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레이디보이(Ladyboy)가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이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태국. 그러나 라오스,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레이디보이는 타고난 성은 남성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이 되는 것을 말한다. 레이디보이는 좁은 의미에서는 '트랜스젠더'를 뜻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몸은 그대로 남성이지만 옷차림만 여성처럼 입는 크로스드레서(cross-dressor)도 포함된다. 가슴수술은 대부분 하지만, 비용 혹은 취향등의 이유로 남성 성기를 제거하는 경우도 있고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다만 게이나 양성애자 등은 이 범주에서 제외된다. (반대로 드물지만 여자가 남자로 바꾸는 경우도 있는데 '톰' 혹은 '톰보이'라고 불린다)
레이디보이가 가장 많은 곳은 뭐니 뭐니 해도 태국이다. 가끔 징병제인 태국에서 면제 판결을 받은 남성들을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실제 방콕에서는 여성보다 더 아름다운 남성(??)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씨암, 수쿰빗 등 시내에서는 더 자주 목격된다. 얼핏 보기에는 여성과 거의 흡사하므로 눈치를 못 챌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까이 본다면 약간 뭔가 인공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태국이야 트랜스젠더가 워낙 많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국내 활동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모두 태국에서 수술을 한다고 한다. 일반 성형수술은 한국이 세계최강이지만 성전환 수술만큼은 태국이 세계 최강이다. 가성비도 좋고 시술경험도 많다. 검색을 해보니 태성전환 수술의 평균 비용은 USD 7,000 ~ 15,000 수준이 일반적이지만, 복잡한 수술이나 고급 병원을 선택하면 USD 20,000 이상이라고 한다. 한국돈으로 약 2800만 원 정도니 싼 금액은 아니다.
그럼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어떨까? 우선 라오스. 태국과 동일 문화권이다 보니 당연히 레이디보이가 생각보다 좀 있다. 하지만 개방적인 태국과 달리 이곳은 보수적인 곳이라 여기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편이다. 간혹 미용실이나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내가 라오스에 살면서도 적지 않게 보았다. 또한 게이와 레이디보이의 중간쯤 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기 레이디보이들은 외모이다. 태국은 중진국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호르몬 약을 매일 먹고 수술도 하고 화장도 하고 나름 여자로 보인다. 여기에 현대 의학의 기술을 빌려 성형수술까지 한다면 여자보다 더 예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라오스는 아직도 국민소득 2500불의 가난한 나라다. 수술은커녕 호르몬 약을 먹기에도 비용이 부담스러운 경우도 많다. 약도 먹다가 말았는지 반쯤 여자얼굴로 된 모습도 많다. 약을 먹을 비용이 없어 그냥 옷만 거치는 경우도 있다. 호르몬약은 고환제거 수술을 했든 안 했든 용량의 차이는 있지만 평생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약을 먹다가 안 먹으면 다이어트약의 요요처럼 다시 외모가 돌아가는 부작용이 생긴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감옥에 들어온 트랜스젠더가 처음에는 누가 봐도 여자였는데, 호르몬 약을 꾸준히 복용하지 못하자 다시 외모가 남성처럼 변했다는(?) 말이다. 즉 같은 문화권이자 형제 국가이지만 태국은 트렌스젠더들이 예쁜 데 비해, 라오스는 그렇지 못하다.
필리핀의 경우 미국 식민지배와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로 바끌라(Bakla)라는 레이디보이들이 많고 비교적 눈에도 잘 띈다. 이들도 역시 방송, 패션, 뷰티 등에서 일을 한다. 태국과 마찬가지로 이미 사회에서 제3의 성으로 인정받은 지 오래되었다. 베트남의 경우 여행 때에는 잘 보지 못했다. 하지만 현지에 살고 있는 친구의 말을 빌려보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그 비율이 높다고 한다. 캄보디아와 미얀마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탓에 그렇게 잘 눈에 띄지는 않는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는 '와리 아라'는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 있다. 하지만 이슬람 종교의 영향 때문인지 여기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동남아에는 레이디보이들이 많을까? 즉 사회의 개방성에 따라서 눈에 잘 띄는가, 안 띄는가의 차이는 있지만 동남아 국가 대부분 레이디보이들이 다른 대륙에 비해서 많은 편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가?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고 나온다.
첫 번째는 우선 동남아 대부분은 상좌불교(소승 불교) 국가라는 점이다. 불교는 업과 인연의 관점에서 사람을 판단하며, 성 정체성 문제를 도덕적으로 강하게 금기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가설은 가톨릭을 믿는 필리핀이나 이슬람인 인도네시아를 말해주지 못한다.
두 번째 가설은 관광 산업과 레이디보이 산업이 결합해, 레이디보이는 생계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연 쇼, 마사지, 네일, 미용, 관광 관련 서비스 등 말이다. 즉, 사회적 필요와 경제적 기회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본다. 관광수입이 높은 동남아 국가들에게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가설이다. 하지만 여행산업이 발달한 다른 나라들, 예를 들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세 번째로는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여장을 시켜서 성정체성이 바뀌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가설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전쟁은 전 세계 어디서나 있었지만, 레이디보이 비율이 높은 나라는 동남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동남아 거주 8년 차인 내가 생각한 가설이 있다. 아마도 이 가설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기후와 토지, 농업 등의 영향 때문이다. 이는 동남아가 모계 중심적 성향이 강한 것과도 연결된다. (동남아 사회가 모계사회냐 아니냐를 두고 말이 많지만, 다른 나라들보다 ‘모계 중심적 성향이 강하다’는 표현은 충분히 맞다.)
