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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와 미얀마,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희망

캄보디아 킬링필드, 내전으로 100년 전으로 돌아간 나라

내가 처음 캄보디아를 방문한 것은 2013년이었다. 지금은 시아누크빌, 껩 등 다른 도시를 다룬 캄보디아 자체 가이드북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베트남 여행 책자 안에 별도의 파트로 앙코르와트라는 유명 유적 부분만 짧게 소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캄보디아 하면 앤젤리나 졸리가 나왔던 툼레이더의 영화 배경지인 ‘앙코르와트’만 알 뿐이었지, 그 외의 것들은 거의 알지 못했다. 수도 이름조차도 헷갈리는 사람이 많아서, 씨엠립을 수도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고 프놈펜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캄보디아를 동남아시아에 있는 작은 나라 중에 하나구나.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곳을 여행하게 되었다. 여기를 여행하면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곳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앙코르와트가 아니라 킬링필드의 현장이었다. 프놈펜의 뚜얼 슬렝 대학살 박물관은 한때 고등학교였으나 당시 학살의 현장으로 쓰였으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되어 있다. 학살 현장을 보다 보면 책이나 뉴스에서 몇 번 접했던 그 끔찍한 역사가, 불과 55년 전인 1970년대 후반에 벌어졌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역사책에 나오는 15세기, 18세기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현재로부터 55년 전의 일이다. 그때의 생존자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말이다.


캄보디아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그 당시 겪은 깊고 아픈 상처가 그대로 묻어 있다. 거리에는 노인들이 별로 없다. 평균 수명이 짧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당시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크메르루주 정권은 지식인, 의사, 교사, 심지어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을 무참히 처형을 했다. 그 결과 전국에 남은 의사는 단 4명에 불과했고, 사회 전반의 지식과 문화가 거의 100년 전 수준으로 퇴보했다. 안경을 쓰고 있는 나도 만약 나도 그때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지금쯤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하겠지.


프놈펜을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에서도 그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픈 역사를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직접 목격할 수 있다. 만약 킬링필드 같은 참혹한 역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캄보디아는 분명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s-씨엠립 51.JPG 화려했던 캄보디아의 과거(2013년 촬영)



미얀마 내전, 실패한 국가

미얀마는 역사가 깊고, 잠재력이 큰 나라이다. 20세기 초, 식민지 시절이었지만 양곤은 아시아에서 가장 번화하고 화려한 도시 중 하나였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약 5,500만 명의 인구, 적당한 영토 크기는 경제 성장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미얀마는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중에서도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수십 년간 이어진 내전과 군부 독재는 미얀마의 미래를 가로막았다. 양곤의 거리에는 과거의 화려했던 흔적들이 남아 있지만, 지금은 낡고 혼잡한 모습이 더 눈에 띈다. 도시 곳곳에 오래된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지만, 인프라와 경제 발전은 동남아에서 가장 뒤처져 있다. 주민들은 여전히 친절하고 따뜻하지만, 길거리에는 노숙인들이 많이 보였고 상점에는 진열된 상품의 수가 적다.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영국의 식민지배가 남긴 악재의 악영향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2010년 이후 민주화 물결이 미얀마에도 일었다. 사람들은 흥분했고 국경은 개방되었고 여행자들이 몰려왔으며 해외 자본도 들어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몇 해가 지나지 않아 군사 쿠데타가 또다시 발생했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50년 전으로 돌아가버렸다. 외국인들의 발길도 다시 뜸해졌고 투자되었던 돈들도 다시 빠져나갔다. 내전과 정치적 불안은 미얀마 국민들의 일상뿐 아니라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았다. 충분히 동남아시아의 으뜸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지만,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에 그 잠재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기회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기도 한다. 부모들은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려고 하고, 어쩔 수 없이 고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힘든 생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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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양곤 14.JPG 양곤 시내에는 화려했던 식민지 시대의 흔적을 볼 수 있다(2022년 촬영)


정치의 중요성,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다

캄보디아는 과거 15세기 동남아시아의 패자였다. 크메르 제국은 현재의 태국, 라오스, 베트남 땅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영광은 현재 앙코르와트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미얀마 또한 바간왕조라는 위대한 역사적 시기가 있었고 영국 식민지 시대에도 피지배의 입장이었지만 그들의 문화는 풍부했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핵심 도시였으며 도시는 발전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미 과거의 영광이 되어 버렸다.


나는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직접 가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었다.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 안정과 혼란은 한 나라의 미래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두 나라는 덥고 비가 많이 와서 농사가 잘되어 사람들은 굶지는 않지만,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미얀마와 캄보디아를 보면서 한 나라의 지도자와 정책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러 번 저항했지만, 총칼 앞에서는 힘이 없었다. 그 결과 일상생활은 무너지고 경제는 붕괴했으며, 외교 관계도 거의 끊어졌다.


한국 역시 한때는 전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전근대적인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침략기를 겪으면서 1950년대에는 전쟁을 겪고 나라까지 분단되었다. 1960~70년대는 국제 원조에 의존하며, 제대로 된 교육과 의료도 부족한 나라였다. 하지만 국가발전을 생각하는 지도자와 계획적인 정책, 국민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희생은 많았고 정치적인 불안도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투쟁했고 결국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루어냈다. 현재 과속 성장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초저출산 등을 문제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차근차근 쌓아 올린 결과가 오늘날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이다.



캄보디아와 미얀마, 그리고 희망의 씨앗

캄보디아와 미얀마는 아직도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희망의 씨앗이 자리 잡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젊은 인구 비율이 높아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주역들이 많고,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경제적 잠재력도 충분하다. 또한, 오랜 역사와 독특한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한다면 관광산업과 문화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에서는 늦은 오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들의 밝고 생기 넘치는 표정을 보면서, 이 나라의 미래가 완전히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에서는 군사 정부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 접속을 차단해 소통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가 VPN을 이용해 인터넷 우회를 하며 전 세계에 자신들의 현실과 목소리를 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앞으로는 이 두 나라의 미래가 더 밝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이들의 밝은 모습에서 이들의 미래를 보다 (2013년 촬영)

- 2023.08.2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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