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닿지 않는 심연에 던져진 그의 문장들
"무인등대 사이를 돌아서, 어선들은 포구로 돌아온다. 일출이 가까운 새벽바다의 어둠은 붉다. 그 붉은 어둠의 먼 곳으로부터 어선은 모습을 드러낸다. 피곤한 노동의 땟국으로 칠갑이 된 어선들은 찢어진 어기를 펄럭거리며 포구로 돌아오는데, 피곤은 곧 삶인 것이어서, 그래서 그 피곤을 별도로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봉두난발의 사내들은 말없이 뱃전에 걸터앉아 있고, 방파제 위에서 그 사내들의 여자들은 빈약한 어획으로 돌아오는 사내들의 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찢어진 깃발 펄럭이며 돌아오는 새벽 어선의 남루는 아침바다의 첫 햇살에 비치어 찬란하다."
오랜만에 김훈의 문장을 읽는다. 해독과 오독사이에서 길 잃기 쉽상인 그의 글이다. 난 그의 글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쉬어서 우스울 때도 있다. 아이처럼 문장을 꾸리는 그의 필력이 섬뜩하다. 우리 문장에 없는 글을 쓰는 것 같은데, 그건 김훈이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짐작한다. 주어와 술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짜맞추려는 그의 고단한 문장쓰기가 느껴진다. 그건 스타일리쉬한 도전이라기보다는, 언어로 구현할 수 없는 사물과 사태를 향한 안타까움의 표현인 듯하다. 그는 언어로 닿을 수 없는 세계를, 오늘도 쓰고 있다.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