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나누는 대화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를 읽었다. 별 시덥지 않은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글이었다. 별것 아닌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는 언어가 닿지 않는 세계를 서술하려고 애썼다. 그의 글은 언어학자의 글같았다. 그는 생각과 감정을 나누려고 쓰기 보다는, 자신의 한계, 자기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글을 쓰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글은 풍성했고 깊었다.
글은 자신과 나누는 대화다. 나는 글을 쓸 때 읽을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편안하게 읽히고, 내가 표현하려던 생각과 느낌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글은 나를 떠난다. 타자의 세계에서 쓰여진다. 내게서 글이 멀어지자 내 느낌과 생각도 멀어진다. 점차 내 글이 아닌 글을 쓴다.
김훈은 자기 글을 쓰고 있었다. 그는 자기 마당에서 글을 썼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김훈이 담겨 있다. 글은 소통의 도구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소통해야할 대상은 자신이다. 글이 자신에게서 멀어질 때, 그건 글도 뭣도 아닌 활자가 되어버린다. 글을 쓸때면 늘 자신을 먼저 파고들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글을 쓸 때면 글을 버리고 내 마음의 상태에 빠져들어야 한다. 나는 김훈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란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지 새삼 느꼈다. 작가는 남을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