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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원으로 동남아에서 한 달 생활하기

동남아에서 100만 원으로 한 달을 살 수 있다고?

유튜브 영상을 보면 "동남아에서 100만 원으로 한 달 살기"라는 콘텐츠가 종종 보인다. 영상 속 사람들은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시간에 쫓기지 않는 듯하다.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오후에는 따뜻한 햇살 아래 산책을 한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 그럼 나도 저렇게 살아볼까. 하지만 지갑에 돈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정말 한 달에 100만 원으로 동남아에서 살 수 있을까? 누구는 충분하다고 하고 누구는 부족하다고 한다. 누가 맞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조건’이 붙는다. 여기서 말하는 100만 원은 항공료, 비자비, 보험료, 의료비, 예기치 못한 비용은 모두 제외한 순수 생활비이다. 즉, 거주지와 밥, 교통, 통신비, 공과금 정도로만 계산했을 때의 최소 생존비용이다. 말 그대로 ‘살아는’ 갈 수 있지만, ‘삶을 누리기’는 어렵다. 만약 10년 전이었다면 충분히 가능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에서도 물가가 많이 올랐다. 농작물이 잘 자라는 기후조건으로 1차 식료품비는 조금밖에 오르지 않았지만 수입물품이나 공산물품은 크게 올랐다. 5년 전에 1만 원 하는 것이 현재는 12000원 혹은 13000원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 챗gpt




한 달 적정 생활비는 얼마인가?

그렇다면 동남아에서 한 달 적정 생활비는 얼마일까? 이 질문만큼 답변하기 어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가족수, 거주국가, 가족지역, 생활패턴 등에 따라서 금액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1인 가족인지 혹은 배우자가 있는 2인 가족인지, 혹은 자녀가 있다면 몇 명인지 등등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5배까지 차이가 난다. 그래서 "동남아 적정 한 달 생활비는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모두 다르다"이다. 또 똑같은 동남아라도 싱가포르와 라오스는 물가가 10배나 넘게 차이 난다. 싱가포르의 경우 주거비만 월 500이 되기도 한다. 만약 라오스에서 거주한다면 월 500이라면 충분히 4인 가족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 만약 자녀가 국제학교에 다닌다면 수업료가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이다. 좋은 국제학교는 나라를 막론하고 모두 비싸다.


그래도 적정생활비를 꼽아라고 한다면 얼마인가?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없으므로 1인 가족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생각하기에 1인 최소 생활비는 월 150만 원이다. 그리고 적정 생활비는 월 200에서 250만 원이다. 100만 원은 최소 생활비 150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어떻게 월 100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는 말인가?


우선 동남아 각 지방 대도시 노동자들의 중위 소득을 알아보자. 수도권의 경우 편차가 크다. 한국과 비교하면 약 대전, 대구쯤 되겠다. 동남아는 한국보다 빈부격차가 심하므로 평균소득은 의미가 없다. 참고로 한국은 1인당 평균소득이 300만 원, 중위소득이 240만 원 정도 된다. 자료를 찾아보면 제각기 다르다. 부자나라 싱가포르와 석유 국가 브루나이를 제외하면 대략 이 정도 될 듯하다.


지방 대도시 실질 1인당 중위소득(대략)

말레이시아 : 80만 원

태국 : 60만 원

베트남 : 40만 원

인도네시아 : 40만 원

필리핀 : 35만 원

캄보디아 : 30만 원

라오스 : 25만 원

미얀마 : 20만 원


똑같은 동남아라도 나라마다 차이가 크다. 단순히 100만 원이라고 하면 위 대부분 나라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중산층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기준에는 비교가 있다. 즉 생활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라오스의 경우 지방에 가면 헝태우라고 에어컨이 없는 한 달 5만 원 단칸방에 4명 식구가 머무는 경우도 많다. 아주 일부이긴 하지만 심지어 산간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 중 전기가 없는 곳에 사는 경우도 있다. 캄보디아나 필리핀, 미얀마 등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나마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가 최근 높은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과거에는 필리핀과 비슷했지만 지금은 가파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저 기준대로라면 라오스 사람들은 한 달에 25만 원으로 지방에서 사는데 한국 사람도 살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힘들다. 삶의 기준이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동남아에서 경비가 딸린 에어컨 있는 투룸 정도의 방,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한식, 한 달에 한두 번은 야외 나들이 등등을 고려하면 저 비용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한국보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동남아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극빈층이라면 한국에서 수급자로 지내는 것이 훨씬 낫다. 북유럽보다는 못하지만 상대적으로 괜찮은 복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동남아 시골. 이런 곳은 한 달에 50만 원으로도 가능하다. (그림 제미나이)




한 달 100만 원으로 동남아 한 달 살기 세팅

우선 지역을 선택하자. 수도권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 비싸다. 특히 거주비가 월 50만 원은 훌쩍한다. (다만 라오스는 수도라도 중심가에서 벗어나면 한적하다) 여기서 싱가포르, 브루나이도 제외했다. 말레이시아도 월 100만 원으로는 무리이므로 뺐다. 추천 도시는 아래 4군데이다.


