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국을 처음 여행한 것은 2013년 가을이었다. 가이드북 하나만 믿고 방콕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왕궁을 둘러보고, 그 옆의 왓 프라깨우 사원에도 들렀다. 가이드북에는 ‘에메랄드 불상’이라는 유명한 불상이 있다고 되어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인파들 사이를 삐집고 들어가서 불상을 보니 생각보다는 크기가 작았지만, 신비로운 듯 그 자태를 뿜내고 있었다.
태국과 라오스는 가까운 이웃이다. 비슷한 언어, 비슷한 음식 문화, 공통된 불교 전통을 나누고 있다. 조상도 같으며 '형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얽힌 관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런 나라는 지구상에 더 있다. 예를 들어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같은 슬라브 민족이고 언어와 외형도 거의 같지만, 역사적으로는 깊은 갈등과 전쟁을 겪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도 유사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문화의 원조를 두고 늘 민감한 경쟁을 벌인다. 형제처럼 닮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민감해지는 역설이 존재한다.
태국과 라오스 역시 그런 역사를 겪었다. 라오스에는 14세기 '백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뜻의 란쌍왕국이 세워졌다. 이때는 라오스의 전성기로 태국 북부 지방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두 나라는 미얀마 침입을 막기 위해 손을 잡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태국이 라오스를 침략하고 지배했다. 라오스는 19세기 초부터는 아예 태국의 통치로 넘어가게 되었고, 프랑스 식민지를 거쳐 1953년에 독립하였다.
에메랄드 불상은 15세기 태국 북부의 란나왕국(현재의 치앙라이)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치앙마이를 거쳐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서 보관을 하였다. 라오스 왕국에서 이 불상은 왕권을 상징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왕이 즉위할 때에는 이 불상 앞에서 의식을 거행했다.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1779년, 태국(당시 시암)의 군대가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을 점령하고 나서 이 불상을 가져왔다. 현재는 태국의 보물 1호로 지정되어 방콕의 왓 프라깨우 사원에 고이 모셔져 있다. 지금은 태국의 국왕이 계절마다 불상의 옷을 갈아입히고 있다. 이 불상은 ‘현재를 지키려는 태국인들의 자부심’과 ‘과거를 그리워하는 라오스 인들의 아픔’을 동시에 담고 있다.
라오스에서 살던 시절, 현지 친구에게 에메랄드 불상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원래 우리 불상이야. 태국이 전쟁 때 가져간 거야.” 이후 태국에 살면서 같은 질문을 태국 친구에게 해봤다. “아니야, 원래 우리가 갖고 있던 걸 라오스가 잠시 가져간 거야. 우리가 되찾은 거지.”
하나의 사실을 두고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문화재를 둘러싼 분쟁은 단순한 영토 문제를 넘어서, 두 나라가 공유하는 역사적 기억과 감정의 충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많다. 이집트의 로제타석과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가 영국이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도 조선왕조 의궤가 프랑스에 보관되어 있었다. (2011년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한국의 지속적 요구 끝에 '5년 단위 재대여 형식'으로 반환).
예전에 유럽 아일랜드를 여행한 적이 있다. 수도 더블린 시내 한복판에는 ‘스파이어(Spire)’라는 높고 빛나는 원형 조형물이 있다. 에펠탑처럼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멀리서도 눈에 잘 띄어서 만남의 장소로 자주 이용하던 곳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예술품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꽤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 이 조형물은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2003년 자신들의 경제력이 영국을 앞지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즉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자존감과 독립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참고로 2023년 IMF 기준 1인당 GDP는 아일랜드 약 11만 3천 달러, 영국 약 5만 6천 달러이다.
이처럼 역사는 때로 강자의 시간이 끝나고 약자가 성장하는 순간을 기록한다. 우리 대한민국도 얼마 전, 1인당 소득 면에서 과거 식민지배를 당했던 일본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라오스도 미래에 태국을 경제적으로 뛰어넘을까? 그래서 잃어버린 에메랄드 불상을 되찾을 날이 올까? 라오스 사람들은 믿는다. 언젠가 그날이 올 거라고, 그래서 방콕에 있는 화려한 불상을 가지고 올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2023년 IMF 기준 1인당 GDP를 보면 라오스는 약 2,500달러, 태국은 약 7,500달러로 차이가 크다. 경제 규모, 산업 구조 등 여러 측면에서 아직은 격차가 크다. 게다가 인구가 적고 내수시장도 작고 더군다나 내륙국가이다. 또 라오스의 경제의 많은 부분이 태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반환 요구를 할 수가 없다. 민간이나 개인 차원에서 가끔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 언젠가 라오스가 성장해 잃어버린 불상을 되찾을 수도 있다. 혹은 시간이 지나도 태국이 그 불상을 지키고 있을 수도 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불상은 누구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