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을 좋아하는 것은 동서양 고금 막론하고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예전에도 이런 기록들이 많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황금을 걸고 주사위 게임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고, 로마 시대에도 귀족들이 카르타고 전리품으로 얻은 금화로 도박을 하며 부를 과시했다. 인간은 본래 불확실한 운에 기대어 한순간의 큰 부를 꿈 꾸어 왔다.
소득이 낮은 동남아 국가에서는 먹고살기 바쁘다. 투자도 여유 자금이 있어야 한다. 한 달 월급 받으면 집세, 식비 등으로 다 나가버린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 산다. 동남아에서 테슬라나 엔비디아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위 5%이다. 그렇다면 일반인들에게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카지노와 복권이다. 카지노는 태국과 베트남은 불법이고,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합법이다. 캄보디아와 태국 국경이 맞닿은 포이펫과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이 맞닿은 바벳 등에 카지노가 많다.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카지노는 무리이다. 설렁 한번 재미 붙였다가 도박중독으로 패가망신할 수 있다.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했다는 모 동네 아무개 집안 이야기는 여기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국가가 허용한 합법적인 도박이 있으니 그것은 복권(?)이다.
한국에는 로또가 있다. 45개의 숫자 중에서 6개를 맞추면 당첨된다. 당첨금액은 세금 33% 떼면 세후 약 6억에서 10억. 최근에는 이 금액으로 서울에 아파트도 못 산다.라는 말이 있지만 여전히 일반 서민들에게는 꿈의 금액이다. 그렇다면 동남아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각 국가들도 이와 비슷한 것들이 당연히 있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권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는 공식적인 복권이 없다(비공식으로는 존재할 수도)
태국 사람들에게 복권은 단순한 운시험이 아니라 생활문화에 가깝다. 재미있는 건 숫자를 고르는 방식인데, 꿈에 나온 동물, 교통사고 차량 번호, 아이가 태어난 시간 같은 일상적인 사건까지 다 숫자로 연결된다. 태국에 살 때 하루는 현지 친구가 오토바이를 새로 샀는데, 차 등록 번호와 같은 숫자의 복권을 구입했다. 물어보니 '사고가 안 나기를 기원하면서 동시에 복권 당첨도 기대' 하는 마음이란다. 사원에서는 숫자 점을 보는 사람도 많고, 은근히 불법 복권도 함께 돌아간다. 불교국가지만 “복은 하늘이 준다”는 인식이 강해서 종교적 거부감도 거의 없다. 한국과 차이점은 우리나라처럼 복권판매점이 아니라 개인이 복권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파는 방식이다. 판매자들은 주로 주부들, 혹은 몸이 불편한 분들, 저소득 계층이 많다. 사회복지제도가 미비한 개발도상국에서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루 수입은 많지 않다. 하루 종일 땡볕에서 복권을 팔아도 5달러 미만이다.
라오스도 태국 못지않게 복권이 생활에 스며 있다. 내가 10년 전 라오스에 머물 때는 일주일에 2번 복권 당첨을 했는데 어느 순간 일주일에 한 번만 당첨하는 걸로 바뀌었다. 가격도 저렴해서 학생이나 농민들도 가볍게 사는 편이다. 라오스 복권은 숫자로 된 태국과 달리 주로 동물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나라 로또가 45개의 숫자 중에서 6개를 맞추는 거라면 라오스는 수십 마리의 동물 중에서 맞추는 것이다. 숫자만 동물로 바뀌었을 뿐 기본적인 방식은 똑같다. 사람들은 전날 꿈에서 봤던 동물을 주로 고른다. 현지 친구에게 "한국은 꿈에서 돼지를 보면 다음날에 복권을 산다. 그러면 당첨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했더니 라오스는 그런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게 매일 돼지고기를 먹으면 언젠가는 꿈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을 했다.
라오스에 살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콘도 관리인이 젊은 여자였다.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수십 장의 즉석복권을 열심히 긁고 있었다. 수량만 해도 거의 한국돈으로 당시 10만 원은 될 듯싶었다. (그 정도 금액이라면 라오스에서 한 달 월급의 1/3이다) 내가 왜 이렇게 복권을 많이 샀나고 물어보니, 아는 청소부가 즉석복권 사서 500만 원 당첨된 적이 있다고 그거 보고 자기도 샀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다 긁으니 100만 원은커녕 2만 원 정도라서 원금도 못 건졌다고 울상을 지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저축을 했더라면..)
이웃 나라로 가보자. 베트남은 남부와 북부의 복권 스타일이 조금 다르다. 특히 남부에서는 호찌민 시티 주변에서 특히 활성화돼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로또점을 한국 편의점만큼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격도 우리 돈으로 천 원 남짓이라 부담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북부는 숫자 맞추기보단 추첨식 형태가 많고, 불법 사설 복권도 지역마다 슬쩍슬쩍 존재한다. 종교 영향은 태국처럼 직접적이진 않지만, 꿈 해석이나 길한 숫자를 점치는 문화는 비슷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필리핀에도 복권이 많다. 우리나라처럼 즉석복권도 팔고 로또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선택할 수 있는 숫자의 개수에 따라서 당첨금액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일반 로또는 42개 숫자 중 6개 맞추기, 메가는 45개 숫자, 슈퍼 로또는 49개, 그랜드 로또는 55개, 울트라 로또는 무려 58개 중에서 6개 숫자를 맞추는 방식이다. 당연히 숫자가 올라갈수록 당첨 확률은 낮아지지만 금액은 늘어난다.
