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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민낯, 하늘 위 계급 사회 — 비행기 일등석


비행기 좌석, 자본주의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공간

나는 지금까지 수백 번 비행기를 타면서 항상 '일등석은 어디에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대형 항공기를 타면 비즈니스석과 에코노미석은 흔히 눈에 띈다. 하지만 퍼스트클래스(일등석)는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등석은 비즈니스석, 에코노미석 구역과는 완전히 분리된 공간에 위치했다. 보통 비행기 앞이나 2층(복층 비행기의 경우)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는 승객 전용 출입구와 승무원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일반 승객이 쉽게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비즈니스석은 비교적 눈에 잘 띄지만, 퍼스트클래스는 ‘숨겨진 공간’처럼 존재한다.


사람들은 흔히 현대 시대를 계급이 사라진 사회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그 대상이 바꿔을 뿐이다. 과거에는 출생 신분이 그 사람을 나타냈다면, 오늘날에는 '자본'이 그 사람의 현재 계급을 보여준다. 나는 아직 비즈니스나 퍼스트클래스를 타본 적은 없다. 기껏 해봐야 좌석이 조금 더 넓은 프리미엄 에코노미(?)만 한번 타봤을 뿐이다.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계급의 벽'이 얼마나 견고한지 느낄 수 있었다.


항공사 좌석 등급은 퍼스트클래스(일등석), 비즈니스 클래스(이등석), 에코노미 클래스(삼등석)로 나뉜다. 가격 차이는 극명하다. 인천-런던 노선 왕복 항공권을 보면, 에코노미는 약 120~140만 원, 비즈니스는 400~600만 원, 퍼스트클래스는 900만~1,200만 원에 달한다. 퍼스트클래스는 에코노미보다 10배 비싸다. 비행기 한 번에 천만 원이나 지불하는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주로 고위 정치인, 재벌가, 대기업 임원, 유명 연예인, 사업가 등이다.




여행 대중화와 저가항공 혁명 — 모두가 날 수 있게 된 시대

과거의 여행은 지금처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여가가 아니었다. 대부분은 종교적 순례나 외교 사절, 무역과 같은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만 가능했다. 교통수단도 한정적이어서 보통 사람은 평생 고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행은 권력과 돈을 가진 소수 계층만의 특권이었다. 유럽에서는 귀족 청년들이 교양을 쌓기 위해 떠난 ‘그랜드 투어(Grand Tour)’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지를 돌며 예술과 문화를 배우던 이 여행은 오늘날의 배낭여행과 달리 철저히 상류층 전유물이었다.


여행은 산업혁명과 기술 발전으로 중산층, 서민층에도 보편화가 되었다. 특히 1990년대 동구권 붕괴하고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여행객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저가항공의 등장도 이에 한몫했다. 1991년 탄생한 영국 라이언에어는 저렴한 항공료로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게 만들어주었다. 이후 경제성장과 맞물러 수많은 저가항공사가 나타났다. 한국의 예를 들면 예전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만 있었지만 이제는 티웨이, 진에어, 에어부산, 제주항공 등 수많은 항공사들이 경쟁하고 있다. 그 결과 2000년대 초 약 50여 개였던 저가항공사는 2023년 114개 이상으로 증가했다.


항공산업은 그 특성상 운영비용이 매우 높다. 연료비,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좌석의 70% 이상이 채워져야 이득이 난다. 그래서 저가항공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좌석 간격을 줄이고 수화물 추가, 기내식, 음료 등 각종 부가서비스에 온갖 요금을 붙인다. 예전에는 선착순으로 제공받던 앞 좌석, 비상구 좌석 등은 웃돈을 더 줘야 한다. 예전에 유럽의 한 저가 항공사는 '서서 가는 좌석'을 도입하려고 했고, 심지어 화장실을 유료로 하려고 했지만 큰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물 한잔조차 쉽게 제공해주지 않는 현실은 '여행의 문턱'을 낮춘 대신 '서비스 질'을 대폭 낮추었다.




