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쓰기, 자존감을 회복하는 길

쓰다보면 나를 발견하고, 내게 힘을 줄 수 있어요.

by 동그라미

글 쓴다는 사실을 강하게 의식한다. 문장과 어휘, 그것 자체를 검열한다. 난 다만 한 문장밖에 쓸 수 없다. 쓰고나서 돌아보길 반복한다. 진퇴를 거듭하다보니 이야기를 전개하지 못한다. 그럼으로 나는 글쓰기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써야할 ‘글’을 쓸 뿐이다. 내 글에는 이야기가 없다. 글자들만 길게 줄을 서 있을 뿐이다.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난 고통스럽다. 하고 싶은 말은 없는데,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자리를 앉기 때문이다. 난 하고 싶은 말을 떠올리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 글에는 생명이 없다. 메시지가 없기에 감동도 없다. 좋은 문장을 쓰려는 욕구, 정확한 단어를 선택하려는 노력은 다만 헛될 뿐이다.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쓰지 못해서 황망할 뿐이다.


이야기를 써야 한다. 머리가 크고 글을 배운 나는, 여전히 글쓰기 학습에 기초해서 작문한다. 나는 배운대로 쓰지, 배우지 않고도 익힌 것처럼 쓰지 못한다. 숨쉬듯 쓰지 못하고 걷듯 쓰지도 못한다. 이런저러한 문장을 써야 한다고 배웠고, 그런 문장에는 이러저러한 단어를 배열해야 한다고 익혔다. 나는 다만 배우고 익힌바대로 쓸 뿐이다. 배우고 익힌 내용은 검열의 채다. 겅멸의 채를 통과한 문장은 지루하고 답답한 흐름을 보인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고, 또다시 자음과 모음이 쌍을 이루며 달릴 뿐이다. 내 글에 이야기가 없다.


글쓰기를 오래 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글을 쓰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쓴다는 행위를 인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숨쉬면서 호흡을 의식하지 않고, 자전거 타면서 페달밟는 순간들을 망각하는 것과 같다. 가수가 성대의 울림을 의식하지 않고, 화가가 손목과 손가락의 움직임을 자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글쓰기 연습이 부족해서인지, 난 글자가 화면으로 떠오르는 장면 모두를 목격한다. 한 글자 한 글자 지켜보는 일은 힘들다.


지금 난 쓰고 싶은 글이 있다. 써야 하는 글도 있다. 하지만 한 문장도 쓰지 못하고 있다. 문장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전의, 나는 무엇을 위해 쓰는가가 더 문제다. 나는 건축가인가. 나는 글쓰기 강사인가. 나는 기획자인가. 나는 인테리어디자이너인가. 나는 독서토론 강사인가. 나는 여러 직종을 넘나드는 탓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다. 백공이 밥 굶는다는 것처럼, 난 여기저기 전전하다 사그라지는 듯하다. 존재의 불안. 정체성의 혼란속에서 내가 기댈곳은 글인데, 글로 밥벌이를 하려면 존재의 안정, 정체성의 확립이 있어야 한다. 내 장르가 있어야 하고, 내가 글 쓰는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이 사실들을 잘 알면서도 무엇도 못하는 내가 무력할 뿐이다.


그래도


난 이 길을 갈 것이다. 돌아보지 않을 것이며, 이 길에서 죽을 것이다. 그럼으로, 난 이 길이 내가 걷는 마지막 길이 될 것이다. 돈도 벌고 가오도 생길 것. 그러니 최선을 다해 살라. 오늘이 끝인 것처럼 살라. 그러면 문이 열리고 길이 보일 것이다. 나약해지지 마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쓰기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