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누구나 이런 경험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비행기는 이른 아침 7~8시쯤 출발하는데, 지금 묵고 있는 숙소에 하루 더 머무르기엔 애매하게 돈이 아깝다. 가장 좋은 것은 공항 근처 호텔에 가는 것인데 거기는 가격이 비싸다. ○○에어포트 호텔 같은 이름이 붙은 곳은 시내의 웬만한 곳보다 1.5배는 더 비싸다. 교통편은 이미 끊겼고, 주변은 적막하다. 그럴 땐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오늘 밤은 그냥 공항에서 버텨보자.”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선택이지만, 여행 중엔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허용된다.
한 번도 공항 노숙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분명히 망설이게 될 것이다. ‘괜찮을까? 추위는 견딜 수 있을까? 치안은 좋을까? 누가 쫓아내면 어쩌지?’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스친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알게 된다. 이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걸. 아니, 오히려 기묘하게 마음에 남는 밤이 된다는 걸. 낯선 공간에서 보내는 하룻밤이, 때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진짜 여행의 장면’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예전에 공항에서 노숙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배낭을 베개 삼아 눕고, 외투를 이불처럼 덮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신발 끈과 배낭끈을 슬쩍 연결해 두었고, 귀중품은 바지 안쪽 주머니에 분산해 넣었다. 휴대폰은 팔 안에 안고 알람을 맞췄다. 숙면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묘하게 마음은 편안했다. 주변에는 나와 같이 노숙하는 여행자들이 몇 명 보여 알 수 없는 동질감(?)도 느껴졌다. 왠지 모를 연대감과 자유로움이 그곳엔 흐르고 있었다.
공항노숙은 여행지로 출발할 때 해야 제맛이다. 앞으로의 즐거운 여행을 상상하면 하루 정도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 초반에 여행 경비를 아껴서 다른 곳에 사용할 수도 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오기 전에 하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무리다.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불편했던 공항 노숙은 그리스 아테네였다. 긴 하루를 마치고 겨우 의자에 몸을 기댄 순간, 경비원이 다가왔다. 그는 정중했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눕지 마세요.” 나는 경비의 눈을 피해 다른 곳에서 누웠지만, 다른 경비가 어찌 알았는지 귀신같이 내쪽으로 다가와서 말을 한다. 눕지 마세요.라고. 그리스는 그때도 경제 사정이 안 좋아서 길거리에 노숙자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겠지. 그래도 여행자 입장에서는 최악이다. 그래서 의자에 앉은 채로 불편하게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이 되었고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눈을 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인천공항이다. 인천공항은 항상 세계에서 좋은 공항 TOP10에 들어가는 곳이다. 그만큼 시설이나 기타 면에서 좋다는 말이다. 당시 인도 여행을 하려 갈 때였는데 비행기가 아침 일찍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해서 고민하다가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공항 노숙. 하루정도 잠을 설쳐도 다음 날 비행기 안에서 자면 되니까. 늦은 밤 도착한 그곳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출국장 근처 널찍한 소파 자리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룻밤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어폰을 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예 작은 텐트처럼 담요를 두르고 누워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공항 노숙이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실용적인 목적이 강하다. 예산이 넉넉한 여행자라면 처음부터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좋은 호텔에 편안하게 머물면서 알람 서비스로 일어나고, 호텔에서 소개해준 믿을 수 있는 택시로 새벽이든 밤이든 공항까지 이동하면 되기 때문이다.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공짜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공항은 늘 깨어 있는 공간이다. 밤에도 조명이 꺼지지 않고, 청소하시는 분들도 지나가고, 안내 방송이 수시로 울린다. 시끄럽고 낯선 공간이지만, 오히려 그 낯섦이 여행자에게는 익숙한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공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호텔이다. 체크인이나 체크아웃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원하는 시간에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있다. 청소한다고 방을 비워달라는 귀찮은 부탁도 없다. 음료대도 있어 목도 적실 수 있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것이 무료라는 점이다. 외투 하나만 있어도 괜찮고, 배낭을 제대로 끌어안고만 있으면 마음도 편하다. 그리고 웬만한 곳보다 안전하다. 경비원들이 자주 순찰하고, 사람들이 많아 외롭지 않다. 화장실은 청결하고 무장을 한 경찰들도 많다. 24시간 운영하는 카페도 있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긴 밤을 견딜 수 있다. 창피할까 염려 안 해도 된다. 어차피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만약 장기간 여행이라면 하루 정도는 공항에서 노숙해도 나쁘지는 않다. 여기서는 공항 노숙에 좋은 몇 가지 팁을 알려주겠다.
<공항 노숙 팁>
1. 좋은 자리는 ‘코너석’ : 공항에서 노숙하기 가장 좋은 곳은 코너석이다. 소음도 덜하고 짐도 가까이 둘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
2. 보온은 생존이다 : 얇은 외투, 담요 겸용 스카프, 배낭 위 한 겹만 덮어도 밤공기를 막는 데 충분하다. 노숙자들이 왜 신문지를 덮고 자는지 알 수 있다.
3. 짐은 몸에 연결하라 : 배낭끈을 발목이나 허리에 살짝 묶어두자. 여권이나 신용카드 등 귀중품은 속주머니나 허리 파우치에 나눠 보관.
4. 안대와 귀마개는 필수템 : 밝은 조명과 끝없는 안내방송이 잠을 못 들게 한다. 안대와 귀마개를 꼭 챙기자. 평화로운 밤이 만들어진다.
5. 따뜻한 물과 초코바 하나 : 500ml 생수, 초콜릿 바 하나는 필수. 밤에 출출할 때 하나 먹으면 혈당 보충
6. 충전할 수 있는 곳은 미리 체크 :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한 콘센트 자리는 늘 경쟁이 치열하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새벽 1~2시)이나 아예 반대편 게이트로 이동하면 빈 포트가 의외로 많다.
혹시 지금 당신이 현재 공항 와이파이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혹은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구석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다면, 주변을 잠시 살펴보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항의 의자나 혹은 구석에 몸을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공항에서 하룻밤 지내면 바닥에 눕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뻐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여행이 주는 작은 통과의례다. 다른 사람들은 호텔 침대에서 푹 자고 있겠지만, 오늘 밤 공항 바닥 위에 있는 당신이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여행자다. 나중에 친구들과 커피숍에서 수다 떨면서, 혹은 밤에 소주 한잔 하면서, 이런 무용담을 자랑할 수 있다. "너네들 공항에서 노숙해 봤어? 나는 해봤어. 생각보다 괜찮았어!"
Travel 이란 어원도 본래 '고통스러운 노동'이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과거에는 여행이 즐거운 여가활동이 아니라, 힘들고 위험한 이동이었으니까. 모든 것이 다 편안하고 안락하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휴양'이나 '요양'에 가깝다. 아직은 두 발로 여기저기 다닐 수 있으니까. 세월이 흐르면 무릎이 아파서 여행을 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또 여행지에서는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 밤에 잠을 푹 자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여행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거니까. 다음날 카페인이 피로한 당신의 몸을 재충전해 줄 것이다. 낯선 공항에서 배낭을 베개 삼아 잠들었다면, 그때는 당신은 이미 진정한 여행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