<추천 지역>

①베트남 다낭(or 나짱, 꾸이년)

②태국 치앙마이(or 치앙라이)

③라오스 비엔티안(or 루앙프라방)

④필리핀 바기오


필리핀의 경우 한국인들은 세부나, 보라카오 등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곳은 물가가 비싸고 너무 외국인이 많아서 혼잡하다. 월 100만 원으로 세팅하려면 바기오가 딱이다. 바기오는 수도 마닐라에서 약 250km 떨어진 곳이다. 여기는 해발 1,500m의 고원도시로 연중 시원, 평균 18~22℃로 피서지로 유명하다. 한국 어학원이나 교육 시설이 많으며 생활비도 다른 곳보다도 저렴하다. 생활비는 아래 정도로 잡으면 된다.


<한 달 100만 원으로 동남아 한 달 살기 세팅>

①방세 : 약 40만 원

②식비 : 30만 원

③공과금, 교통비 등 : 20만 원

④기타 : 10만 원

*골프, 여행, 유흥 등은 제외


우선 거주비용을 보자. 다른 비용은 줄이더라도 방세는 가급적 경비가 딸린 콘도를 추천한다. 단독주택의 경우 도난의 우려가 있이다. 외국인의 경우 돈이 많다고 생각해서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만 시내랑 가까울수록 비싸다. 태국 치앙마이의 경우 성곽과 가까운 곳은 비싸지만 조금만 외곽에 나가도 40만 원이면 방 2개의 충분히 적당한 집을 구할 수 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이다. 시내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라오스 비엔티안과 필리핀 바기오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식비이다. 만약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든지, 아침에는 국이 꼭 있어야 한다는 식성을 가진 사람은 한국에서 사는 것을 추천한다. 굳이 동남아까지 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장이 예민해서 동남아 로컬 음식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으면 이 역시 동남아까지 올 필요가 없다. 아무래도 위생이나 청결이 한국보다 못하기 때문에 배앓이만 하다가 한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식비는 한국보다 상당히 저렴하다. 일반 현지식당 기준으로 볶음밥, 쌀국수, 돼지고기덮밥 등은 한 끼에 2000원 정도이다. 만약 요리에 취미가 있다면 여러 가지 재료를 사서 할 수 있다. 그러나 매일 현지식만 먹으면 질릴 수가 있으므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한식당에 갈 수 있다. 혹은 일식이나 중식점에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매번 한식을 먹는다든지 일주일에 두 번 넘게 한식을 먹으면 식비에서 돈이 많이 들 수 있다.


다음으로 공과금이다. 한국은 휴대폰 요금이 비싼 편이다. 동남아의 경우 비용이 저렴하다. 태국은 한 달 60기가 인터넷, 무료통화 등 1년 유심이 6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다른 나라도 한국에 비하면 꽤 저렴한 편이다. 다만 만약 넷플릭스 감상 등을 위해 인터넷을 설치하면 비용은 좀 더 들어갈 수 있다.


교통비는 오토바이로 정했다. 한 달에 100만 원으로 살려면 승용차는 무리이다. 승용차를 끌고 다니려면 150만 원은 필요하다. 자체 생산이 없어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한국보다 비싸다. 오토바이는 구입에 200만 원~300만 원 정도 비용이 들어가지만 이후에는 유류비나 사소한 수리비만 지불하면 된다. 하지만 기름값은 동남아에서도 수입을 하다 보니 한국 못지않게 비싸다. 만약 시외나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간다면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낫다.


그리고 기타 비용을 10만 원으로 했다. 여행이나 골프나 유흥 등은 여기서 제외이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하고 싶다면 별도의 비용으로 해야 한다. 이렇게 잡으면 얼추 100만 원으로 한 달 살기 세팅이 완료된다.

필리핀에서 살기 좋은 시원한 도시 바기오 (사진 iStock)




그냥 한국에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 주변에서 “은퇴하면 동남아에 가서 살아볼까?”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솔직히 말리고 싶다. 현재 나도 캄보디아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한 달 최소 160만 원은 들어간다. 물론 정말 아껴서 한 달 100만 원으로도 살 수는 있다. 완전히 현지인처럼 살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코리안 스탠더드’를 유지하려면 최소 150만 원은 들어간다. '적당한 코리안 스탠더드'를 유지하려면 한 달 200만 원은 필요하다.


