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쇼몽』은 일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가 1950년에 만든 작품이다. 오래된 흑백영화이지만,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숲 속에서 한 남자가 살해당한다. 그의 아내는 산적에게 겁탈을 당한다. 이후 이 사건에 대해 네 명이 법정에서 증언을 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①산적: "내가 남자를 죽였다"라고 자백한다.
② 피해자의 아내 : 처음에는 “산적이 남편을 죽였다”라고 말하지만, 나중에는 “내가 죽였다”고도한다.
③죽은 남자 : 영혼은 직접 말할 수 없기에, 영매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한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④목격자인 나무꾼 : 사건을 봤다고 하지만, 기억이 흐릿하거나 일부러 감추려는 부분이 있다.
같은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모두 말이 다르다. 듣다 보면 네 사람 모두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관객은 혼란에 빠진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르다. 기억하는 것도 다르다.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은 하나일지라도, 사람이 말하는 진실은 여러 개가 될 수 있다. 진실은 하나일까, 아니면 보는 시선만큼 여러 개일까?
나는 태국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캄보디아에 머물고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캄보디아와 태국 사이의 국경 분쟁 소식을 접했다. 양국의 군이 국경 부근에서 충돌했으며, 서로가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했다. 흥미롭게도, 주변의 반응도 갈렸다. 태국 친구는 "캄보디아가 설치한 지뢰에 태국 군인이 발을 잃고 여러 명이 다쳤다"라고 말을 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캄보디아 동료는 "태국 병사가 캄보디아 영토에 들어와서 군인을 폭행을 했다."라고 말을 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태국 친구는 지뢰 피해라는 직접적이고 감정적인 사건을 근거로 하여 “캄보디아가 도발했다”라고 생각한다. 캄보디아 동료는 "자국 영토에 무단으로 침입한 병사와 군사폭행”을 더 중대한 잘못으로 본다. 각자가 본 사실이 완전히 틀리지 않을 수 있으나, 그들이 진실이라 믿는 해석은 '자기 입장'에 따라 구성되었다.
분쟁의 꼬리를 꼬리를 물고 올라가면 20세기 프랑스가 국경을 대충 그은 것에서 시작한다.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지도는 캄보디아 소유, 지형은 태국 영토와 이어지는 것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멀리 올라가면 15세기 크메르 제국까지 올라간다. 크메르 왕국은 한때 지금의 태국, 라오스, 베트남 남부까지 지배했던 동남아 최초의 제국이었다. 역사적으로는 태국 일부 지역도 크메르 문화권에 속했다. 그래서 일부 캄보디아인들은 "원래 태국은 우리 땅"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반면 태국은 15세기 아유타야 왕조로 독립하면서 크메르 지배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지금의 영토는 우리의 정당한 주권"이라는 입장이다. 더 앞서 일부 태국인들은 16세기~18세기 캄보디아가 태국의 속국 위치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태국이 크메르 왕을 직접 지명한 적도 있었다. 즉 이처럼 역사는 어디서 시작하느냐, 어디를 중심으로 두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
역사를 보는 시각은 사실주의, 국가중심주의, 해석주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나는 역사는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감정도 개입되지 않은 채,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 그래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정 민족이나 국가의 시선이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할수록 그것은 '허상'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가 '객관적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마저 누군가가 선택한 단어, 누군가가 정리한 시점, 누군가가 강조한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객관적인 언어로 세상을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언어는 항상 사용자의 시선을 반영한다.
이런 사례는 실제 역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1857년 인도 세포이 항쟁이다. 이 사건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해석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1. 영국의 식민 지배에 대항한 인도의 첫 반영 항쟁이다.
2. 영국에 맞서 인도 병사들이 일으킨 대규모 폭동이다.
3. 국 동인도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반발한 군 내부의 반란이다.
4. 인도 독립을 위한 최초의 무장투쟁이었다.
저 4가지 중에서 어떤 것이 사실이고 진실인가. 단어 하나만 바뀌어도, 사건의 의미는 180도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는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특정 민족이나 국가의 관점, 시각에 치우 지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역사를 배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쪽에만 기울지 않고, 균형 잡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일부 국가들은 공동 역사 교과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바로 프랑스와 독일이다. 두 나라는 역사적 앙숙이었지만 공동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서로의 관점을 보여주었다. 프랑스는 자신들의 식민지배에 대한 비판을, 독일은 나치에 대한 반성을 담았다. 학생들은 그 책을 보면서 토론하게 된다. 자신들의 자랑스러웠던 과거뿐만 아니라 부끄러웠던 역사적 사실들도 같이 배우게 된다.
그러나 한중일 3국처럼 역사 인식 차이가 큰 지역에서는 여전히 공동 교과서는 어려운 과제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역사 교육을 통해 자국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형성한다. 일부 유튜버들은 국뽕 콘텐츠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한다. 만약 우리나라 교과서에 자국 비판적이거나 타국 중심의 시각을 넣으면 국민감정과 충돌할 수 있다. '탈민족적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이야기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선거에 당선되지 못할 것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받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아주 민감하기도 하다. 영토를 둘러싼 싸움이 대표적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나라에서는 '독립영웅'이 다른 나라에서는 단순히 '살인자'로 그려지기도 한다.
철학자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민주주의와 국제법, 그리고 열린 대화를 통해 국가 간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강력한 국제기구를 만들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을 제정하다는 것이 취지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은 이상에 가깝다. 칸트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서 전후 UN이 출범했지만 구속력이 없는 몇몇 강대국에 의한 조직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칸트의 주장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이상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한 나라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류 전체의 시각에서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나라는 역사 교육을 통해 국민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키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하다. 진실을 따져 누가 이기고 지는지를 가리는 게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단지 과거의 사건을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은 하나일 수도 있고, 보는 사람만큼 여러 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세계 평화를 위한 한 발짝 진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