퍼스트클래스 vs 이코노미

퍼스트클래스는 말 그대로 ‘하늘 위의 궁전’이다. 공항에서부터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전용 체크인 카운터를 이용해 긴 줄을 피해 빠르게 수속한다. 수하물도 2~3개까지 무료로 부칠 수 있다. 공항 내 전용 라운지에서는 고급 음식과 술, 조용한 휴식 공간, 샤워 시설까지 누리며 비행 전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기내에서도 언제든 원하는 메뉴를 주문할 수 있고, 고급 스테이크, 신선한 해산물, 최고급 와인과 샴페인이 무제한 제공된다. 배고프면 먹고 싶을 때 마음껏 먹는 것이 가능하다. 지루하지 않게끔 여러 가지 기내 서비스도 있다.


반면 에코노미석 승객은 공항에서부터 긴 줄을 기다려야 한다. 라운지는 3~5만 원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수화물은 한 개만 허용된다. 기내는 더 최악이다. 수익성을 올리기 위해 비행기 좌석은 촘촘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만약 옆좌석에 덩치 큰 서양인이 앉으면 곤란하다. 한 시간만 앉아 있어도 허리가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창가에 있는 사람이 화장실에 가려면 다른 사람이 모두 일어나야 하는 진풍경이 일어난다. 그래서 나처럼 화장실을 자주 가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꼭 복도 쪽에 앉는다. 기내석은 어떤가. 앞 좌석에 있는 작은 트레이를 꺼내서 좁은 공간에서 먹어야 한다. 메뉴도 보통 2가지 중에서만 골라야 한다. 양이 모자라서 추가로 하나 더 달라고 하면 주지 않는다.


과거에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할 때 귀족들은 마차 안에서 차를 마시면서 편안하게 갔다. 반면 일반 농민들은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게 걸어서 갔다. 오늘날은 그 형태만 바꿨을 뿐이다. 이처럼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내 집처럼 편안하게 여행하지만, 에코노미 승객은 옆 사람과 부대끼며 참아야 한다. TV 화면 화질, 칫솔·수건·냅킨 등 제공 품목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퍼스트클래스는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선사하지만, 에코노미는 ‘참는 법’을 배워야 하는 곳이다.

360cea1d-02e9-4cea-aa8d-1d78d9b48e2d.png 이미지: 챗gpt



하늘 위의 호텔 — 왜 그토록 특별한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등석'이 어떤지 유튜브를 통해서 많이 봤을 것이다. 나 또한 마 찬가지이다. 일류 호텔 요리를 영상으로 대리만족(?)하듯이 말이다. 그중에서 눈길이 가장 끌었던 항공사는 에티하드 항공의 ‘더 레지던트(The Resident)’라는 서비스였다. 그야말로 일등석 중에서도 가히 프리미엄 일등석이라고 할 수 있었다. 3.6㎡ 공간은 여타 경쟁사보다 더 크다. 여기엔 소파와 32인치 대형 TV가 있으며 2m 길이의 침대가 있다. 옷장과 개인 수납공간까지 있으며 문을 닫으면 완전히 독립된 프라이빗 룸이 된다. 욕실까지 있어 온수 샤워도 가능하다. 이것만이 아니다. 전담 버틀러가 동행해 승객의 일정과 식사를 모두 맞춰준다. 미쉘린 출신 요리사가 비행 중 원하는 요리를 즉석에서 만들어준다. 탑승 전에는 공항에서 리무진으로 모시고, 전용 출입구를 거쳐 들어간다.


놀라운 것은 가격이다. 런던–아부다비 편도 가격이 2천만~3천만 원이고 왕복이면 4~5천이다. 그야말로 비행기 왕복이면 내 1년 연봉이 사라진다. 억. 소리가 나온다. 세상에는 참 돈 많은 사람들이 많구나. (솔직히 말하면 아주 부럽다.) 이 좌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특별하다. 그들에게 어쩌면 여행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을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경험인지도 모르겠다.

