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쓰다보면 손가락이 알아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두려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자동차 페달과 변속기 손잡이가 그런 것처럼, 자꾸 글을 쓰다보면 그대에게도 컴퓨터 키보드나 볼펜이 손가락처럼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어떤 느낌인 줄은 알 것 같다. 장롱면허를 들고 제주도로 놀러간 날, 렌트카를 운전해서 나가는데 순간 눈앞에 캄캄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싶었다. 곧 사고가 날 것 같았다. 몸은 부르르 떨렸고, 시야마저 흐려지는 듯했다. 악셀레이터 페달을 밟지 않고, 비상등을 켠채로 겨우 공항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도로 주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자동차 운전에 내 몸이 적응했다. 손과 발은 별다른 의식없이 자연스럽게 제 할일을 했다. 난 몸의 어느 부분에도 의식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별 사고 없이 제주도를 한 바퀴 돌면서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 아내가 된 여자친구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글쓰기도 그런 것 아닐까. 쓰다보면 익숙해진다는 느낌이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글은 조금 더 어렵고 복잡하다. 생각과 느낌이 있어야 하고, 표현하려는 의지도 뒤따라야 한다. 더욱이 운전처럼 하루 이틀 한다고 몸에 달라붙지도 않는다. 꾸준히 해도 몇 년이 필요한 일이 글쓰기다. 그래서 포기하기 십상이고, 글쓰기가 어렵다고 푸념만 늘어놓기 일쑤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비슷할 것 같다. 오르기 쉬운 나무는 아니지만, 일단 오르고 나면 손과 발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운전하는 그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 어서 그 느낌에 내게 오길 바란다. 어서 글쓰기 신에 강림하여 나를 구원해주길 바랄 뿐이다.
이런 시잘데기 없는 글 말고, 뭔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글을 쓰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취재가 부족하고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 대목부터 글은 손가락이 아닌 발로 쓰는 듯하다. 난 지금 그 고비에 걸려 있다. 팩트가 부족하니 글이 나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를 어쩌나. 시간은 없고, 글은 따박따박 써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횡설수설 할 수도 없는 노릇아닌가.
여튼 많이 쓰면 손가락이 제 멋대로 움직이며 글을 써낸다는 유시민의 말을 믿기로 한다. 아니 철석같이 믿는다. 그는, 내가 하는 최고의 글쟁이 중 한 사람이니까.
이제 피할 길이 없다. 밀린 원고를 써야겠다. 글쓰기 신이 강림하길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