원시시대부터 대부분의 사회에서 남성은 사냥을, 여성은 채집과 육아를 담당했다. 남성이 주로 힘이 많이 필요한 사냥을 맡는 동안, 여성은 섬세한 채집과 농사, 가정 관리로 가족 생존에 기여했다. 이런 역할 분담은 단순한 성 역할이 아니라, 환경과 생존 전략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구조였다. 동남아 대부분은 연중 더운 열대 기후에, 풍부한 강수량과 비옥한 토지를 갖추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족 단위의 농업이 발달했고, 남녀가 수행하는 노동의 구분도 비교적 느슨했다. 다시 말해, 사회가 성 역할을 엄격히 규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토지가 비옥하며 농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남성이 반드시 큰 힘을 쓰는 노동을 하지 않아도 식량 확보가 가능했다. 대신, 세심한 손길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밭농사나 집안 관리에서 여성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예를 들어, 라오스나 태국의 시골 지역에서는 남녀가 논밭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남성이 집 밖에서 힘든 노동을 한다고 해서 여성의 역할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역할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돕는다. 이렇게 여성의 노동과 판단이 사회적으로 큰 가치를 가지게 되면, 가정과 지역 사회에서 여성의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커진다. 실제로 동남아 지역의 많은 가정에서는 집안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할머니나 어머니가 큰 역할을 맡기도 한다. 그리고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도 많다.(남자는 씨만 뿌리고 나몰라라?? 한다) 반면, 몽골이나 날씨가 척박한 지역에서는 남성의 강한 힘이 필요한 일이 많다. 예를 들어 몽골의 초원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축을 돌보고 땅을 일구는 데 남성의 역할이 더 중요했다. 자연환경과 생존 방식이 달라지면서 성 역할 규범도 그에 맞춰 더 엄격하게 형성되는 셈이다.
결국, 원시시대부터 이어진 환경적 조건과 노동 분담이 사회 구조와 성 역할의 형성에 깊게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동남아 일부 사회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크고, 남성이 비교적 자유롭게 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역사적·환경적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이 바로 레이디보이가 동남아에서 많고 사회적으로 비교적 수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성이 생존이나 가족 부양에 큰 물리적 부담을 받지 않고, 성 역할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며, 모계 중심적인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다양한 성 표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나 문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오랜 시간 기후와 환경, 농업 구조, 사회 분위기 등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낸 사회적 조건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한국에서는 과거 트랜스젠더가 유흥업이나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이태원, 부산, 청주 등지에는 트랜스젠더 바나 쇼클럽이 있었고, 지금도 일부는 남아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법적 성별 변경이나 의료 접근이 제한적이어서, 여전히 ‘음지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동남아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라오스 등지에서는 레이디보이가 사회 속에서 눈에 띄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관광 산업과 맞물려 일자리와 역할이 다양하게 생겼다. 쇼 공연, 네일숍, 미용실, 마사지샵, 여행업, 노래 공연, 바텐더, 패션 관련 직종 등 활동 영역이 넓다. 인터넷과 SNS 덕분에 외국인과 결혼하거나 해외에서 일하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실제로 태국 파타야나 푸껫 같은 관광지에서는 서양 남성과 동거하거나 결혼한 레이디보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가족이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도시로 나와 친구나 연인과 함께 독립적으로 사는 경우도 많다. 동남아에서는 이런 문제를 ‘도덕’보다는 ‘적응과 생계’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처럼 집안 체면이나 서열을 중요시하는 분위기와는 조금 다르다.
동남아에 거주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태국이나 필리핀에서 만난 여자가 레이디보이인지 어떻게 알지?” 사실 얼굴만 보고는 구분하기 어렵다. 성형과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면 피부, 얼굴선, 목소리까지 여성과 거의 구분이 안 된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곳은 ‘어깨’다. 남성의 어깨뼈 구조는 넓어서 호르몬으로 바꾸기 어렵다. 아직 어깨를 좁게 하는 수술은 없다. 다만 어깨가 좁은 남성도 있으니 이런 경우엔 손과 발을 보면 된다. 특히 발은 중요한 포인트다. 발 또한 어깨와 마찬가지로 성형수술이 아직 없다. 체형이나 몸무게는 바뀌어도 발 크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동남아는 날씨가 더워서 샌들을 신는 경우가 많아서 보기도 어렵지 않다.
사회는 점점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고, 개인의 선택권도 넓어지고 있다. 결혼이나 출산은 물론 성에 대한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20~30년 전만 해도 레이디보이들은 대부분 ‘숨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태국에서는 학교에서 여학생 교복을 입는 트랜스젠더 학생도 허용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군 입대도 과거에는 남성으로 분류되어 억지로 입대하거나 놀림을 받았지만, 이제는 정신과 진단서를 통해 면제되거나 별도 분류가 가능하다.
레이디보이들의 삶은 조금씩 음지에서 양지로 이동하고 있다. 무대에 서고, 외국인과 결혼하고, 대학에 다니며,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등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지방에서는 여전히 편견이 남아 있고, 가족 문제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숨는 삶’에서 ‘보이는 삶’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는 방송이나 언론에서 트랜스젠더를 희화화하거나 특이한 존재로 다뤘지만, 지금은 하나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유튜브, SNS,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아졌고, 법적 권리 문제도 논의되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정체성’이라기보다 ‘삶의 방식’에 더 가깝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어떤 사람은 환경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삶을 찾아간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어떻게 부르거나 받아들이느냐가 아니라,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제는 각자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그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다. 우리는 이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