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국에서 4년 동안 살면서, 나는 거의 모든 여행지를 다 가본 듯하다. 방콕, 치앙마이, 푸껫 등유명 관광지는 물론 수랏타니, 찬타부리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곳도 방문했다. 태국은 77개의 도시가 있는데, 대략 40여 곳은 가 본 듯하다. 하지만 관광지임에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있으니 바로 매홍손(Mae Hong Son)이다. 치앙마이에서 버스로 10시간 정도 걸리는 산속 도시로, 길이 온통 구불구불한 산길이라 예전에 멀미 때문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물론 방콕에서 비행기로 갈 수도 있지만, 왕복 30만 원 정도로 가격이 만만치 않아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매홍손이 유명한 이유는 단순히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목이 긴 부족’, 즉 카렌족(Karen, 영어로 Long-neck Tribe) 여성들이 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한 번쯤은 본 듯한, 목에 금속 링을 두르고 길게 늘어난 목을 가진 여성들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목에 착용한 큰 링이다. 어린 시절 하나를 착용하기 시작해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늘려, 길게 늘어난 목을 완성한다. 긴 목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전통적 미의 기준, 부족 정체성 등을 나타낸다. 롱넥부족은 대체로 산간 오지에 살고 있는데 생활 여건이 일반 태국 가정보다 열악하다.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하지만 일부 마을에서는 정부 보조금과 관광 수익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매홍손까지 가지 못해 아쉬워하던 나는 뜻밖에도 치앙라이에서 롱넥부족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치앙라이는 치앙마이에서 차로 3~4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로, 치앙마이에 이어 최근 은퇴 이민지로 떠오르는 곳이다. 하지만 치앙라이에서 롱넥부족을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것은 어렵다. 대중교통이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꽤나 멀다. 다행히 현지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투어가 있다. 비용은 약 4만 원으로 점심과 입장권은 불포함이다. 투어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치앙라이 시내의 여러 사원을 둘러보고 롱넥부족 마을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었다.
투어차로 한 시간 정도 달리자, 드디어 마을이 눈앞에 나타났다. 마을은 매우 작았다. 본래 롱넥부족의 주요 거주지는 매홍손이지만, 관광객 접근이 어려운 탓에 일부 주민들이 치앙라이로 옮겨왔다는 설명을 들었다. 관광객들을 위해서 이곳으로 강제이주(?)된 것인가. 마을 입장료에는 사진 촬영권이 포함되어 있어,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추가 비용을 지불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관광객으로서 예의를 갖춰 약간의 팁을 주는 것이 좋다. 이 작은 배려가 마을 사람들에게는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롱넥부족에 대해 가장 궁금했던 점은 ‘왜 목에 링을 차게 되었는가’였다. 가이드에 따르면 몇 가지 가설이 있다고 한다. 우선 나이가 들면서 하나씩 추가해 목을 길게 만드는데 이것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부족을 전통이라고 한다. 또한 과거에는 호랑이와 같은 맹수로부터 목을 보호하는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결혼 적령기를 보여주는 일종의 표식의 역할을 했었다는 의견도 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 주었다. 사람들이 도시괴담에서나 들은 것 같은 '링을 풀자마자 목뼈가 부러져서 죽는다'라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오히려 관광객이 없을 때에는 대부분 스스로 링을 풀고 편하게 생활(?)한다고 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항상 목이 긴 상태로 살아가는 삶’은 일부만 맞는 이야기였다.
처음 마주한 롱넥부족 여성들의 모습은 놀라웠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복잡한 마음이 교차했다. 2010년 이전이라면, ‘아,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자랑했을 법하다. 하지만 당시는 2023년,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관찰하는 느낌이 약간 들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링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과연 이 아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저렇게 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마을은 일반 태국의 시골보다도 열악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집에서 변변찮은 가재도구들로 지내고 있었다. 주민들은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서 생활한다고 하였다. 이미 여기서 사는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외부에서 다른 노동 기회를 찾거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고 마을의 규모와 크기, 관광객의 수 등에 따라서 다르지만 한 달에 약 5~10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관광객들에게 팁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일반 태국 사람들에 비하면 꽤나 적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도 외모 지상주의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7~10살쯤 되는 몇몇 어린 여자아이들도 전통복장을 입고 목 링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아이가 있었다. 화장을 하고 전통복장을 입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였다. 한눈에 봐도 '예쁘장한' 아이였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그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 했다. 반면 통통하고 얼굴이 둥근 다른 아이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전통과 문화 속에도 미묘한 사회적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아무래도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2000년 이전에는 지구 곳곳에 예전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소수민족이 많았다. 산속 깊은 마을이나 외딴 오지에서는 현대 문명과 거의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일반인들은 그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여행이라는 것도 대중화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EBS 다큐 같은 것을 통해서만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진과 영상은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일상은 신비로웠고, 동시에 우리에게 다른 세계를 보게 해 주었다.
