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로 여행을 간다'라고 하면, 주변의 반응 늘 비슷하다. “거기 위험하지 않아?” 혹은 “여행금지 국가 아니야?”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불교 국가는 대체로 안전해요.” 정치는 불안할지 몰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착하고 여행하는 데 무리는 없다. 게다가 미얀마는 여행금지국가도 아니다. 오히려 관광객이 적어 조용하고, 한적하게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다.
미얀마 여행의 국민코스는 약 8박 9일. 양곤→비간→만달레이→인레호수이다. 이 4군데 지역은 핵심도시로 어느 한 군데도 빼기가 힘들다. 만약 여행 일정이 5박 6일 정도라서 3군데만 갈 수 있다면 아쉽지만 만달레이를 빼는 것이 좋다. 양곤은 옛 수도로(2005년 네피도로 수도 이전을 함) in, out 이 되는 도시이다. 비간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도부두르 사원과 더불어 세계 3대 사원으로, 수백 개의 탑들이 있는 곳으로 미얀마 여행의 핵심이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인레 호수는 한국인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미얀마 여행에서 절대 놓쳐선 안 될 곳이다.
인레호수에 가기 위해서는 낭쉐(Nyaungshwe)라는 관문도시까지 가야 한다. 호수 북쪽에 자리한 이 작은 마을에 여행자를 위한 숙소와 식당, 호수 투어를 위한 보트 선착장이 모두 모여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만달레이에서 저녁 7시에 출발하는 14인승 야간 버스를 탔다. 구글 지도를 보니 다음날 새벽 6시쯤 도착할 듯했다. 2022년 8월,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서 외국인은 혼자였다. 차량은 동남아 시골 버스가 그렇듯 낡았고, 손님 반 물건 반, 심지어는 살아있는 닭(?)까지 다양했다.
밤 10시쯤 되었을까. 버스가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어떤 휴게소에서 멈춰 섰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버스 기사가 서툰 영어로 말을 한다. "노 고우, 슬리핑!" 버스의 시동이 꺼지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자 비로소 상황이 파악되었다. 당시에는 군사 정권이라서 야간 통행을 금지를 한 듯하다. 언제 다시 출발하느냐?라고 바디 랭귀지로 물어보니 기사가 손가락 여섯 개를 펴 보인다. 내일 아침 6시에 출발한다는 말이다. 당황한 나와는 달리, 어느새 다른 승객들은 익숙하다는 듯 이불을 꺼내 바닥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휴게소는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곳이었다. 화장실, 식당, 매점, 커피 파는 곳 등등이 있다. 몇몇 사람들은 허기를 달래듯 밥을 먹고, 어떤 사람은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 여자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게 몸을 감싸고 구석에 누웠고, 남자들은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자리를 잡았다. 나도 한쪽 구석에 짐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자리를 폈다. 와이파이는 없었지만, 다행히 전기는 들어왔다. 강제 디톡스 상태가 되어, 무료함을 달래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별들을 보았을 때가 언제였던가. 고요함 속에서 귀뚜라미와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둘의 소리는 합창단처럼 온 사방을 채웠다. 예상치 못했던 시골 휴게소에서의 하룻밤. 당혹감과 막막함이 순식간에 경이로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런 순간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예측 불가능한 선물이 아닐까.
휴게소에서 대충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지새웠다. 버스는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오전 10시쯤 도착했다. 목적지인 냥쉐 마을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동네 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고, 또다시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인레 호수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만달레이에서 출발한 지 17시간이나 지나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원래 인레 호수로 들어가려면 외국인은 입장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라 매표소가 아예 문을 닫아 있었다. 관광객이 거의 없는데 매표소를 운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공짜로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예약해 둔 숙소는 Inle Cottage Boutique Hotel. 친절한 주인, 정성스러운 조식, 아늑한 방. 하지만 손님은 나 혼자였다. 호텔에서 곧장 보트 투어를 예약했다. 직접 선착장에 가면 조금 더 저렴할 수 있지만, 교통비까지 따지면 큰 차이는 없었다. 아침 일찍 시작된 투어는 몇몇 사원을 들른 후 10시쯤 선착장에 도착했다. 뱃사공은 능숙하진 않아도 간단한 영어로 "2년 만에 외국인 관광객은 처음 본다" 라면서 반긴다. 코로나와 정치적 혼란이 겹치며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긴 탓이었다.
배는 잔잔한 호수를 가르며 수상 가옥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 속에서>나 보았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나무집들, 호수 위에 조성된 물밭,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 오랜만에 외국인을 봤는지 인사하는 꼬마들, 배 위에서 장을 보는 아주머니들, 부레옥잠을 제거하는 어부들, 모든 장면이 아름다웠다.
지구상에는 수상마을이 여러 곳이 있다. 캄보디아의 톤레삽 호수 마을, 베트남의 하롱 베이, 필리핀의 보홀, 인도네시아의 부기스족 수상촌 등이다. 왜 이들 지역에서는 수상 마을이 생겨나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로는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이다. 홍수가 자주 나는 지역에서는 땅 위보다 물 위가 더 안전하다. 우기와 건기의 수위 차가 크기 때문에, 물 위에 집을 띄우는 것이 더 실용적이다. 두 번째로는 어업 등 생계유지를 위해서이다. 많은 수상 마을 주민들이 어업, 양식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최근에는 관광 명소로 주목받으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도 한다.
캄보디아 씨엠립에는 ‘톤레삽 호수 투어’가 있다. 배를 타고 수상 가옥을 둘러보는 등 구성은 비슷하지만 느낌이 조금 다르다. 톤레삽에서는 관광객을 상대로 ‘기부’를 요구하거나, 아이들을 배에 태워 보여주기 위한 연출된 가난이 느껴졌다. 태국 방콕의 수상마을도 이제는 관광지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다. 인레에서는 달랐다. 뱃사공은 평상시에는 어부로 물고기를 잡고, 아이들은 뛰어놀았고, 가게는 그들끼리의 경제를 이어가고 있었다. ‘외국인의 시선’이 개입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삶이 그곳엔 있었다. 일부러 가난을 보여주지 않아도, 그 삶의 진정성이 전해졌다. 누군가는 ‘관광’을 떠올릴지 몰라도, 그 안에 있는 건 ‘연출’이 아닌 진짜 삶의 단면이었다.
인레 호수는 내가 동남아시아에서 본 수많은 풍경 중 가장 아름다웠다.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진짜 삶이 있는 곳이었다. 다음 날 자전거를 타고 주변 마을을 둘러보다가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보트 투어를 권하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2달러. 이미 전날 다녀왔기에 정중히 거절했지만, 숙소에 돌아오니 왠지 가슴 한 복판이 무거워졌다. 그들에게 2달러는 어쩌면 쌀 한 킬로그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은 친절을 베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미얀마는 아직 혼란스럽고, 여행자도 드물다. 매번 정치적으로 불안한 뉴스만이 우리가 접할 뿐이다. 여행을 해도 괜찮을까?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인레 호수에서 만난 사람들, 물 위를 가르던 보트의 흔들림, 하얀 교복을 입고 '헬로'라고 인사하는 아이들, 기념품을 하나 사자 고맙다고 인사하는 상인, 그 모든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호수는 정치는 멈추었지만, 그들의 삶을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와 수질 오염, 개발의 손길로 많은 수상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인레 호수도 언제까지 지금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누군가 미얀마를 여행해도 괜찮을까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인레 호수를 꼭 가보세요. 그곳엔 삶이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상 마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