몇 달 전 한국 경기도 파주에 사는 태국인 형제가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당시 금액은 40억. 세금을 제하고도 27억. 이 금액은 한국인들에게는 평생 만져보지 못하는 아주 큰 금액이다. 한국 소득의 1/4인 태국에서는 그럼 얼마의 가치일까? 약 108억 원이다. 비유하면 한국인들에게는 약 100억 원의 실질소득이다. 이 정도면 자녀는 물론 손자까지도 잘 먹고살 수 있다. 전생에 아마 나라를 구했을 듯?
베트남에서 무려 한화 약 90억 원이 넘는(세전 1,790억 동) 초대형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베트남 국영 로또인 비엣로트(Vietlott)의 '파워 6/55' 추첨에서 잭팟이 터졌다. 당첨자는 다낭에서 나왔는데 세금 10% 공제하고 1,610억 동(약 610만 달러)을 수령했다. 파워 6/55 복권은 55개의 숫자 중 6개를 모두 맞춰야 1등이 되는데, 그 당첨 확률이 무려 2,898만 분의 1이다. 이는 한국 로또 당첨 확률보다 약 3.6배나 더 어려운 수준이다. 만약 당첨자가 없으면 다음으로 이월된다. 610만 달러 주인공은 계속 이월된 금액을 받은 것이다.
이러다 보니 로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많아지고 사기의혹도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4년 7월, 로또 1등 당첨자가 무려 63명이 나오면서 최다 기록을 세웠다. 당첨자가 급증하면서 1등 당첨금이 세후 3억에 불과했다. 당시 이를 두고 로또는 조작이다. 말이 많았다. 이 같은 일은 2022년 필리핀에서도 일어났다. 필리핀 그랜드 로또의 1등 당첨자가 433명이나 쏟아져 나와 조작 의혹이 일었으며, 당첨 번호가 모두 9의 배수인 '9, 18, 27, 36, 45, 54'라는 이례적인 패턴을 보였으나, 복권위원회는 필리핀 사람들이 패턴을 선호해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하였고, 총 당첨금 약 57억 원이 433명에게 분배되어 1인당 약 1,300만 원만 수령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복권에 당첨된다면? 한국 로또를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 요즘은 1등 당첨액도 세금을 제외하면 기대만큼 크지 않을 때가 많지만, 가령 세후 10억 원 정도라고 가정해 보자. 그 금액이면 삶을 조금 다르게 설계할 수 있다. 나는 아마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 유튜버를 할 거 같다.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계산도 해본다. 10억 중 3억은 안정적인 배당주인 SCHD, 2억은 고배당 커버드콜인 JEPQ을 투자한다. 그렇다면 한 달에 약 250만 원의 세후 배당금으로 생활한다. 나머지 4억은 에센피 500 같은 기본지수에 투자하고, 1억 원은 현금대용으로 놔둔다. ETF 배당은 매년 조금씩 상승하기 때문에, 최소한 기본 생활비는 안정적으로 확보된다. 생계걱정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가 있다.
만약 당첨금이 10억 원 미만이라면, 아마도 몇 년은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더 불릴 계획을 세울 것 같다. 그래도 복권 한 장으로 얻게 되는 심리적 여유는 아주 크다. 만약 직장을 계속 다니더라도 마음 한편에 ‘언제든지 직장을 그만둘 수 있다’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한결 덜하다.
많은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되면 패가망신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극단적인 사례를 언론이 부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당첨금을 조금씩 관리하고, 신중하게 투자하거나 소비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뉴스가 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할 뿐, 현실에서는 특별히 돈을 낭비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는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간다. 즉, 복권 당첨이 삶을 망친다는 공식은 사실이 아니라, 단지 드라마틱한 사례만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매주 월요일, 피곤한 퇴근길에 복권 하나를 산다. 그 한 장이 일주일을 버티게 만들어준다. 토요일 밤에 추첨이 나오고, 일요일에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그 순간까지 마음이 바쁘다. 복권 당첨이 될까 하는 그 설렘 덕분에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고, 어느새 다시 월요일이 찾아온다.
복권 한 장이 주는 기대감은 한국이나 동남아나 마찬가지이다. 태국에서는 길거리에 복권 노점상이 늘어서고, 사람들은 꿈에 나온 동물이나 차량 번호, 아이가 태어난 시간까지 숫자와 연결해 복권을 산다. 사원에서 숫자를 점치거나, 은근한 불법 복권까지 함께 돌아다닌다. 라오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복권을 구입하는 날에는 길거리에 복권 판매상이 즐비하다. 베트남도 거리를 걷다 보면 로또 판매점을 무수히 많이 볼 수 있다. 이처럼 나라가 달라도, 복권은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과 즐거움을 준다. 당첨 여부와 관계없이, 복권을 사는 그 순간만큼은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 상상의 미래를 그릴 수 있다. 내가 한국 로또를 사면서 퇴사를 상상하는 것처럼, 태국이나 라오스, 베트남 사람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꿈과 기대를 즐긴다. 복권을 단지 사행성 게임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과 상상, 그리고 삶의 작은 재미를 심어주는 장치다. 당첨금과 상관없이, 한 장의 티켓이 일주일을 버티게 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웃음을 주는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