외국인으로서 지불해야 할 금액, 비자비나 가끔 한국에 갔다 오는 항공료 등도 만만치 않다. 만약 돈이 들어가는 취미생활을 한다면 지갑은 좀 더 두꺼워져야 한다. 동남아가 골프가 한국보다 많이 저렴하지만 그래도 중산층의 취미이다. 주중 2~3차례 골프를 친다면 한 달에 250만 원이 필요하다. 월 250만 원이면 솔직히 말해 그냥 한국 중소도시에 사는 것이 훨씬 낫다. 재래시장에 가면 신선한 식재료를 저렴하게 살 수 있고, 도서관에서는 책을 공짜로 볼 수 있다. 각종 무료 강좌와 문화생활도 풍부하다. 생활 인프라와 보험, 의료 시스템도 안정적이다. 결론적으로 국민소득 3만 5천 달러의 선진국인 한국에 사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훨씬 좋다.


의료 문제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앞으로 의료보험 재정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따라올 나라는 많지 않다. 동남아 현지 병원은 대부분 열악하고, 진료 대기 시간도 길며 의사와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외국인의 경우 인터내셔널 병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비용이 상당히 높다. 일부 국가는 은퇴비자를 발급받을 때 1년 치 해외 여행자 보험 가입을 의무로 요구한다. 평소 건강이 좋다면 괜찮다. 하지만 지병이 있다면 현실적으로 문제이다.


인간관계와 문화 차이도 은퇴 후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이다. 학창 시절 영어를 12년 동안 배웠지만 우리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한다. 그런데 문자도 생소한 현지어라니. 20~30대의 젊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40대 이상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가 힘들다. 문화 차이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이 일상인 경우도 있고, 위생 수준이나 생활 습관이 한국보다 뒤처진다. 날씨가 덥다 보니 벌레도 많다. 행정 시스템은 어떤가. 한국의 서비스는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동남아에서 서류 하나 발급하려면 며칠 걸리는 등 대단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치안 문제도 크다. 만약 여자 혼자서 거주한다면 더 그렇다. 치안도 한국은 세계 상위권이다.


결론적으로, 동남아 은퇴 생활은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불편하다. 여행으로 잠깐 경험하는 것과 실제로 장기간 거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한국에서 사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가장 큰 어려움인 언어 장벽(이미지 제미나이)




그럼에도 동남아 거주를 추천하는 이유

내가 동남아 거주를 추천하는 첫 번째 이유는 여유로움이다. 따뜻한 날씨, 느긋한 사람들, 저렴한 물가, 그리고 국경 하나만 넘으면 다른 나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의 자유.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여유’라는 단어가 실제로 존재하는 삶의 리듬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떠 창문을 열면 따뜻한 바람이 들어오고, 길거리에서는 현지인들이 천천히 걸으며 인사를 건넨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라면 “시간 낭비”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다. 삶의 속도가 다르다.


반면 한국은 참 대단한 나라다. 효율적이고 빠르고, 무엇이든 정확하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사회적 압력이 있다. 늘 바쁘게 살아야 하고, 남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긴장감 속에서 하루가 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되는 곳. 그래서 그런지 동남아의 ‘느긋함’은 일종의 해방감처럼 느껴진다. 물론 완벽한 곳은 없다. 불편한 점도 있고, 행정은 느리고, 인터넷도 종종 끊긴다. 이처럼 동남아 생활의 매력은 삶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남이 정해준 속도를 따라가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내가 내 박자를 정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내가 여전히 동남아 거주를 추천하는 이유다.


두 번째로는 낯선 곳에서의 삶은 스트레스를 주지만 때로는 우리를 자극한다. 한국에서는 이미 수십 년을 살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익숙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때론 지루함을 준다. 늘 먹는 음식, 항상 듣는 언어, 매일 똑같은 사람들. 외국에서는 이 모든 것이 새롭다. 현지어는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사람들의 외모와 하는 행동도 다르다.


세 번째로는 사람은 비교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행복이 결정된다. 나의 현재 비교기준을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동남아 로컬인들과 비교하면 나는 상당히 '가진 자'가 된다. 월 100만 원 생활비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에서 100만 원은 큰돈이라고 할 수 없다. 한 달 겨우겨우 기본적인 의식주만 유지하고 빠듯하게 살 것이다. 하층민의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동남아 지방에서는 이 돈은 중산층의 삶이다. 개발도상국 사람들 대부분은 여권조차 없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이 많다. 커피값 3천 원은 일반 서민들에게 사치이다. 나는 가끔 한가한 주말에 커피숍에서 4천 원 라뗴를 마시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구나.”


결국 동남아 거주를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 여유나 날씨 때문이 아니다. 삶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며 여유를 누리고, 낯선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자극받으며, 비교 기준을 바꿈으로써 행복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경험 때문이다. 남들 체면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비교 문화가 한국보다 덜하다. 만약 한국에서의 삶이 지치거나 혹은 지겹거나 한다면 동남아로 가자!

그림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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