한다. 이제 서점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곳이다. 들어가면 큐레이팅된 신간도서를 마음껏 볼 수 있다. 무슨 책을 보고 싶은지 전문 사서의 정성적인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기계적으로 이 책 다음은 저 책이 아닌 독자의 마음상태를 들여다보고 책을 추천해주는 사서가 있는 것이다. 책을 보다 지루하면 옆 방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음악을 듣거나 작은 콘서트를 관람할 수도 있다. 서점은 이제 문화예술의 테마파크다.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다. 차를 마실 수 있고,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며 때론 일을 하거나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혼재된 공간을 원한다. 공급자가 관리적인 측면에서 만든 공간 지도가 아닌, 수요자가 자기만의 흥미로운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천 개의 문이 이어진 공간이다. 누군가는 책을 보러 오고, 누군가는 영화를 보러 오고, 음악 들으려오며, 누군가는 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싶어서 온다. 문화예술을 즐기는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대로 공간을 이용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너는 저런 식으로 이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건축공사를 하면 인건비 비중이 높다. 자재비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확대해서 보면, 토지가가 비싸지 집 시공비는 상대적으로 낮다. 즉, 공산품은 저렴해지고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의 값어치, 땅의 경제성은 높아진다. 책을 (본래 의미와는 다르게) 공업적 상품으로 바라보는 게 이전까지 서점이었다. 상품을 저렴하게 떼어와서 마진 붙여서 파는 구조. 책 파는 것과 아이스크림파는 것이 다르지 않았다. 책이 다른 의미와 가치를 품는 고부가가치 재화라는 것을 강변 한들, 구조가 그대로면 바뀌는 건 없다. 서점의 위기는 '서점'의 위기이지, 책 읽는 라이프스타일의 위기가 아니다. 서점이 망한다 한들, 라스꼴리니코프의 분열증에 공감하고 위로받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은 여전하다. 어디서 읽을 지, 무엇을 읽을 지 결국 어떻게 읽을지가 문제이지 문맹률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공간기획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일이다.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자본론>, <라이프스타일을 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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