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국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지만 라오스는 한때 한국인들의 성지였다. 특히 2014년 '꽃보다 청춘' 라오스 편 이후에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방문을 했다. '경기도 다낭시'라는 말의 원조는 라오스라고 할 수 있다. 그때는 '서울시 방비엥구'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눈에 밟히는 것이 한국 사람이었다. 한국어로 된 식당도 많았다. 그러나 코로나를 거치면서 여행 트렌드가 바뀌었다. 이제는 라오스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잊힌 여행지가 되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당시 티브이 예능에서 인기를 끌었던 시기로부터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인프라는 열악하고, 물가는 오히려 비싸졌으며, 베트남, 태국 등 다른 동남아 국가에 밀려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20225년 현재, 지금은 중년 남성들의 은퇴지 혹은 제2의 거주지로 선택을 받고 있다고 하니, 청춘의 여행지였던 과거와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오스는 생각보다 꽤나 매력적인 여행지가 많다. 특히 한국의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머리를 식히기에 좋은 곳이다. 대표적인 여행지는 국민 여행지인 수도 비엔티안, 꽃보다 청춘 예능으로 유명해진 액티비티 도시 방비엥, 그리고 우리나라 경주처럼 오래된 역사와 문화의 도시 루앙프라방이다. 만약 라오스를 두 번째 여행한다면 남부 팍세와 4000개의 섬이 있는 씨판돈을 여행을 한다. 그러나 라오스에서 2년 동안 살면서 구석구석 많이 다녀본 나에게 누군가가 "라오스에서 숨겨진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비엥싸이, 퐁살리 등을 꼽는다. 아마 라오스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그런 도시가 있었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도 거의 없고 인프라도 아직은 열악하지만 자연과 역사가 묘하게 어우러진 곳이다. 이곳들은 북부 라오스의 강과 산 사이, 아직 사람들의 손이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구글 맵을 보면 라오스 비엥싸이는 동북부의 끝에 있다. 구글지도를 보면 수도 비엔티안에서 약 630km이다. 만약 한국이라면 100km당 1시간을 계산하고, 중간에 휴게소 한두 번 들른다고 가정해도, 한 8시간 정도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라오스이다. 한국처럼 뻥 뚫린 시원한 고속도로를 생각하면 안 된다. 꾸불꾸불 산길을 건너, 호수가 바로 옆에 보이는 모래로 포장된 도로를 지나, 휴게소를 여러 번 들르고, 차 안에서 먹고 자는 등, 무려 18시간이나 걸린다. 사실상 터미널까지 이동하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하루 종일 걸린다고 봐야 한다. 만약 당신이 시간이 많아서 중간중간 다른 도시들을 구경할 수 있다면 방비엥, 비엥캄, 므앙캄 등의 도시를 경유하면 된다. 혹은 20~30대 젊은 여행자라서 튼튼한 허리를 가지고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위의 두 가지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돈을 좀 더 투자해서 비행기를 타는 것을 권한다. 가격은 버스보다 비싸지만 1시간 만에 630km를 돌파한다. 비행기는 비엥싸이에서 30km 떨어진 쌈느아(Sam-nuea)라는 곳까지 간다. 참고로 10인승의 작은 비행기로 색다른 재미가 있다. 조정석이 바로 앞에 보인다. (100달러가 되는 비행기를 타는 라오스 인들은 중산층들이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몸이 힘들어도 저렴한 버스를 탄다)
참고로 이곳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식당에 가도 영어 메뉴판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낯섦이야 말로 여행의 재미가 아닌가. 모든 것이 익숙하다면 신선함이 없다. 읽을 수 없는 글자가 보여야 '아 내가 여행을 왔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옆에 사람이 먹고 있는 맛있게 보이는 것을 가리키면 된다. 그리고 계산기를 꺼내서 얼마인지 물어보면 된다. 만약 이런 것이 아직도 어색하다고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기술의 발전으로 번역기와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된다. 라오스어는 태국어나 베트남어에 비하면 아직 데이터베이스가 부족하므로, 한국어-라오스어보다는 영어-라오스어로 보는 것이 더 낫다. 만약 태국어를 할 줄 안다면 태국어로 보여줘도 된다. 태국에서 라오스어를 쓰면 촌놈(?) 취급받지만, 라오스에서는 일부 소수민족을 제외하고는 태국어가 대부분 통용된다.
비엥싸이에 도착하면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아 풍경이 아름답다”이다. 방비엥처럼 카르스트 지형이 만든 산과 강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풍경만 봐도 안구가 정화된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여기서 뭘 해야 하지?"이다. 풍경은 아름답긴 한데 딱히 해야 할 것이 눈에 안 들어온다. 시내라고 해봤자 높은 빌딩도, 많은 사람들도 없다. 그 한적함과 여유로움이야말로 비엥싸이의 숨은 매력 포인트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연과 마을,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의외로 여기에도 관광지가 있는데 그것은 동굴 탐험(?)이다. 자전거를 타고 동굴 투어를 할 수 있다.