하지만 기술과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오지에 사는 소수민족들의 삶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갇혀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살았다면 지금은 전 세계 모든 정보가 공유된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부모들처럼 전통과 자연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도시로 나가 일하고, 스마트폰으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사용하며, 유튜브로 한국 드라마나 다른 나라의 콘텐츠를 시청한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소수민족은 관광상품으로써의 삶을 선택하거나, 선택받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트남 북부 박하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일요일 전통시장이 열리며, 관광객들은 화려한 전통복장을 입은 소수민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다르다. 시장이 열리지 않는 평소에는 현대식 의복을 입고,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유튜브를 본다. 즉, 관광객에게 보이는 모습은 사실 일종의 ‘연극’과 같다. 그들은 적당히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실과 관광산업 속에서 유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안타까워해야 할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AI 주식에 투자하며, 현대 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우리가 그들에게 과거 모습 그대로만 살아가길 바라는 것은 아이러니일 수 있다. 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소수민족도 예외가 아니다. 좋든 싫든 변화는 필연적이며 모든 사람과 계층에게 퍼진다. 그래서 30년 후쯤에는 이러한 소수민족들의 모습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링을 채우는 비인권적인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야만적인 시대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상과 현실은 늘 충돌된다. 예를 들면 코끼리와 관련된 여행 상품이다. 실제로 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코끼리 타기 투어가 있다.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체험이었지만, 동물 복지 문제로 인해 현재는 많은 단체와 여행자들이 이에 반대하고 있다. 대신 ‘코끼리 밥 주기’, ‘목욕시키기’, ‘건강 체크 프로그램’과 같은 친동물적 투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장소 안에서 두 투어가 공존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코끼리를 타는 체험이 진행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코끼리를 돌보는 체험을 제공한다. 이처럼 현실은 이상처럼 단순하지 않다.
이는 마치 동물권이나 식용 문제를 둘러싼 모순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XX고기 식용을 반대하는 단체가 활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치킨이나 삼겹살을 먹는 것이다. 이를 두고 행동이 모순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혹은 완전한 이상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중요한 것은 현실 속에서 선택 가능한 것을 우선 배려한다는 마음이라고 반론할 수도 있다. 우리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롱넥부족을 방문할 때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까. 우리는 그들의 전통과 생활을 지켜보면서, 이상적으로만 접근할 수는 없다. 그것보단 현실적인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돈을 직접적으로 주는 것은 여러 단점이 있다. 과자나 혹은 여러 가지 일생생활에 도움이 되는 물품을 선물로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초코파이를 줄 수도 있고, 할머니들에게는 소화가 잘 되는 과자를 줄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나의 말에 대해서 마치 우리가 미군들에게 '기브 미 초콜릿' 하면서 과자를 얻어먹던 것을 떠올리면서 온정주의적 접근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그딴 초코파이 같은 것보다는 공책이나 볼펜을 줘서 그들의 미래가 밝아지도록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할 수도 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그래서 무조건 스페인의 전통인 투우를 금지해야 한다거나, 우리나라의 경우 청도 소싸움이나 세계적으로 4대 축제로 자리 잡은 화천 산천어 축제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맞아떨어진다고 보지도 않는다.
우리가 여행자로서 그들을 보고 즐거움을 얻었다면,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통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아이들이 작은 간식 하나에 웃음을 터뜨리고, 할머니가 따뜻한 마음으로 미소 짓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을 단순한 구경거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 중 하나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 시선이야말로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