11.jpg 에티하드 항공의 ‘더 레지던트(The Resident)’ (나무위키에서 퍼옴)




공간 분리와 커튼 뒤의 계급 — 비행기가 보여주는 또 다른 사회

117399274.2.jpg 오노레 도미에 ‘삼등 열차’, 1863∼1865년.

19세기 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의 ‘삼등 열차’ 그림은 당시 서민들이 삼등석에 피곤한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에 부유층과 귀족들은 1등석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평민과 귀족은 같은 열차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공간에 있었고, 서로 섞이지 않았다. 이처럼 공간 분리는 역사적으로 차별과 계급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공간 분리가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는 초호화 콘도 단지와 빈민가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한다. 콘도는 경비원과 출입 통제 시스템으로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한다. 부유층은 자체적으로 학교, 병원, 쇼핑몰까지 단지 내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빈민가 주민과 마주칠 기회조차 적다. 부유층 단지로 들어가려면 신분 확인, 보안 검색 등을 거쳐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보다는 덜하지만 비슷한 것이 있다.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 단지들은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한다. 구경을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단지 내에는 병원, 학교, 수영장, 헬스장 같은 고급 편의 시설이 있다. ‘담장 안’과 ‘담장 밖’으로 나뉘는 사회적 경계가 분명하다.


비행기 안에서도 명확한 계급 분리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다가온다. 돈과 권력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공간과 서비스가 하늘과 땅 차이처럼 극명하게 갈린다. 비즈니스석은 그나마 커튼을 치면 보이지만 퍼스트클래스는 아예 다른 공간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비즈니스 클래스와 퍼스트클래스는 좌석 크기뿐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엄격히 분리되어 있다. 커튼이나 벽으로 구분된 공간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며, 퍼스트클래스일수록 분리가 더 철저해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보장한다. 이는 ‘계급의 경계’를 보여준다. 이런 공간 분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브라질 파벨라처럼 인종·계급 분리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들과도 맞닿아 있다. 공간의 분리는 단순히 좌석 크기와 서비스 차이를 넘어 사회적 신분과 권력을 시각적으로, 물리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사람들은 공간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고, 자신이 속한 계급을 확인한다.


1.jpg 담장 하나로 빈민층과 부유층을 보여주는 이 사진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출처 구글)





비행기 좌석 등급이 던지는 질문 — 우리는 어떤 사회를 살고 있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① 일등석 비행기 타보기
② 최고급 오성급 호텔에서 숙박하기
③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특히, 이 중에서도 비행기 경험은 조금 특별하다. 단순히 여행 수단을 넘어, 비행기 안에서는 계급의 차이가 한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좌석과 서비스, 제공되는 공간까지 돈과 권력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진다. 비행기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보여주는 작은 축소판과 같다.


공간 분리는 결국 자본주의가 만든 ‘계급의 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벽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벽을 허물고 모두가 좁은 좌석에 앉도록 해야 하나? 그래서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 글쎄. 이러한 것은 하향 평준화를 만들 뿐이다. 우리는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인간 본성과 위배되는지 지난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다만 욕망과 이상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계급 짓기를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비행기를 타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은 특별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다 비행기를 타는 시대가 되었다. 마치 1970년대 자동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했지만 지금은 최소한 벤츠 S 클래스 이상 되어야 하듯이. 그렇다면 이제는 '똑같은 공간 내에서 구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간의 크기'와 '벽'으로 다른 계층과 구별 짓는다. 이 현상은 아마 수백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돈이 많아서 일등석에서 여행하고 싶다”는 바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안락함이 어떤 느낌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다음 달에 나가는 카드값을 걱정하는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죽기 전까지 한번 타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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