여기는 유난히 동굴이 많다. 그러나 이 동굴들은 단순한 자연의 산물이 아니다. 비엥싸이 동굴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빠뗏 라오(Pathet Lao)다. 간단히 말하면, 1960~70년대 라오스의 공산주의 혁명 세력이다. 당시 라오스는 내전 중이었고, 빠떼 라오는 북부와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군사 활동과 정치 활동을 하며 권력을 확장했다. 특히 비엥싸이 동굴은 그들의 본부 겸 지하 도시 역할을 했다. 주민들과 전투 요원들이 폭격과 공격을 피하면서 생활하고, 학교와 병원, 극장, 심지어 상점까지 운영했던 곳이다. 쉽게 말해, 단순한 ‘숨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던 작은 마을 같은 지하 공간이었다. 회의를 위한 큰 방,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병원, 음식을 보관하던 창구 등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총기, 의자 등 그때 사용하던 물품 등도 그대로 전시하고 있어서 좁은 통로를 지나다 보면 “이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당시에는 전기도 거의 없었을 텐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나라에도 이와 같은 동굴을 은신처로 삼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는 베트남의 구찌 터널과 터키의 카파도키아이다. 구찌 터널은 월남전 당시 베트콩들의 은신처로 전투용 지하 통로였고 일부 동굴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파서 만든 공간이었다. 당시 미군들은 이 터널의 입구도 찾을 수도 없고, 찾아도 덩치가 커서 들어갈 수도 없어서 많은 애를 먹었다. 터키 카파도키아에 있는 지하 도시의 경우, 초기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서 기독교인들이 만든 지하 도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규모가 커졌다. 그래서 교회와 수도원, 저장고, 통로가 연결된 거대한 지하 도시가 되었고, 수천 명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이들 세 곳을 비교해 보면, 카파도키아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고, 구찌 터널은 베트남을 찾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지만, 비엥싸이는 여전히 숨겨진 역사적 공간으로 발견의 즐거움과 조용한 사색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지다.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바쁘게 사는 한국인들은 여행을 가서도 늘 분주하다. 우리는 어디를 가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 하며, 어떤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계획한다. 4박 5일, 5박 6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뽑아야 한다는 강박감 속에 여행이 흘러간다. 그러나 때로 여행의 진짜 즐거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
모처럼 늦잠을 자보자. 9시쯤 눈을 뜨면 된다. 이곳에는 수도처럼 오성급 호텔은 없다.(사실 수도 비엔티안도 베트남이나 태국과 달리 오성급 호텔이 몇 군데 없다) 소박한 게스트하우스가 많고, 고급 수영장이나 뷔페 조식은 없지만, 대신 새소리가 늦잠을 깨워준다. 옆마을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에 눈을 뜨는 경험은, 한국에서는 아마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처음일지도 모른다. 대충 고양이 세수를 끝내고 근처 쌀국숫집에서 아침을 먹거나, 동네 커피숍에서 브런치를 즐겨도 좋다. 고수 맛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면, “버 싸이 헝뻠”이라고 주문하면 된다. 고급 호텔은 없지만, 한국인들이 갈만한 아기자기한 카페는 다행히 있다. 한국식 아메리카노와는 달라도 불평할 필요 없다. 여기는 라오스, 그것도 수도에서 630km나 떨어진 작은 마을이니까.
커피를 마시고 나면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걸어보자. 시장을 들러 다양한 재료를 구경하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과일과 음식 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해 볼 수도 있다. 처음 보는 음식과 향신료, 색다른 과일을 시도해 보는 것도 이곳만의 즐거움이다. "싸바이디! 안니 타오라이?(안녕하세요. 이것은 얼마예요?)"라고 생활 라오스어도 한마디 사용해 보자. 시장에서는 관광객이 드물어서 바가지요금이 없으니 딱히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건을 구입하고 나서는 "컵짜이(감사합니다)"라고 마무리하는 것도 잊지 말자.
저녁에는 그림 같은 풍경을 안주 삼아 비어라오 맥주 한 잔을 기울이자. 라오스 음식은 태국 음식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전라도 음식처럼 깊고 고유한 맛이 있다. 안주로는 언제나 "까이양(닭구이)" 제격이다. 카스트르 지형을 바라보면서 비어라오와 까이양을 먹다 보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라오스 여행을 계획하며 흔히 떠오르는 도시가 방비엥이다. 수도 비엔티안에서 가까워 이동이 편리하며, 최근 몇 년 새 개통된 기차를 이용하면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히지만 방비엥은 이미 유명 관광지라 관광객이 많고, 유흥 시설도 많아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 비엥싸이(Vieng Xay)는 방비엥과 비슷한 풍경을 가지고 있는, 여전히 숨겨진 보물 같은 도시다. 관광객이 거의 없고, 인프라도 부족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용하고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자연과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한국인이나 다른 외국인과 마주칠 확률이 거의 없다.
라오스를 두세 번째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남들이 찾지 않는 ‘진짜 라오스’, 아직 사람들에게 낯선 장소를 경험하고 싶다면 비엥싸이가 제격이다. 이곳에서 며칠만 머물러도 자연이 주는 고요함과 한가함이 주는 여유가 익숙해진다. 일정표 없이 느릿하게 걷고, 풍경을 바라보고, 역사를 곱씹으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면 목적지는 분명해진다. 바로, 비엥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